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 영원의 구원을 노래한 불멸의 고전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양억관 옮김, 구스타브 도레 그림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단테의 신곡은 불후의 고전이다. 그러나 내겐 지옥편을 읽다가 완독에 실패한 아픈 기억을 가진 책이라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야 할 영순위 고전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 책이다. 내용의 난해함은 차치하고라고 부피의 중압감이란 부담감도 수반되어 다시 읽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지금 완독에 성공한 책은 단테의 신곡 원전이 아니라 구스타브 도레란 화가가 신곡의 주요 장면을  재현한 그림에 일본인 작가가 단테의 신곡을 발췌 편집하여 덧붙인 작품이라 너무 쉽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것이 죄송할 정도로 단숨에 읽은 셈이다.

르네상스 기본사상이 담겨 있고 피렌체라는 도시에서 단테 자신이 겪은 사건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가 융합되어 있다. 신곡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리스신화에 대한 이해, 단테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요한다는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은 구스타브 도레의 많은 삽화와 이해하기 쉽게 재편집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주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여 중고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다.

 

이성과 철학을 상징하는 고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안내자로 지옥과 연옥을, 신앙과 신학을 상징하는 단테의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를 길라잡이로 천국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단테가 여행을 하게 되면서 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죄, 인간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감정상의 죄악이 열거되고 있다.

 

단테 이전에 죽었던 사람들, 단테의 동시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정화시키거나 벌하는 악마와 천사들의 이야기, 그리스신화의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하는데 지옥편에 등장하는 다양한 지옥의 모습은 영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낄 수 있는 육신에 대한 징벌이라는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육신을 소유한 자들에 대한 징벌이다. 그렇다면 영과 육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지옥으로 간다는 것인지..아첨, 음욕, 살인, 자살, 절도, 사기~ 아첨이 그렇게 무서운 죄인지 싶을 정도로 강한 징벌을 받는다. 이곳엔 사제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옥이 인간이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끝나지 않는 징벌을 받는 곳이라면 연옥은 이와는 다른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고 정화가 되면 언젠가는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분노, 시기, 질투, 태만, 탐욕, 낭비~ 단테가 살았던 시대이든 현대이든 누구나 한번 이상은 저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천국은 시적으로 표현된 대목이라 살아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육체와 관련된 그 무엇이 아니라 빛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된 곳이라 그곳이 어떤 곳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살아있는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지옥은 있는가? 천국은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가?란 근원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만든다. 영혼과 육체는 완전히 다르다. 영혼도 살아있는 인간처럼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고 지옥의 징벌을 받을 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지옥에 떨어지면 가장 큰 고통은 육체가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 개그콘서트의 끝도 없이 반복해서 먹기 등의 가학적인 도전을 거듭해야 하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닐까. 연옥은 정화를 통해 천국에 이를 가능성의 문이 열려있지만 지옥은 가능성 그 자체가 닫혀 있는 곳이다.

 

지옥, 연옥, 천국이 실재하든 실재하지 않든 인간으로서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의 의도는 아니었다 하드라도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상처받아야 하는 뭇 사람들을 위해 단테의 신곡이 보여주었던 그 장면들을 기억하며 바르게 참되게 살아라는 가르침을 주는 신곡, 그 원전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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