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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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마음에 쏙 드는 기획이고, 좋은 작가를 많이 만나기도한다.
왠만하면 일단 사서 읽는다 주의이기도 하지만, 민음사의 유튜브를 보고 덕질의 세계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을 얻게 된 터라 어서 이 책을 읽음으로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민음사 유튜브 번창하세요. 정말 재밌습니다.)

항구가 있는 지방 도시에서 성장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여자 학생들만 모여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오묘한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느낌.

힐러리가 우상이 될 수도, 일부러 남자 같이 행동하는 또래가 우상이 될 수도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학교, 학창 시절이지 않나 싶다. 제한된 장소에 몰아 넣어져 있는 환경에서 나름의 환타지를 구축하는 것이 그 시기를 견디는 유일한 수단일 수도 있다.

지나간 어떤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릴 독서가 될까 기대도 했지만, 경험의 차이일까.
여중, 여고에 특화된 경험일까, 지역의 차이일까. 조금은 생경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시절의 조급하지만 막막한 감성은 충분히 와닿는다.

- 나는 그 일을, 그러니까 남들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즉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처럼, 유럽의 어느 도시나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 남쪽 끝에 붙은 항구도시 목포에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 일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고, 그보다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일은 너무 일찍부터 내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 11

- 이후로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할 때 그 부분을 건너뛰곤 했다. 그 때의 나도 나인데 빼버리고 싶었다. 앞뒤와 연결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그 부분까지 포함한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53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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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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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즐겨읽는데 어느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하는 지점은 작가와 작품에 따라 꽤 다른 것 같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즐거워 지는 것은 인물과 사건의 전개가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줄 때, 내면에 대한 공감할 만한 통찰이 있을 때,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이 존재할 때 등등 이다.

샤론 볼턴 너무 마음에 드는 작가다. 책읽는 취향을 믿을 만한 분이 추천한 책이고, 초반 묘사부터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버렸다.
서스펜스가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의 공포가 아닌 촉감(충분히 상상하게 만드는)으로 펼쳐진다.
게다가 시작과 동시에 동물이 죽고(으악.... 진짜 싫은 지점) 그 덕분에 증오의 레벨을 상당히 올려놓고 시작되서 이 범인은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만 한다는 당위를 준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고 큰 상처를 가진 클래러가 어떻게 동네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 탐정 노릇을 하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가 흘러가려면 그래야만 하기도 하지만, 동물에 대한 애정과 연민, 스스로를 돌보기 어려운 약자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다. 결국은 공감능력이 주인공을 움직이는 것이다.
공감력은 지능이라는 말에도 딱 들어맞는 좋은 캐릭터다.

- 나는 홀 안을 둘러보았고 흔들림없이 주목하는 사람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그리고 흉측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들을 확인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주저 않고 학대하려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얼마나 자주 합법적이 이유를 들어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것일까? - 58

- 나는 그녀를 보았다. 지금껏 나를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농담이겠지? 하지만 바이얼릿은 웃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웃지 않았다.
˝속에 든 게 중요해, 아가씨.˝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문이 저절로 닫히게 내버려 둔 채 집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서서는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 늘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죠.˝ - 211

-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냥 흉터일 뿐이에요. 그게 제 인생을 망치지는 않아요.˝ - 498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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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ㅣ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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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지인의 책이라고 하여 아는사람, 아는 여자 돕기의 일환으로 펀딩에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무척 재밌다.

달콤한 밤과는 무척 먼 거리에 위치한 이야기로,
남조선사회주의노동자당 출신의 모텔 캐셔를 중심으로 이 사회의 꼴 보기 싫은 지점들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이야기.

분홍 일색의 표지 탓에 말랑하고 달콤할 거라 지레짐작한 점이 미안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분홍이 아닌지. 오해할만 하지 않은지..)

특히 ‘너의 달란트를 사장에게 알리지 말라‘는 챕터는 예비 직장인, 아니 사회생활하는 모두에게 필독시키고 싶다.

- 여자 패는 새끼들은 지옥불에 플라스틱이랑 같이 불태워버려야해요. 아니, 내세까지 갈것도 없어, 넌 이 새끼야, 죽을 때까지 미세플라스틱 먹고 죽은 생선만 먹어, 이 발암물질 같은 새끼야. - 72

- 타자의 죽음을 해석하는 일정한 회로가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어요. 죽음의 영역이지만 죽음에 대한 주석만 달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샴 쌍둥이처럼 등을 붙인 한몸이라서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타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삶의 태세를 놓치지 않아요. n분의 일의 죽음을 인정하고 n분의 일의 삶을 또 살아가는 것이지요. 무심하게, 이 갈리게. - 112

-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어. 네 무덤 위에 꽃을 뿌리며 네 몫의 삶을 대신 살아주겠다는 건 남아 있는 자들의 자기위안일 뿐이야. 네가 살지 않는 삶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잠시 너의 상실에만 집중하렴.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살아. 우리 모두 그래도 돼. - 166

- 하다하다 저엉 안되면, 그냥 대충 살아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 - 206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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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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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는 사람처럼
지평선이 뜯어진 세계처럼
우리는 안녕 - 시인의 말

- 몹시 사적인 날씨야. 인생을 우물 같다고 하든, 바다 같다고 하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사적인 날씨에 휩쓸리면 우리는 그때마다 유일한 날을 꿈꾸지. - 가로수 관리인들 중

- 나는 지나갔어요. 가장 슬픈 마음도 나를 붙잡지 못해요. - 세월 중

- 너를 관통하는 그 모든 느낌들을 나는 장악하지 못한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전부일지 모를 그 느낌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네가 없는 곳에서 너를 사랑하고, 너는 네가 없는 곳에서 사랑받는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사랑하지 못한다. - 신형철, 해설 중

2019. 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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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ㅣ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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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작가의 사랑에 대한 철학 에세이 중 가장 좋았다. 아니 외국작가의 것들과 비교해도 아마 가장 좋지 않았나 싶다.
‘김소연‘ 시인에게 만큼 만족감을 느낀 글은 없었던 것 같다.
번역을 거치지 않은, 언어를 아름답게 다루는 시인의 사랑 철학이라 더더욱 좋았다.
‘사랑‘을 표방했으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읽고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없는 세대>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멜로로 연결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 것도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읽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같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써 사랑을 소외시켜 왔던 것이다. - 13

- 그녀가 그토록 거부해왔던 것들이 실은 사랑의 본령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설렘, 두근거림, 반함‘ 이 정도가 전부인 것은 아닐까, 라고. 그 자그마한 세계가 겨우 사랑은 아닐까 하고. 그것만이 순결하고 아름답고 환한 사랑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모든 절차는 사랑의 사망을 향해가는, 지난한 애도의 절차같기만 했다. -22

- 어쩌면 그 청춘의 시간은 일찍이 노인이 되어버린 시절인지 몰랐다. 노인처럼 세상을 다 산듯 살았으나 노쇠하지는 않아서, 희망을 희구하지 않았고 너절한 삶을 용서하지도 않은 채로 환멸을 에너지 삼아 숨을 쉬었다. 소중한 것이 없었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감각만이 소중했다. - 136

- 방 안에 흩어진 여러 명의 나. 그 여러 명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이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어 보기로 했다. 그냥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 신이 망각한 이 공간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 218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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