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회를 지배한 정치사상중 천재지변과 군주의 정통성이 연계되어 있다는 유교의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있다. 기우제를 지낸 뒤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는 선농단의 유적이 말해주듯 기이한 자연현상의 발생원인을 군주의 부덕함의 소치로 보는 의식도 이와 다름 아니다. 특히 수십년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혜성이나 일식과 월식현상은 고대의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흥망성쇠와도 연결되는 현상으로 해석하여 이런 현상의 귀책사항을 군주에게 돌리고 있다. 작년의 히트 드라마인 선덕여왕에서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과 왕권을 사수하려는 세력간에 벌어진 분쟁의 주요 테마중의 하나였다. 신라 하대의 친족간의 왕위쟁탈전의 원인 혹은 선왕의 부덕함을 혜성의 출현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했다는 천문현상을 역사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도입한 책 핼리해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의 접근법을 참으로 신선하다. 조선시대 명종대에 도적이 창궐하고 민심이 흉흉한 것의 원인을 간빙기라는 자연현상과 연계하여 원인을 분석한 것을 보았을때 느낌 그대로이다. 물론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역사서에 혜성의 출현을 직접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은 그리 많지 않으나 중국의 천문기록과 일본의 기록을 근거로 한반도에 출현한 혜성을 고구한 저자의 폭넓은 연구는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싶다. 기록은 조작할 수 있지만 천문의 기록은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연계하여 설명하려는 것 자체만으로 흥미롭기 그지없다. 향가로 전해지는 융천사의 혜성가와 월명사의 도솔가가 백성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왕이 주재하는 제천의식의 하나로 진행된 것이라고 보며 삼국통일후 고구려유민들의 자치국인 보덕성민의 반란, 혜공왕의 시해사건, 836∼839년 희강왕(김제륭) 민애왕(김명) 신무왕(김우징)의 집권이 837년 핼리혜성과 838년 대혜성의 출현과 맞물려 있고 신무왕의 쿠데타를 도왔던 장보고가 841년 허무하게 암살되기 전에도 혜성이 출현했다고 하는 사료와 한중일의 천문기록을 고구하여 증명하고 있다. 왕권을 탐내는 세력이 혜성의 출현을 두고 현왕의 성세가 다했기 때문에 현왕을 시해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것의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쿠데타의 정통성에 대한 근거를 천문현상에서라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삼국통일후 평화를 구가하던 시대에 출현한 혜성의 경우 쉽게 잠재울 수 있는 현상이었으나 왕권의 정통성이 무너지는 혼란기엔 누군가에겐 책임을 물어야 할 존재(선왕, 장보고, 보덕성민 등)를 만들어 백성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했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 하늘은 백성만이 아니라 군주까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였고 평소와 다른 천문현상이 군주의 목숨을 요구할 정도로 백성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는 것이다. 어느 책을 보니 일식과 조식, 혜성의 도래는 오차없이 예측할 수 있으나 그날 그날의 날씨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옛날이었다면 일기예보를 하는 직종의 종사자는 천문을 지배하는데서 오는 권력도 컸겠지만 목숨부지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