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사회 초년병이었던 시절 교양을 쌓는답시고 ~ 길라잡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을 여러 종 읽었다.
그러나 그때뿐 나의 교양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극, 클래식, 국악~ 경험하지 않고 책만 내리 읽는다는 것의 한계라고나 할까?
교양인의 기준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을 우리는 교양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10인10색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다방면의 폭넓은 교양을 담지한 사람은 만나기 힘든 시대이다. 소설을 읽고 교양을 쌓을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닌가. 그것도 재미있는 추리소설로..

 

내겐 부족한 예술에 대한 기초 상식을 넓혀주었던 미술을 소재로 한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추리소설가 이은의  '수상한 미술관'을 읽었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해 파가니니와 바이올린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얽힌 사연을 모티브로 한 스페인 작가 조셉 젤리네크의 신작 악마의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의 구미를 강하게 당긴다.
이 작가는 베토벤를 소재로 한 10번 교향곡이란 작품의 후속작이며  베토벤과의 경쟁에서 진 음악가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본명은 이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필이면 경쟁에서 진 사람을 필명으로 했을까? 옮긴이도 궁금해 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문학을 자주 접하고 있다. 이 책을 옮긴이의 작품도 자주 접한다. 스페인어 인구가 많아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많고 작품도 다양한 것 같다.
 동일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은 작가들에겐 행운이란 생각을 해 본다. 자본주의 논리로 따진다면 그만큼 시장이 크다는 이야기니까?

스페인, 파가니니,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99%이상이라 악마의 바이올린은 처음부터 나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라사발과 지휘자의 대화는 물론이고 페라도모경위와 그 아들이 연주회 참석시 박수치는 예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라라~ 리리사태, 라라사~ 라라사발을 온전하게 기억하기까지 반 수 이상의 페이지를 읽은 다음이다.

 

이 소설은  바이올린 연주의 신화인  니콜로 파가니니가 임종 당시 던진 "그 안에는 악마가 들어있소" 한마디가 사제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자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가 악마와 결탁을 하였고 그가 자신의 입으로 시인했다는 이야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교회의 반대로 니스에 묻혔다가 사후 36년 이후에나 그의 고향 제노바에서 유택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다.(네이버 역사 인물 니콜로 파가니니 참고)

 

젊고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인 라라사발이 마드리드에서 스타라디바리우스로 성공적인 연주를 마치고 피아노 위에서 살해를 당하고 그의 몸에서 나온 피로 '악마'라는 의미의 이슬람어로 글씨가 써진 채로 발견이 된다. 천재 연주자의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의문과 추측, 주변인물들을 조사하면서 밝혀지는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담긴 놀라운 비밀, 악마와 결탁한 파가니니가 연주한 스트라디바리론 연주하지 마라. 그럼 당신은 죽을 것이다. 그것도 파가니니와 동일한 날인 5월 28일에~ 라라사발도 2014년 5월 28일에 살해를 당한다.

 

네이버 역사 인물편이나 기타 기록들을 펼쳐보니 28일이 아니라 27일이다. 우리 기준으로 날짜를 적은 것일까 역자의 번역실력은 다른 작품에서 익히 알고 남음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기준이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한강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296P)란 속담이 나온다.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보통사람보다 빼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을 보고 귀신같다는 말을 우리가 통상하는 것처럼 유럽인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거나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표현은 긍정적이라면 유럽의 표현 천재에 대한 시샘을 넘어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극언이다. 중세시대의 마녀 사냥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천재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추앙의 대상이지만 그를 시기 질투하거나 그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겐 그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도 라라사발과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산토리 고토의 경쟁의식 또한 만만치 않게 표현된다.

 

악마~ 그의 존재는 기독교적 신앙이나 이슬람적 신앙을 전제로 하는 존재자이다. 데드 이블, 바알, 사탄,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사람의 의식속에 존재했던 이름이다.
안동 임청각 앞에 가면 귀신들린 나무라 하여 갖가지 신비한 전설을 남기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받들어지던 나무가 어느 날 밤사이 전기톱으로 밑둥이 싹둑 잘린채로 발견되었다.
나무에 나쁜 짓을 하면 동티난다고 하여 금줄을 둘렀던 나무, 그 나무를 베었던 그 놈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살인범을 추적하기 위해 활용하는 기법도 흥미진진한 기법이다. 향수에 담긴 사연과 상식을 덤으로 얻었으니 이 책은 여러가지로 많은 지식을 안겨다준다.


나는 왜 눈치를 못채었나.
이리도 쉽게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복선이 있었다니.. 그것도 도입부에 나왔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라라사발의 죽음의 원인이나 살해동기가 미궁속을 헤맨다. 살인자가 고백한 것이 진실인가...스트라디바리에 깃들인 악마는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여전히 의문이다. 또 세월이 흘러 스트라디바리를 손에 넣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부음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궁금하다.
바이올린의 3대 명기 하면 스트라디바리, 과르넬리, 아마티인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와 과르네리(Guarneri), 과다니니(Guadagnini)인가.
이 소설에선 후자다. 지식인도 제대로 활용해야지 잘못보면 독이 될수도 아니다 전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시는 분 바로잡아 주시라.

 

소설과 관련된 보충 지식..
네이버 역사인물- 바이올린 연주의 신화 니콜로 파가니니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497

"그 안에는 악마가 들어있소"- 임종 당시의 한 마디
 한때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얻은 그의 경이적인 연주 실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대가로 얻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사제가 오늘 환자를 찾아온 주된 목적도 그것이었다. 곧 지옥으로 향할 죄인에게 마지막으로 영혼이 구제될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후두 결핵을 앓고 있던 환자는 침대에 누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악마가 나타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 음악가의 고백과 참회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 때문이었을까? 사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환자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의 바이올린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그토록 놀라운 선율을 내는 것이오?” 한발 한발 찾아오는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던 음악가는 그저 손짓만 했다. 아무 대답도 하기 싫으니 제발 나가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물러서기는 커녕 한층 더 집요해지는 사제의 질문에 마침내 환자도 짜증이 솟구친 모양이었다. “그 속에는 악마가 숨어 있소.” 거의 들릴까 말까 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인 다음, 음악가는 갑자기 바이올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사제는 비명을 지르며 그 집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했다. 악마와 결탁했다는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본인의 입으로 그 사실을 시인했다는 것이었다. 존경받는 성직자의 증언이라서 그랬을까? 이 소문은 그간의 구구한 추측에 대한 확증으로 여겨졌으며, 아무런 검증이나 의심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면 그 음악가는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던 것일까? 그런 소문이 근거 없음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임종의 자리에서까지 뜬소문에 대한 추궁을 받는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너희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다고 말해주마 하는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소문이 퍼지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어느 쪽이든 이제 그에게는 아무 상관없었으리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는 바로 그날, 14세 된 아들이 혼자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지중해 연안의 도시 니스에서 58세를 일기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1840년 5월 27일, 오후 5시 경의 일이었다. 

 

스트라디바리(Stradivari)와 과르네리(Guarneri)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섬세하게 조각되고 다듬어진 반면, 과르네리는 거칠게 손질돼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연주자들은 대개가 초기에는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하다 말년에는 과르네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음색이 스트라디바리는 여성적, 과르네리는 남성적인 소리이기 때문일까?
현재 남아있는 바이얼린의 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540여대, 과르네리는 150대 정도이다.

 

과다니니(Guadagnini)
현악기의 고장인 크레모나 남서쪽 피아첸차에서 활동한 로렌초 과다니니(1695~1745)가 첫 시조이다.
그의 아들 조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1711-1786)가 비로소 과다니니의 명성을 확립하였고,
말년에는 스트라디바리의 영향을 받은 명기를 다수 만들어냈다.

 

* 사진출처 네이버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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