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狂氣
누구나 광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 시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정상보다는 비정상적인 뉴스나 상황에 더 눈길 마음길을 보내면서 안 그런척, 무심한 척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정도가 외부로 노출이 된 사람들이 광인이란 낙인이 찍혀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정상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눈길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가족내 폭력, 국가내, 국가간의 폭력앞에 무너져 내린 인간의 심층심리란 어떤 것인가. 영국의 작가 헨리 제임스가 모든 작가들에게 정신병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말라고 조언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무엇 하나엔가에 미쳐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에 미치고 돈에 미치고, 이념에 미치고..미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친 생각이 아닐까.

콜롬비아의 정치적 상황과 가족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절묘하게 묘사한 작가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장편소설 광기는 낯설음, 긴 호흡,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정황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릴 적 경험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가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죽음에 이르게하고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크게 보아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 콜롬비아로 이주해 온 가족 3 세대의 가족사가 다양한 화자의 시선으로 표현되어 시점이나 상황들이 복잡미묘하게 꼬이고 꼬이지만 그 광기의 원인은 모두 트라우마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온전히 이해한 나의 아둔함이 책을 읽는 속도마저 더디게 만든 것은 아닌가. 소설의 상황에 몰입하기 보다 이것 저것 따지려 드는 생각들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부모인 포르툴리누스와 블랑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호아코와 아우구스티나, 남동생 비치 소피이모,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마약 조직, 미다스, 성불구가 된 거미, 아우구스티나의 남편 아길라르

아우구스티나의 비밀의식을 치루는  남동생 비치에 대한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 오빠의 묵인, 누나의 죽음을 목도했던 할아버지의 비밀, 예지능력을 타고난 아우구스티나는 동생을 아버지로부터 보호하려고 했지만 보호할 수도 없었고 한편으론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잃고 싶지 않은 이중성.. 아버지와 이모의 불륜을 비치가 폭로했음에도 기존의 것을 지키지 위해, 비밀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한 가족간의 묵계.. 할아버지가 자살했음에도 독일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기억하려는 생각들처럼.. 진실이란 것도 집단이익에 가려지기 시작하면 착한 영혼은 상처를 받고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만든다는 것을...

세계 최대의 마약생산국 콜롬비아, 마약범죄자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상류층의 결탁, 그와 연결된 폭력의 악순환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가정내 폭력이 몰고 온 파장과 그를 비밀에 붙이려는 가족 구성원의 무언의 합의가 그 반대편에 선 가족의 영혼을 파괴하는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의 기록, 미다스의 이야기, 아길라르의 이야기라는 세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아우구스티나의 광기의 원인에 대한 추적은 조금은 지루하면서도 끝내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묘한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다.

과거의 기억들에서 파생된 상처가 점점 더 내면의 세계로 깊숙히 침잠하게 만들어 현실세계와 과거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와 그 손녀 아우구스티나를 정신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줄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누이 일제와 비치뿐이란 생각을 일견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아니라 바로 두 사람 자신이며,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타자인 블랑카와 아길라르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에 내가 얻은 소회다.

우리와 다른 상황, 다른 생각,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을 미치게 만든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도 비일비재한큼 그들이 미치기 전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친 시대를 미치지 않고 건넌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혼자 건너는 것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과 더불어 건널 수 있었더라면 광인이 되지 않고도 감내할 수 있었을 같기도 한데. 누가 제대로 알수 있으랴! 아우구스티나와 포르툴리누스의 정신세계를~ 아프다고 말하기 전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행복에서 파멸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 아닐까. 미다스의 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