종교 전쟁 -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신재식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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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과학과 종교가 문제인가?”
“종교의 유통 기한은 이제 끝난 것은 아닌가?”
“과학이 정말 종교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과학의 오만이 아닌가.”
“창조 과학이 이렇게 번성하는 것은 어떤 징후인가?”
“종교는 미래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어떤 책을 보니 우리나라의 기독교의 경우 목회자들이 신자들에게 신학대학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경우 맹목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인들이 많다고 한다. 급격하게 보수화, 대형화, 사유화된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불교계, 기타 여러 종교도 아주 문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세금 한푼 내지 않는 종교, 최근 들어 과세하자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린다. 장로 대통령인 MB의 종교차별, 몰지각한 기독교 신자들의 불당에서의 파렴치한 행위 등으로 종교갈등이 심화되지나 않을까 우려스러운 것도 현실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종교를 가져볼까란 생각도 이따금 든다. 스티븐 호킹박사의 무신론 선언과는 반대의 길이 크게 보인다. 영세를 받으려고 2차례나 시도했건만 나에겐 여전히 무신의 색채가 강하다. 대한민국 현실 종교의 문제점에 눈이 밝다 보니 쉽게 믿음을 가질수도 없다.

 

신은 존재하는가? 천국, 극락과 같은 피안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현실 종교인들의 부도덕은 왜 존재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살인, 전쟁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갔다고 다시 돌아온 사람도 없는데 왜 종교는 수천년동안 이어져오는가? 대한민국의 교회는 규모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종교에 왜 과세를 하지 못하는가? 사이비종교에 대한 법적 심판을 왜 잘하지 않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만 낭자하다. 우주론적 증명, 인과론적 증명, 존재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들. 종교와 정치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단 말이 있듯이 상반된 입장에서 서고보면 합일점은 도저히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 일반론을 보기좋게 한방 먹인 책이 종교전쟁이다.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신학자인 신재식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과학 철학자 장대익 교수(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가  서로 다른 입장의 학자가 주고받은 13편의 편지와 10시간에 걸친 좌담을 담은 책이다.

 

유신론자, 불가지론자, 무신론자가 예의를 갖추고 서한을 주고받고 대담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일이겠는가? 서로의 입장을 밝히고 반론을 주고 받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아주 현학적이다. 무신론자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에 이르고 보면 어느새 나도 마음 속으로 훈수를 두고 있다.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유대교, 기독교, 가톨릭, 그리스정교(러시아정교), 영국 성공회, 이슬람 그 안에서 또 나누어진 다양한 유파들. 어디 여호아를 받드는 종교들만의 이야기인가. 이 책은 세학자의 공통점이 기독교란 신앙을 가졌거나 가졌었다는 것에서 출발하다 보니 기독교 중심의 논의가 주류요 불교나 타 종교는 그렇게 많이 언급되지 않아 아쉽다.

 

 창세기를 종교차원이 아니라 과학의 차원으로까지 몰고하는 창조과학은 인류 역사를 6천년, 지적 개입, 다윈의 진화론을 부인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엔 카이스트에 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그 세가 만만치 않다. 어느 수업에서 창조과학회의 강연을 듣고온 기독교인과 논쟁을 벌인 기억이 난다. 꽉꽉 막힌 벽과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그렇다면 이것도 문제다. 뉴라이트가 역사교과서 채택운동을 벌이는 것 만큼이나 창조과학회의 행보가 우려스럽다. 미국에서는 법원 판결로 좌절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선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 같다. 뉴라이트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창조과학의 주장이 담긴 과학책을 보게 되는 날이 오지나 않을까?

 

종교는 어떤 이유로 언제 시작되었을까? 왜 인류는 종교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종교는 아편이 아닐까? 강자가 약자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단초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 세계의 모순, 고난을 잊게 하는 마취제처럼 지금보다 다음 세상에서 복락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반적이게 만드는데 종교가 일정 이상의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가?

 

무신론자의 입장, 불가지론의 입장, 유신론의 입장이 다르지만 종교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의 대립, 이슬람내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종교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아직도 진행형이고 근본주의 기독교에 가까운 미국, 그리고 미국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유대인들의 짬짜미가 맞아떨어져 중동의 화약고가 연일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인의 나라에 민주화 시위가 지금의 아프리카, 아랍처럼 일어난다면 속전속결로 독재자를 몰아내었을터인데.. 수백 수천명이 죽어도 미국의 이익에 유리한 독재자는 폭격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을 읽은 생각으로 보면 나는 김대환교수의 지론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 현실 종교의 변화를 요구하며 종교인들에 대한, 종교시설에 대한 과세를 다음 정권엔 기필코 적용했으면 좋겠다. 반값등록금, 무상급식의 재원으로 활용하게.

 

내년엔 더 극명하게 그 힘을 드러낼 기독교와 종교들. 그래서 종교전쟁의 대화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세 소장학자가 뿌린 씨가 열매를 맺어 한반도 만큼은 종교전쟁의 무풍지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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