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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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역시 여성작가의 활약이 눈부시다.
어떻게, 어느 순간부터 이런 분위기가 된거지? 싶을 정도로.
그래서 너무 좋고, 반갑고, 즐겁다.

편혜영, 김금희, 김사과, 김혜진, 이주란, 조남주, 최은미 모두 좋아하는 작가라서 더욱.

호텔 창문에서는 죄의식에 대해, 호의를 가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남은 사람의 불편함에 대해, 그 모호하고 묘한 지점의 이야기다. 최근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모텔 방화를 뉴스에서 스쳐본적이 있는데, 그저 뉴스의 한 꼭지로 전달되는 그 순간 그 뒤의 이야기, 그 앞의 이야기 들이 자연스럽게 상상되는 효과를 주기도 한 단편.

- 아버지의 노동은 전적으로 자식들을 키우는데 쓰였다. 나는 부모의 고된 노동으로 자랐고, 작아졌으며, 웃고, 읽고, 침묵했고,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묵묵한 노동의 방식과 습성을 내게 기꺼이 물려주었다.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가진 거의 전부이다. - 편혜영, 수상소감 중

- 언젠가 퇴근하면서 그런 지적하는 것 안 어려우세요? 저는 더구나 막내라 참게 되는데, 하자 리애씨는 참으면 안 되죠, 라고 했다. 참으면 미워하게 돼, 그러기 전에 말을 하는 거예요. - 43, 기괴의 탄생, 김금희

- 나는 평소에는 크게 관심도 없는 사랑의 면면을 왜 이 여름 이렇게 고심해야 하나 생각했다. 리애씨도 선생님도 모두 나보다는 근 십수년은 위인 여자들, 그러니까 더 늙고 경험있는 연륜있고 스펙있는 여자들인데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여전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다 날아가고 남은 건 희망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었을까. - 62, 기괴의 탄생, 김금희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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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ㅣ 프로젝트 메이지 Project Meiji
케이트 쇼팽 지음, 제이미 킴 옮김 / 새벽고양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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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쇼팽이라고 해서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샀는데, 정말정말 초초단편.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 모든 긴장과 반목이 해소되는 일탈의 이야기. 블랙코미디.

- 그렇게 폭풍은 지나갔고 그들 모두는 행복했다. - 13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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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짐승아시아하기 ㅣ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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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통렬하다˝

-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끝끝내 여자라는 것.

- 나와 그 장소 사이의 어떤 지점에 차이 없이 분별없이 뒤섞여 있는 나의 ‘여자짐승아시아‘라는 비가시적인, 그러나 일의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막의 모래처럼 일어서고, 무너지는 ‘몸의 세계‘가 있었다. - 13

- 나는 날마다 다른 정체성의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텍스트 속에서 오늘은 소녀였으나 내일은 할머니로, 다시 할머니소녀로 태어나고 싶다. 오늘은 연어였으나 내일은 사냥하는 곰으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색으로, 무늬로, 이미지로, 어떤 작은 기미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 여기 있는 여자가 아니라 여기, 저기 있는 여자, 나 때문에 여기가 여기없는 저기가 되는 여자가 되고 싶다. - 16

- 나는 내 열병을 문병가기로 한다. 땡볕에 구린내 지린내 칠갑한 낙타를 보러가기로 한다. 날마다 잠자고 일어나 문밖을 나설 때마다 내 이생의 시간을 짊어지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한 마리를 떠올렸다. 어찌나 많이 떠올렸던지 이제 내 낙타는 늙고 나도 늙었다. 날마다 무거워지는 내 전 생애의 시간을 짊어지고 사막을 홀로 걸어가느라 이제 고통과 짐에 절어버린 내 낙타. 나는 아무래도 낙타를 보고 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164

- <소녀의 붉은 뺨>
비가 오면 층층이 3천 개의 거울이 넘쳤다.
벼가 익는 거울.
쌀이 쏟아지는 거울.
그 거울 꼭대기에 집 한 채 섬처럼 떠 있었다.
그 집에서 도시 총각에 홀린 손녀가 병이 났다.
할머니는 계란 두 개를 상에 올려놓고 염불을 외웠다.
아픈 손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너는 물고기가 아니란다.
너는 아빠 엄마의 딸이란다.
소녀가 3천개의 거울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보내줘요, 날 좋아줘요.
거울님, 거울님, 날 놓아줘요.
밑에서 쳐다보면 소녀가 하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자라 드디어 시집가는 날.
할머니는 누구에게 시집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머리에 옷을 덮은 그녀가 울었다. 소리높여 울었다.
끌려가는 짐승처럼.
소녀는 남편의 남동생들과 다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 다음 날 남편은 돈 벌러 도시로 떠나고,
그녀는 겨울 지나 남편의 둘째 동생과 또다시 결혼해야 한단다.
어두운 방에서, 남편 형제들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받으며
그녀가 그보다 더 번들거리는 버터차를 만들고 있었다.

- 독재정권 아래서 살아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퇴폐, 슬픔, 분노, 타락을 어떤 예술 작품 형태로도 표출하지 말라는 권력자의 주문이 여성 억압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먼저 여성을 억압하고, 다음 소위 여성적이라고 규정된 것들을 억압한다. - 244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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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9.11.12 - no.027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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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꼭지들이 많지만,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리뷰를 기대하고 샀는데, 아주 살짝 걸쳤다고 할만한 정도여서 그점은 좀 실망스럽다.

- 기만의 역설 ; 나는 이것을 자아 되먹임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의 특징은 되먹임이 반복될수록 자아가 비대하게 커진다는 것이다. 현상의 주체는 자기혐오에 빠지고 객체인 주변 사람들은 그의 비대한 자아에 정나미가 떨어지거나 운이 좋으면 거부감이 섞인 매혹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결국 주체는 자기혐오의 끝에서 나는 사실 병든 인간이야!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 따위를 외치고, 대다수는 안물안궁이지만 운이 좋으면 지인 몇몇이 안쓰럽게 그에게 측은지심을 품을지도 모르고 더 운이 좋으면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을지도 모르는 그런 현상. - 20, 정지돈

-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 등 다채로운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고려하지 않은 융과 프로이트 시대의 감수성으로 보면, 아니마는 주로 남성에게 부족하고 아니무스는 대체로 여성에게 부족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에게도 아니마가 부족할 수 있고, 남성들에게도 아니무스가 부족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느끼고 있다. - 163,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 안의 결핍과 화해하는 개성화의 길, 정여울

- 아니무스와 아니마 자체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다. 아니무스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생의 돌파력이며, 성공적인 리더십을 가능케하는 핵심적 에너지다. 아니마가 넘치는 사람들은 치유와 배려의 에너지로 타인의 삶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까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164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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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ㅣ 문학동네 시인선 126
정채원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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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매혹적인 저주, 회화적 잔상이 남는다.


<사해, 사해>
사막엔 모래만 있는 게 아니다
삭망을 아는 달도 있다

너와 나 사이
타는 모래만 채워져 있는 게 아니다
영하의 밤도 있다

달려오던 전갈은 모래 속으로
재빨리 기호를 숨기고

너도 무엇이 두려운 거니?
무엇을 기다리는 거니?고도가 되어
사해야 할 그 무엇이 있어
사함 받아야 할 그 무엇이 있어

핑크색 뿔방울뱀 사이드와인더는
고리처럼 구부린 전신을 모래 위로 내던지며 간다
재빨리 먹잇감에 독니를 꽂는 냉혈은
달빛을 흡혈하는 야행성이다

사막에 던진 신의 물음표
우리는 사해로 전진한다

살아 움직이는 끔찍한 부호를
달빛 모래 바다에 던진 까닭을 묻고 싶다

- 불운의 성분과 용량에 대한 지식이
통증과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길을 훤히 알면서도
피하지 못한 웅덩이가 있다
밤비는 오래지 않아 그치겠지만 - 제8병동, 옥화 중

- 암중에서도 죽어라
당신만을 모색하였다 - 도굴꾼들 중

- 처음엔 불로
나중엔 얼음으로
망할지라도
늘 일정한 거리
일정한 온도로 얼어붙은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것
한동안 잡고 놓지 못하던 손,
손등만 남았다 - 너와 나의 체온 조절법 중

- 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어지며 비밀은 폭로된다 -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중


2019.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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