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책이 사람을 만든다.
정혜윤, 장정일, 유시민, 진중권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독서이력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마주 대하는 느낌, 그 사람의 일기를 들여다 보는 착각이 든다.

대단한 사람들, 그토록 많은 책들을 통해 그들의 오늘이 나와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구나.

그러나 한켠으론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들, 어떻게 그 많은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었을까? 설마 외운 것은 아니겠지..그들의 이력은 보였으되 이런 흔적을 남긴 비법은 공개되지 않았다. 책은 많이 읽되 읽고 나면 아득해지는 나와는 다른 무엇을 알아가고 싶어진다.

같은 책을 읽었으되 전혀 다른 시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글들, 그리고 줄줄이 엮이어서 드러나는 다른 책들과의 그물망과도 같은 촘촘함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아직도 그들이 읽은 책에서 내가 읽은 책들은 일천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아직 멀었다. 어느 순간 아득했던 내 머리가 정리되고 감미롭고 흥미로운 말발, 글발로 화할 것인가?

 

감성적인 독서가 정혜윤 PD의 글은 언제나 촉촉한 이슬같이 가슴을 적신다. 침대와 책,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 이어 읽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하다면 역시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독서 이력과 다른 지식인들의 독서이력에 이어 그만의 고전 읽기 이력을 공개한다.

 

'고전은 나와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 그러나 고전을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고전이 너무나 유명해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유형의 사람이 바로 나다.'

웬지 어색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읽다가만 카프카의 변신의 내용이 이런 것이었구나란 것을 다시 각인시켜주는 이 책은 나를 고전의 세계로 유혹하고 있다. 읽어야만 할 것처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15권의 고전중, 저자가 참고한 책중 솔직히 읽은 책보다는 이름만 아는 책, 이름도 알지 못했던 책들이 더 많다는 부끄러운 고백과 읽었다고 생각하는 책도 읽지 않았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선택한 대부분의 책들에 흐르는 주제는 사랑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조지 오웰의 1984도 있지만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세상에 대한 사랑이든 나는 사랑을 보았다.
이루지 못해 가슴아픈 사랑, 집착에 가까운 병적인 사랑으로 모두가 불행에 빠져 버린 사랑. 사랑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곤 하지만 소설과는 다른 나의 사랑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핍의 관점에서 보자면 진정한 진실은 언제나 생소한 것이고 진실은 언제나 '폭로'된다는 것, 그래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가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 모든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진다는 것과 같은 진실의 속성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매그워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생은 누구에게나 살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와 하나의 열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빵 한조각을 가져다준 어린아이의 행동에서 고귀함을 보고 거기에 일생을 걸고 답하려 했다는 점에서 안쓰러운 매력을 느낀다. 그가 런던에 돌아오면 교수형당할 운명임을 알면서도 핍을 찾아와 영원히 같이 살고 했단 점 때문에 인간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핍이 진정한 신사가 되는 것은 매그워치와의 재회 이유다. 292쪽

 

찰스 디킨스의 찬란한 유산의 핍과 매그워치가 재회한 장면을 해석한 대목이다. 누구나 아주 사소한 행위 하나로 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쳐 그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 희망을 본다.

100년만에 찾아온 이상한파가 가슴을 움츠리게 하는 날들이었지만 이 책이 내 맘을 촉촉히 적셔주고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세계는 두번 진행된다.
나는 그렇지 않길 희망한다. 지난 과거가 다시 반복된다면 아마도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지난 과거의 상흔을 나는 물론이고 나의 자식들에게 경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의 지혜는, 내가 읽었다고 착각한 책을 다시 읽는데서 나왔다.' 제목만 들어본 고전, 읽다가 만 고전, 어린 시절 억지로 읽었던 고전(??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들을 나이 들어 다시 꺼내어 읽고 나면 그 시절과 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이 열리고 또 다른 내가 되는 지혜가 차곡차곡 쌓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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