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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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와 우, 보수와 진보
둘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을 발본색원하여 이 땅에서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로 낙인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극과 극이라고 할까? 일제 식민 지배문제, 정신대, 친일파, 과거사문제, 남북문제, 북핵, 미국, 쇠고기수입, 4대강 등등의 사안에 대해서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날선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해방 이래 정신세계 만큼은 좌익이 지배해왔다는 작가의 지적엔 동의할 수 없으나 그동안 운동권 청년들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은 많았지만 '구월의 이틀'처럼 우익 청년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은 전무했다는 말엔 공감이 간다.
올드 라이트, 뉴 라이트, 퓨어 라이트로 구분한 것처럼 순수 우익 청년, 바람직한 우익이 이땅엔 전무했다는 문제의식이 우익에서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고 싶다.

 

 류시화 시인의 구월의 이틀에서 따온 것이며 작가가 대학생을 가르치면서 첫날 강의 테마로 사용했던 것을 소설에 차용한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가 고작 시처럼 이틀에 불과하다. 그 이틀의 시절에  주인공은 조우한다.

 

 전국을 노란색으로 물들인 故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시기,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청와대 비서진이 되어 서울로 이사하는 광주청년 금과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야반도주격으로 큰아버지 집으로 이사하는 부산청년 은
둘이 휴게소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목도한 사건~ 대통령 당선자 뉴스를 보고 기뻐하던 젊은 부부에게  노인들은 “빨갱이들 세상이 되니 좋니”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는 폭언과 행패를 당하면서 황급히 떠나는 그들이  얼마후 아이만 남겨놓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면을 목격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정치가를 꿈꾸는 금과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한다며 엄마의 권유로 국어교육과에 진학하는 은은 자란 환경, 성격이나 외모 등에서도 완전히 다른, 어떻게 보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질적인 사람이다.
개미를 읽다보니 난자는 자신의 유전자와 가장 다른 정자를 선택한다고 하는데 친구중에서도 판이하게 다른 사람과도 절친이 되는 경우다.

 

나의 학창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학, 그리고 성장기를 지낸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작가의 주관이 심하게 투영된 주인공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이물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전원 취업이 보장되는 사범대, 1년에 수천명이 배출되는 사법시험 합격자들-임용고시로 교사를 선발하고 1년에 1천명을 선발하는 사범시험-이란 대목을 보더라도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문장들도 많이 보인다. 작가의 시선으로 두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비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고뇌의 흔적보다는 개인적인 감상에 젖은 두 사람의 행보는 엇갈린 길에 서 있지만 그들을 만나게 하는  매듭이 동성애 코드라니, 금과 반고경의 질펀한 정사, 올드 라이트 거북선생과의 동성애, 뉴라이트인 삼촌의 성정체성을 굳이 이 소설에 배치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떤  책에서 조순형의원, 김영삼전대통령 일가와  독립운동가 집안에 얽힌 비화를 보고 왜 그들이 현재의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고 이전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던 근본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처럼 은이 우익청년의 길, 보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나 고민을 좀 더 심층적으로 그리는데 할애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역사엔 진정한 보수(우익)가 없었다. 아니 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월을 숨죽여 건너왔는지도 모른다. 진보세력은 험난한 시절이었지만 자신들의 지향을 위해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인동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성장해 온 것에 비한다면. 보수답지 못한 보수가 보수의 껍질을 쓰고 있다는 은의 지적은 백번만번 지당하다. 현재 급부상하고 있는 뉴라이트의 문제를 과연 작금의 우익청년들은 은처럼 직시하고 있는지. 쇠고기 수입 집회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은의 생각과는 판이하다. 올드 라이트와 뉴 라이트의 모습은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어느 사이 금과 은의 부모님의 세대 언저리가 되어버린 나, 우리가 보낸 구월의 이틀과 금과 은의 세대가 보낸 구월의 이틀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노래가 세대차를 만든다는 소설속의 말처럼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는 세대가 공감할 수 없는 틈새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 바닷길을 떠나는 배의 안전 운항을 보장하는 배의 바닥짐이 되기 위해 보수의 길을 선택한 은과 아버지의 자살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작가의 길을 선택은 금, 서로 다른 차이를 드러내기 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모색을 기대한다.

 

 

책에서 따온 글.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죽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끽소리 없이 고분거리고 있거나! 사실 그런 떨거지들은 볼펜의 똥 찌꺼기보다도 못하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국가는 물론이고 문명의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함께 진화하며 성장하고 함께 적자생존의 단맛을 나누지 못할 낙오자들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나 인류 문명을 위해 빨리 사라져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냐? 대한민국의 명운을 위해 다시는 노무현 일당처럼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선동전문가들이 권력을 넘보거나 나눠 먹자고 덤벼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강하고, 실력 있고, 아름답다."  은의 일기 꿈의 노트중에서 뉴라이트이자 모대학 법대교수인 삼촌이 읽은후 대화중에서 269쪽

 

"그래, 은 네가,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다. 젊은 우파라면 적오도 이런 수준에서 시작해야 해. 그런데 보통은 이런 근거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고 대항의식으로부터 시작하지. 예를 들어 '나는 좌파가 싫다', '나는 운동권 애들이 너무 설쳐서 싫다', '나는 김정일이 너무 밉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제대로 된 '대한민국 재건국' 운동을 할 수 없어. 미구에 시작될 '대한민국 재건국' 운동은 그런 대타의식으로부터 벗어나 '강한 것이 선한 것이고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자긍심과 자기 정립에서 시작해야 해. 내 윗 세대인 올드 라이트는 일제나 독재에 가담한 원죄가 많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와 같은 뉴라이트는 좌파에 대한 원한이나 피해의식이 있어. 그래서 원죄도 원한도 없는 순수한 우파, 너와 같은 영 라이트(young right), 퓨어 라이트(pure right)가 필요해" 269쪽

 

' 이 미친 늙은이, 노망도 참 단단히 났네. 도끼로 정수리를 콱 찍어버릴까 보다. 이런 늙은 이들은 대체 언제까지 어리광을 부리려는 걸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좌파는 고문당하고 죽고 그것도 못 당한 사람은 하다못해 감옥이라도 가지 않았나? 그때 이런 노인네들은 호의호식하면서 '아무도 알알주지 않는 지옥'에 있었을 뿐이면서, 뭐가 그렇게 억울한 것일까? 온통 우파가 권력과 물질을 차지했던 나라에서, 이런 노인들이 좌파 지식인들에게 핍박을 받아봐야 또 얼마나 받았다고? 우파 노인네들이 이처럼 나약해빠졌으니, 일제 식민지 시기를 이야기할 때도 '위안부는 강제가 아닌, 공창이다', 일본 식민 지배는 조선의 축복이다' 같은 애먼 소리를 해대고 망신살이 뻗치지. 대체 그런 역사관이 강한 것을 지향하는 우파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이 노친 세대는 우파라면서 왜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지 않는 걸까? 답은 하나야. 이 노친네들은 빨리 죽어야 해.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고 벌벌 떠는 이런 계집애처럼 나약한 구舊우파들이 깨끗이 청소되어야, '미국 없으면 어때?'라고 턱을 세우는 진짜 당당한 우파들이 새로 돋아나지. 이땅에서 '좌빨'이나 '빨갱이'들을 몰아내려면 그런 신新 우파가 빨리 나와야 해. 미국과 동맹을 절연하라거나 반미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미국에 당당한 우파가 나오면 '좌빨'들은 저절로 사그라져. 그것도 모르고 주구장창 입을 떼느니 '미국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고 외쳐대고 광복절엔 미국 국기를 들고 나와서 꼴값을 떨어대니 '좌빨에게 말발이 안 서고 무시당하는 거지.' 316쪽


'저 자들이 죽으면 지옥이 아니라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한다. 거기서 무엇을 위해서도 일부러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거짓말을 영원히 반복하면서, 마음속 깊이서부터 차오르는 회한과 자괴를 느껴야 해, 그게 벌이야.' 321쪽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런 가치를 만들어낼 힘이 없어. 문학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애는 건데, 나는 보수적이야. 새로운 걸 못 만들어. 그저 선생님들의 말에 '예, 예' 하면서 따라하는 것만 잘할 뿐이지. 그런데도 나는 그게 이 세상을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해. 나는 배의 바닥짐 같은 사람이나 가치를 좋아해. 바닥짐이 뭔지 알지? 선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배의 바닥에 싣는 물이나 모래 따위의 무게 나가는 화물이야. 이걸 싣지 않으면 배가 쓰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강한 바람이나 큰 파도에 휩쓸려 난파할 우려가 커. 그래서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반드시 바닥짐을 싣고 다녀. 바닥짐이 없으면 배가 침몰하는 것처럼, 보수가 없으면 국가나 사회도 뒤집어져. 그래서 나는 보수주의자가 됐어."  326쪽

 

구월의 이틀 -류시화


구월의 이틀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까지 손을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에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고 높은 탑 위에 올라가 나는 멀리
돌들을 나르는 강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 더 먼 곳에도
강이 있어 더욱 많은 돌들을 나르고 그 돌들이
밀려가 내 눈이 가닿지 않는 그 어디에서
한 도시를 이루고 한 나라를 이룬다 해도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나의 구월이 있다
구월의 그 이틀이 지난 다음
그 나라에서 날아온 이상한 새들이 내
가슴에 둥지를 튼다고 해도 그 구월의 이틀 다음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빙하시대와
짐승들이 춤추며 밀려온다 해도 나는
소나무숲이 감춘 그 오솔길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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