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노벨문학상 수상, 영연방국가 최고의 소설가에 주는 부커상을 두차례나 수상했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아니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서 J.M 쿳시의 이름은 너무나 생소하다. 그만큼 편향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는 증빙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다가 "한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결혼 생활이 막을 내리는 것과 같다." 라고 표현한 작가는 노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뿌리를 내린 후 쓴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의 무대가 호주의 소도시다.

 
음악엔 문외한이라 바흐의 음악에 비유되는 대위법적 소설이란 옮긴이의 평은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장을 덮은 지금까지도 내겐 오리무중의 형국이다.

 
낯설다.
세 단락으로 나눈 소설, 하나는 노작가인 세뇨르 C의 강력한 의견과 일기와 작가의 눈으로 본 안냐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고 다른 하나는 안냐와 그의 동거남인 앨런이 화자가 되어 세뇨르 C의 인간성과 그의 강력한 의견에 그들의 평가가 담겨 있다.

 
어떻게 읽어야 잘 읽을까?
강력한 의견을 먼저 읽고 세뇨르 C의 말을 듣고 안냐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이야기 전개가 세갈래로 갈라지다 보니 기억력이 급속도로 감퇴하고 있는 내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난 이렇게 읽었다. 세뇨르의 말을 듣고나서 안냐와 앨런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세뇨르의 강력한 의견과 일기를 소제목으로 구분하여 읽었다.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지 전개구조상 의견을 먼저 읽어야 될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땐 막힘이 없지만 세뇨르의 강력한 의견이나 두번째 일기(안냐는 부드러운 의견이라 칭한다)는 호흡이 다소 길어진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노작가 세뇨르 C는 독일의 출판사로부터 강력한 의견을 주제로 담론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피력해달라고 한다. 정치, 경제, 환경, 성폭력, 전쟁 등등에 대한.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어 글씨도 비뚤빼뚤, 타이핑도 잘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공동 세탁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묘령의 필리핀계 안냐를 보고 그의 타이피스트가 되어줄 것을 제안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와 상호소통은 시작된다.

 

강력한 의견은 부담스럽다.
세뇨르의 강력한 의견은 아무래도 쿳시의 생각들이 진하게 투영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문제는 물론이고 그의 모국이었던 남아공, 미국과 영국, 전세계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한 담론에 대한 그의 입장표명이 담겨있다. 그러나 투자컨설턴트로 돈벌이에 눈먼 앨런이나 그와 동거하는 안냐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는 이야기다. 누가 그런 일에 시시콜콜 의견을 내고 들어줄까? 어젠가 6학년이 된 아들녀석의 일기장을 보았다. 글씨는 힙합댄스를 추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놀랄정도로 자기주장이 담겨있다. 나의 그시절은 밥먹고 놀았다가 일기의 전부였는데. 자신의 분노나 안타까움이 여지없이 표출되어 있어 두렵기 까지 한 대목도 있었지만 보궐선거일, 누구나 투표를 해야한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선거로 선출된 사람들의 정책에 반대할 권리가 없다는 식. 담론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표출한다면 지금 세상은 요모양은 아닐 것이다.

 

의견을 타이핑하면서 소통의 싹이 튼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그러나 간접적인 대화방식인 한 사람의 의견을 타이핑하는 행위를 하면서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덧보태다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의 장이 열린다. 그러나 안냐와 달리 지독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안냐와 같은 일(타이핑이나 독자가 된다면) 이해하고 공감하여 또 다른 의견을 내기보다는 흠집잡고 트집잡고 흑백좌우로 금 그은 잣대로 꼬투리 잡기에 연연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세뇨르 역시 그런 신문기고문을 접한다.

 

남녀는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세뇨르가 안냐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 안냐가 세뇨르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랐지만  소통을 통해 합일점을 찾았다. 사랑이란 느낌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향기로운 신뢰가 싹텄다는 생각이다. 세뇨르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고 싶은 안냐의 희망은 과연 지켜졌을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만난 세뇨르와 안냐지만 점점 더 상대방에게 끌리고 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그들의 이야기와 앨런과의 관계가 극한에 이른 마지막 저녁식사에 도드라진다.

무미건조한 노작가의 삶과 의견. 생각들의 일면에 나의 모습이 투영된다. 세상사에 시시콜콜 관심이 여전한 나와 친구들 일부, 생활전선에 깊숙히 뿌리내린 친구들의 말론 아직도 정치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나란 말을 하는 것처럼 안냐 역시 세뇨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라고 한다.

 

강력한 의견엔 안냐의 의견도 담겨있다.
타이핑이 아니라 편집자의 지위가 부여된 안냐의 참여!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오랫동안 만나면 차이가 부각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의견차가 좁혀지고 닮아가는 모양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만남을 통해 세뇨르 C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노작가를 만나 안냐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번의 짧은 키스와 포옹으로 막을 내린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가 아니라 아주 운 좋은 해의 일기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세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읽어야 하는 소설, 다양한 담론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 계기, 죽음을 목전에 둔 노작가와 갓서른이 된 여자의 만남. 아름답고 향기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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