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쉼표를 찍다 -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명랑 가족 시트콤
송성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고맙다’는 말은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반갑다’는 말입니다. ’기분 좋다’는 말입니다. ’뭔가를 주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기분 좋은 말들은 엎어치나 둘러치나 다 그게 그말 같습니다. (161p)

 

"아빠 생각에 그 말은 그냥 배우면 즐겁다는 식의 단순한 말이 아니라고 봐. 뭐든지 즐겁게 배워야 한다는 겨. 그래야 그 지식이 즐겁게 평화롭게 쓰이게 되는 겨. 네가 만약 나중에 뭔가 되겠다고 출세욕으로 죽어라 공부한다면 그건 오히려 세상을 탁하게 만드는 겨.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 출세한다고 해도 너는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겨. 네가 괴로우면 어떻겠어? 주변 사람들도 괴롭겠지? 결국은 아무리 배워도 즐겁게 배우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배우면 누군가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 겨. 아빠도 그랬을 거여, 고통스럽게 배웠기 때문에 그 시식으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괴롭혔을 겨." (220p)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리하게, 더 편하게를 지향하는 삶의 현장에서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절,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농삿일의 고단함을 막걸리 한사발, 노동요로 씻어내렸던 시절. 보릿고개를 면해준 새마을 운동이 가져다 준것도 많지만 잃어버렸거나 사라져버린 소중한 것들도 많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잡지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공주 계룡산 언저리의 농촌으로 스며든 농부 아자씨 송성영씨의 유쾌발랄하면서도 슬프고, 행복에 겨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촌놈 쉼표를 찍다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농촌에서 자란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신새벽부터 깜깜밤중까지 일손을 놓치 않았던 아버지의 땀에 젖은 등이 눈에 아른거리게 합니다. 아마도 그 시절의 농법은 농부 아자씨의 농법과 많이 닮았습니다. 퇴비와 인분의 절묘한 조화, 코를 잡게하는 냄새도 잠시잠깐 해를 묵히면 아주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환경친화적인 농법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도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소출은 작았지만 우리 몸에 좋은 농작물을.. 소출을 높이기 비해 화학비료, 제초제, 수도 없이 농약을 뿌리다 보니 땅도 사람도 병이 들어갑니다.

 

농부 아자씨 지금은 뭐해요. 5대째인 배추도 쭉정이었나요. 알이 꽉꽉 들어차 배추 본래의 기운을 되찾았나요 궁금합니다. 토종이 사라지는 시대, 우리 농촌도 GMO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캐나다인가 미국의 농부가 씨앗을 채취하여 농사를 지었다가 몬산토로부터 소송을 당해 아직도 지난 법정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글 들은 기억이 납니다. 농부 아자씨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자씨가 거둔 씨앗이 한반도에 두루 퍼지길 기원합니다.

십수년을 뿌리내린 곳에서, 죽어버린 땅을 살려놓았는데 한순간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호남고속철도 공사로 삶의 터전을 고흥으로 옮겨야 했던 아자씨의 절절한 심정이 가슴으로 전해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농부 아저씨들이 개발에 밀려나고 있을까요? 한반도 운하를 위한 4대강 보 공사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그게 우리와 직결된 것이란 것을 깨닫고 힘을 보태지 못하는 소시민의 안락한 삶을 쉬이 버리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미 더 많이 쓰는데 익숙하다보니 농부 아자씨의 삶이 바람직한 모습이다라고 고개 끄덕여도 쉽게 따라 살지 못합니다.

 

땅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삶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고 웃는 날보다 인상 쓸 일이 더 많은 우리 아이들보다 인효와 인상이의 순진무구한 일상들이 부럽습니다. 정든 집을 따나야 할때 인효의 "’아, 집 한티 미안하네, 집아, 정말 미안하다." 말.. 아버지의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아이들의 생각자리가 친구들에게도 전해지고 아버지처럼 농부의 길을 선택했다니 참으로 기특합니다.

부지런해지기 위해서 땔감을 쟁여놓지 않고 겨울을 나고, 이웃사촌 영주의 방문에 떡본다고 제사지낸다는 격으로 쉬어갈줄 아는 넉넉함이 우리네 마음이라는 것을, 감추고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농촌의 현실을 오롯이 내게 보여줍니다. 지금도 주야장창 일하고 있을 고향의 벗들도 마음은 농부 아자씨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거두기보다 땅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고 뭇생명들에게도 좋은 자연농법으로 건강한 식탁을 차릴 수 있는 농작물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몇년전 귀농을 했던 후배가 다시금 도회지로 나와 학원 강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땐 울컥 화가 치밀다가 한순간 현실이 그를 가만히 버려두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느리게 가지만 크게 거두는 농사를 짓는 농부 아자씨의 이야기에 부럽다! 그러나 어렵겠지? 이미 너무 많이 도회지의 삶에 물들었고 불편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때고 고흥땅을 지나게 되면 새로 자리잡은 좋은 땅을 맨발로 밟아보고 싶고 그 땅에 희망의 모종을 나도 심어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은 있다는 메아리가 널리널리 울려퍼져 우리 식탁이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털복숭이 농부 아자씨가 깃든 고흥에 가고 싶습니다.
경제성을 따진다면 못짓는다는 농사, 그 기술도 배우고 싶습니다.

 

책에서 밑줄긋기

어리석은 산짐승이 숲을 만든다.
산짐승들의 어리석음이 숲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산 짐승들의 어리석음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산짐승들의 어리석음이 없었더라면 숲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나처럼 영악한 인간이었다면 그 열매들을 한군데에 모아두었다가 죄 파먹었을 것이고 숲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한 해 먹을 식량만을 저장해놓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먹을 거리를 얻을 수 있는 숲을 저장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129p)

 

 

급하게 핀 산 벚꽃
그새
홀라당 지었네요

눈처럼 휘휘 날리다
둠벙 가득 꽃잎 내려앉아
큼직한 하늘 꽃
한 송이 피워놓았네요

하루하루,
한 생을 마감하는 순간,
참회하듯
하늘 꽃 한 송이
피워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저자의 시 참회(202p)

 

따뜻한 가을바람아
시원한 가을바람아

추운 아침 내 등판에 오지 말고
욕심 가득한 저 사람에게도 오지 마라

오려거든
벼 베실 때 우리 아빠
더운 등판 식혀주고

낙엽질 때 우리 엄마
힘드시니 마당 낙엽 쓸어주고

놀다 지친 우리 동생
이마 땀도 닦아 주렴

졸졸 조는 개울물도
자장자장 쓰다듬고

여기 사는 것도
저기 사는 것도
모두모두 사랑하렴
- 송인효 가을바람(22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