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無爲堂 一粟子 장일순 선생님을 아세요?라는 머리말의 판화가 이철수님의 물음에 답하는 열에 하나라고 나는 대답한다. 그러나 너무나 피상적인 다른 누군가의 책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이나 신문지상의 뉴스를 통해 겨우 함자만 아는 정도이다. 가톨릭교인이면서 노장철학, 해월 최시형(동학), 생명사상, 공동체 운동의 선구자, 더구나 그분이 사람의 표정이 담긴 문인화의 대가라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굴 따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의 해맑은 미소,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미소, 세속을 초탈한 경지에 오른 선생의 미소와도 같이 푸근한 얼굴이 그분이 남긴 작품마다 담겨져 있다. 그림속에도 그분의 세상에 대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고나 할까? 일평생 그분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어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흔쾌히 나누어주고 전시회를 통한 이익금 모두를 큰 일에 사용하셨다고 하니 그 마음자리를 본받으며 살고 싶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제목만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장일순선생님이 사랑한 대한민국, 사람, 뭇생명들에 대한 연서와도 같은 글귀들과 선생님의 서화가 어루어진 잠언집이다.

 

一碗之食 含天地人 밥 한 그릇에 우주가 있다.(32p)


밥은 하늘입니다.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해월 최시형선생님의 말씀에서, 장일순선생님의 생각에서 김지하의 시로 승화되어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기를 바라지만 밥은 하늘입니다란 말만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 한 알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내 마음 지그시 눌러 주는 화두 같은 거지요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니에요?
'내가 조 한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 추스르는 거지요.(78p)


 

콧대
콧대 세우는 놈이 강한 게 아니다.
콧대가 부러지는 놈이 강하다.
그래야 다 받아들일 수 있다. (202p)



물신화된 종교관, 오도된 종교관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구절도 많다.

 

맨손만 가지고 나누어야 한다.
불알만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지금의 종교는 가진 것을 가지고 나누려다 보니
닭장을 짓고 모이라고 소리친다.(206p)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下心, 타인과 나의 구별, 천지인의 구별, 물아의 구별이 없는 것.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못해서 상을 주거나 추켜세워지면 모든 것이 자신의 공이고 제 잘나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범인들의 모습니다. 그래서 분쟁이 생기고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이전투구의 가시밭길을 걷는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미는 마음,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나쁜 길을 간다고 해서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그들마저도 껴안고 가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요 통일이요, 화해의 길이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을 따르지 않으면 적대시하는 문화에 젖어 있다.

 

나를 찌른 칼
자네 그렇게 옳은 말을 하다 보면
누군가 자네를 칼로 찌를 지도 몰라.
그럴 때 어떻게 하겠어?
그땐 말이지
칼을 빼서 자네 옷으로 칼에 묻은 피를 깨끗이 닦은 다음
그 칼을 그 사람에게 공손하게 돌려줘.
그리고 날 찌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고생했냐고
그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해 주라고
거기까지 가야 돼(49p)


 

변화
사회를 변혁시키려면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해요.
상대는 소중히 여겼을 적에만 변해요.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상대는 더욱 강하게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상대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르다는 것을 적대관계로만 보지 말아야 해요
내 것이 옳다고 하는
매우 이데올러기적인 틀을 갖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판을 짜려고 해서는
세상의 큰 변화를 이루기 어렵지요(72p)


 

종교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나와 남의 구분이 없는 삶을 지향하신 선생님의 곁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버지같은 분이라는 김지하, 지하철 1호선, 아침이슬의 김민기, 판화가 이철수,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이현주목사 등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사상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분은 일평생 자신의 사상은 이런 것이다라고 구체화된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짤막한 글귀를 통해, 서화작품을 통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음을 평온케하는 마법과도 같은 잠언으로 깨우침을 남겼다.

온화한 미소, 그가 뿌린 씨톨이 자라고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생명, 나눔, 평화의 공동체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늘어나 대한민국이 웃음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장일순 선생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그분의 생각에 동참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무위당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http://www.jangilsoon.co.kr)을 한번 방문하시길.. 사진과 작품은 사이트에서 참고함.

 

행복

이렇게 미련한 나에게도
낮에는 하늘의 태양이 밝게 비추어 주시고
밤에는 달이 자정의 빛을 주시며
땅은 필요한 만물을 제공해 주십니다.


이 못난 남편을 아내는 주야로 걱정하면서
건강하게 좋은 일 하기를 바랍니다.
내 자식 삼형제는 훌륭한 아비 되기를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내 아우들은 이 무능한 형을 공경하며
세상의 많은 선배 후배 친지들은
건강하고 도통하며 세상 만민에게 많은 복을 베풀기를 바라니
나의 인생이 이 이상 더 행복하고 기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나의 삿된 마음을 바로잡아주고 일순간 행복에 겨운 미소가 저절로 피어나게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취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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