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ㅣ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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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작가의 사랑에 대한 철학 에세이 중 가장 좋았다. 아니 외국작가의 것들과 비교해도 아마 가장 좋지 않았나 싶다.
‘김소연‘ 시인에게 만큼 만족감을 느낀 글은 없었던 것 같다.
번역을 거치지 않은, 언어를 아름답게 다루는 시인의 사랑 철학이라 더더욱 좋았다.
‘사랑‘을 표방했으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읽고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없는 세대>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멜로로 연결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 것도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읽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같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써 사랑을 소외시켜 왔던 것이다. - 13

- 그녀가 그토록 거부해왔던 것들이 실은 사랑의 본령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설렘, 두근거림, 반함‘ 이 정도가 전부인 것은 아닐까, 라고. 그 자그마한 세계가 겨우 사랑은 아닐까 하고. 그것만이 순결하고 아름답고 환한 사랑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모든 절차는 사랑의 사망을 향해가는, 지난한 애도의 절차같기만 했다. -22

- 어쩌면 그 청춘의 시간은 일찍이 노인이 되어버린 시절인지 몰랐다. 노인처럼 세상을 다 산듯 살았으나 노쇠하지는 않아서, 희망을 희구하지 않았고 너절한 삶을 용서하지도 않은 채로 환멸을 에너지 삼아 숨을 쉬었다. 소중한 것이 없었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감각만이 소중했다. - 136

- 방 안에 흩어진 여러 명의 나. 그 여러 명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이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어 보기로 했다. 그냥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 신이 망각한 이 공간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 218

2019. 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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