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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콩쥐의 아버지 최만춘을 고추박이처럼 차버리고 다른 서방을 얻어 간 팥쥐 어미에게 관가에서 선물이 당도했다.
팥쥐 어미는 좋아라 하며 항아리의 아가리를 동여맨 노끈을 풀어보았다.
큰 항아리에 가득 든 것은 모두 젖갈이었다.
항아리와 함께 종이도 한 장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흉한 꾀로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든 이와 같이 젖으로 담그고,
딸을 가르쳐 흉하고 독한 일을 실행케 한 자에게 그 고기를 씹어보게 하노라'
팥쥐 어미는 그만 기절하여 자빠졌다. -콩쥐팥쥐중에서
동화 제대로 읽었나. 어른들은 너무해
콩쥐팓쥐는 너무나 유명한 전래동화라 드라마로 책으로 수차례 읽었다는 오래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데 작가가 인용한 대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팥쥐를 젖갈로 만들었다? 엄청나게 잔혹한 이야기 아닌가. 철이 들어서야 우리가 읽었던 이솝우화, 안데르센, 그림형제의 동화도 어린시절 읽었던 내용과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자체는 우리 읽었던 동화와는 다른 세상이란 것을 어른들이 아이들이 미리 알면 안된다고 해서 내용을 편집하여 부분적으로만 알려주었다는 것을.. 콩쥐팥쥐전도 완본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정말로 실감나게 하는 작가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는 못다한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못다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는 더 끄집어 낼 것이 없었다. 죽은 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 이러저러하니 조사해 주오, 나의 원한을 풀어주오, 하고 청하기 전까지는. 143쪽
잘 먹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서양의 동화는 대부분 권선징악,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좋은 행동을 하면 복을 받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된다. 그럼 그 뒤에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는 작가의 호기심이 모던 팥쥐전을 쓰게 된 동기란다.
동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오늘 날의 시대상황은 크게 달라졌고 가치관 역시 크게 달라졌으므로 동화속 인물들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면 어떤 모습, 어떤 생각일까, 이야기의 내용을 요즘 시대상황에 맞게 꾸민다면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말이 날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그림이 그려지는 소설 모던 팥쥐전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다.
콩쥐팥쥐, 여우누이, 우렁각시, 개나리꽃, 선녀와 나뭇꾼, 10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이란 전래동화가 이 소설의 소재다. 이중 개나리꽃과 지팡이 이야기는 정말 생소하다.
거의 대부분의 꽃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할미꽃, 히야신스, 수선화, 며느리밥풀꽃..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서려 있는 꽃, 모든 생화는 차갑다는 것이 바로 그것 이유구나.
옛날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나 사물들에게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니 어느 하나 사연이 없는 것들은 없는 모양이다.
모던 팥쥐전은 정말 충격적이다. 소름이 오싹 돋아 시골에 살았더라면 밤에 뒷간에 가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 그 자체다. 그리고 상상, 예측을 불허하는 반전은 작가의 기발한 착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이야기의 전개구조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조선희 작가의 매니아층이 많다는 출판사의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은 기존의 동화를 조금 비틀고 뒤집고, 예측을 불허케 하는 이야기 전개로 단숨에 모든 내용을 읽고 싶게 만든다.
모두가 놀라운 이야기지만 자신을 원하는 자리,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를 잡지 못한 평범한 사내의 이야기가 담긴 지팡이는 안스럽고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그러나 그렇게 원했던 자리가 옴쭉달싹할 수 없는 자리,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 자리에 밀어넣어야 탈출할 수 있는 자리라니, 생존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아서 슬프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열이 올랐던 순간의 기억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 구조가 나를 놀라게 만들고, 동화와는 180도 뒤집어진 이야기가 던져주는 쾌감이나 두려움, 복수가 때로는 통쾌하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든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결말로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모던 팥쥐전~ 온가족이 함께 무더위를 잊어버리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