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
정세랑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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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언.

예상보다도 훨씬 더 글쓰기 독려의 글이다.
망설이고 있다면, 한 글자를 써 내려가기 어렵다면 그러지 말아요 라는 친절한 권유.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보다는 이런 류의 일을 더 하고 있는 시기인가 싶다.
작가도 외부 활동 같은 것이 더 필요한 시기가 있을 수 있으니까.

말했듯 꽤 강연류의 산문이라 후루룩 (조금 설렁설렁) 읽었다.

- 존재하는 책들이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초대해 오기를 바랍니다. - 들어가는 말

-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인데, 글쓰기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도 한다. 불안과 우울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읽었다. 돌이켜보니 나도 정신 건강에 상당한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글을 쓰기 전보다 밝아졌다는 평을 자주 듣고는 한다. - 31

- 책에서 책으로 점프하다가 며칠이 사라져 버렸다? 시간 낭비를 한 것이 아니다. 당신 안에 다른 사람에게 없는 정보의 사슬이 생겼을 테다. 딴 생각으로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한심한 게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흥미를 끄는 분야가 계속 나타난다? 산만하다는 비난을 튕겨내야 한다. 머릿속 기동력이 좋은 것이다. - 36

- 때때로 장르문학이나 대중문학을 대놓고 멸시하는, 여성서사나 소수자서사에 덮어놓고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마주쳐야 했는데 지나고 보니 무언가를 덩어리로 뭉쳐 사고하는 사람에게 굳이 모멸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구나 싶다. 성긴 평에서 드러나는 것은 저쪽의 바닥이며, 다행히 정교한 쪽이 비교할 수 없이 다수다. - 70

- 읽고 쓰는 사람들 사이는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한 번 만난 적 없이도 매일 만나는 이들보다 가깝다. 온기도 떨림도 전해지는 그 가까움 속에서, 독자라는 상대를 궁금해하며 쓴다. - 150

- 쓰는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주섬주섬'인 듯하다. 기대만큼 멋들어진 모습은 아니겠으나 헤매고 주워 모으며 우리 발걸음이 그리는 점선이 종종 겹치면 좋겠다. 서로의 채집통을 들여다보고 환히 놀랄 수 있도록. - 202

2026. jul.

#당신의독자가될게요 #정세랑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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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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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다. 재미 보단 의미를 읽으면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묵직하니 조금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또 그러나 공감, 공유할 수 있는 주제들로만 모여있어 후루룩 읽게 된다.

- 어려서부터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솔직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내 존재가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돌아보니 그 소망은 정확하게 내 결여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결여한 부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관념을 습관적으로 입에 올리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그게 용기인 줄도 모른다.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생이니 삶이니 같은 말에 관심이 없다. 내가 용기나 자유 같은 가치에 끌렸던 건 내가 비겁하고 부자유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16

- 나를 추동하고 나아가게 하는 내 안의 이야기,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방식, 쓰지 않으면 어째서인지 약해지고 마는 나의 존재.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백지 앞에 서게 한다. - 49

- 나는 아픔만큼 개인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픔은 개개인의 가장 깊은 욕망보다도 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어떤 말이나 표정 때문에 누군가는 삶을 저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처럼. - 54

-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았지만 그뿐이었다. 이번 일을 지나면서야 나는 삶이 그저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나에게는 바로 지금, 현재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로, 미래에 대한 기대나 불안으로 나는 나의 현재를 무가치하게 대했다. 내 진짜 삶은 언젠가 도래할 것이며,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건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이라고 나를 속이고 길들였다. 하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재뿐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지레 겁먹으면서 현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내 진짜 삶은 언젠가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불완전해 보이는 여기에 있다. - 96

-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야기 속에 담아 말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의 경험을 듣는 것. 그런 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경멸하고 조롱하는 정서가 어느 때보다도 만연한 요즘인 것 같다. 프리모 레비는 어떤 사회라도 대화를 포기하고 파시즘으로 흐를 때 언제든 수용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우리가 겪어온 시간에 대해서 말하고 들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과거를 바로 세울 때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비관주의로 기우는 것을 경계하면서. - 225

- 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사회의 인간성에 대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애도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자 동시에 인간의 권리이기도 하다. - 237

2026. jun.

#백지앞에서 #최은영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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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지음 / 스위밍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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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세상.
2 강의 국가가 무너지고 총기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

첩보물스러운데 반이 넘어가도록 무엇을 원하는 이야긴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여자'와 같이 읽고 있었어서 전시상황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말 없는 결말이랄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예감이 드는 결말.

디스토피아 소재의 이야기는 늘 막막함으로 끝맺지만 계속 읽는 이유는
그럼에도 나아가야, 해나가야 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늘 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 서울을 떠나는 순간 벌집이 될지도 모른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가 차량을 탈취당하고 무릎이 꿇린 채 뒤통수에 총알이 박힐지도 모르고 도로에 설치된 지뢰나 크레모아에 의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 볼일이 급해 국도에 차를 세우고 벌판으로 달려가다 저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아픈지도 모르고 슬픈지도 모르고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은 남들은 알지만 자신은 모른다는 거다. 그것도 영원히. - 18

- 안드레아는 짐에게 무하마드의 삶을 글로 써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짐은 좋다고 했지만 쓰지 않았다. 무하마드의 삶에 이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의 삶은 그가 좋아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학문에 대한 열의, 민족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사랑, 미래에 대한 확신, 과거에 대한 그리움. 짐은 어느 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 27

- 총은 감정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발사되었다. 사람이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총이 사람을 쏘는 거야. - 36

- 재앙은 지진이나 홍수처럼 갑자기 도래하는 게 아니오. 무하마드가 말했다. 우리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오. - 91

- 보리는 성격이 그렇다는 말로 둘러대곤 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에요. 하지만 보리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걸 포기한 지 오래다.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면 그냥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다 망해버렸으면. 다 죽어버렸으면. - 100

- 그녀도 바람이 필요했다. 바람은 먼지와 죽음을 실어 날랐고 그 안에는 소량의 활력과 생명도 있었다. 바람이 맨살에 닿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살아 있다는 자각이 함께 찾아왔다. 그건 이상한 청량감이었다. - 111

-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슬픔이 찾아왔다. 그는 터무니없이 무책임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 우리는 생각한다. - 118

- 내가 제일 보고 싶은 건 그림자야. 길고 선명한 그림자. 그런데 마음이라니. 그런 게 왜 있는 거지? - 138

- 우리는 백미러를 통해 현재를 본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뒷걸음질한다. - 154

- 다른 사람이 뭐가 중요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사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작가의 말 중


2026. may.

#작은겁쟁이겁쟁이새로운파티 #정지돈
#스위밍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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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9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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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작가들은 읽기 전 부터 핀트 나간 윤리관, 성인지 감수성 등의 지점에서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감정적 불쾌함과 불편함이 있기 마련이지만 
피천득이라는 사람은 참 서정적이고 잔잔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싶은 산문들이다.
그 서정과 애정이 구닥다리이긴 하지만.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친일로 변절한 춘원 이광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글이 포함되어 있는데 흥미로웠다.

민음북샵에서 구입해서 편집자 레터가 있었는데 이런 레터 참 좋다.
롯데월드에 있는 피천득 문학관에 전시된 소박한 작가의 책장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나.
몇 권 되지 않는 책들과 볼품없는 책장에 대한 묘사는 직접 본 것은 아니라도 그 분위기가 느껴졌다. 

- 처음 제가 생각했던 제목은 '편지'였어요.
편지란, 그리고 편지를 둘러싼 감성이란,
피천득의 문학 그 자체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 저에게 피천득 문학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제 상각은 '편지'.
누군가에게 당장 편지하고 싶어지는 두근거림,
그 연약하고 적극적인 박동이야말로 편지의,
그리고 피천득 글의 실체가 아닐까요. - 한국문학팀 박혜진 편집자 레터 중

-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 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 들을 '산호와 진주'라고 부르련다. - 서문 중, 13

-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깃빛이거나 진줏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 17

-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물론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는 아니 팔 것이다. 그러나 용돈과 얼마의 책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마음의 자유를 잃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 86

- 큰일을 하는 분은 대범하다는 말은 둔한 머리의 소유자가 뱃심으로 해 나간다는 말이다. 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를 가져야 한다. - 145

-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 190

-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하게 하여 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 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 227

-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인생이 유한하여 이런 말을 하게 된다. - 266

- 빈한이 아니라 한빈 속에서 봄을 기다립니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던 피천득 선생의 파릇한 문장을 가슴에 안고 또 한 번의 봄을 기다립니다. - 작품 해설 중

2026. may.

#악수도없이헤어졌다 #피천득 #민음세계문학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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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
강보원 지음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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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즐겁게 읽었다.
김화진 작가의 책 추천을 어느 유투브영상에선가 보고 사보았다.

문학과 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주절거림이랄까.

아마도 정지돈 금정연 같은 만연체로 자기혐오의 유머를 근간으로 삼는 그런 장르의 글쓰기.

짐작보다 더 궁시렁체여서 재미있었다.

혐오가 넘쳐서 연민이 되는 산문.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낸다. 대개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이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생각이다. 아니면 나와 전혀 관련 없는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생각들이거나. 아무튼 내가 생각한 것들을 글로 잘 쓰지 않으려는 이유들 중 하나는 그것들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는 그것들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 15

-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뭐랄까,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이유와 비슷하다. 물론 직장은 자기만의 방이 아니다. 내 말은 문학이나 여타의 공부와 좀 관련되지 않은 삶의 영역을 갖고 싶다는 뜻이다. 가급적 출판사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주면 가겠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래도 좀 부품 같은 게 되고 싶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 - 18

- 요즘에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 중이다. 좋은 태도를 갖고 싶다. 좋은 태도가 뭔가를 해결해 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태도를 내가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범박하게 말하면 혼자서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 외부의 이런저런 사정들과 나 자신의 이러저러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획득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잘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생각한다. 잘 살기. 잘 살아야 하고, 잘 살고 싶다. - 21

- 인생이란 게 도대체 가능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할 때가 있다. 인생을 살려면 인생과 보폭을 맞춰서 착착 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일들이 너무 빠르게 나를 지나쳐 간다. 지나쳐 가서 그냥 깔끔하게 헤어지면 차라리 좋겠는데 앞에서 목줄을 당기고 나를 질질 끌고 가는 것 같다. 해야 할 건 너무 많고, 하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너무 많다. 그것들은 결국 돌아오는데 그럴 때가 되면 숨이 턱턱 막힌다. 내가 할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했겠지. 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안 한 건데 왜 끝끝내 하라고 나한테 이러는 것인지? 억울하지만 그런 억울함은 어떻게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해야 한다. 하고 나면 좀 낫긴 하다. 다른 하지 않은 일이 만기가 차서 내 목덜미를 움켜쥐기 전까지는. 천천히. 좀 천천히 살게 해 주면 안 될까? - 28

- 자유라는 건 확실히 없을 땐 불행하지만, 그것이 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는 종종 끔찍한 것일 때가 많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작품이나 주장은 내게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느껴졌다. - 50

-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작은 공터에 풀을 심는 일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을 다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돌려놓는 일처럼, 어쩌면...... 어차피 달리 할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을 써 보자.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 70

-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성격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약간 콩나물 자라듯이...... 눈 돌리고 다시 보면 더 나빠져 있다. 이 기세라면 조만간 아무도 만나지 못할 정도가 될 것 같다. 내 성격...... 내 성격 어떻게 하나. - 72

- 나는 현재가 싫고 미래는 더더욱 싫다. 가장 싫은 것은 지금 도래-한-비-미래로서의 현재다. - 99

- 대개 나는 끔찍하거나 끔찍하게 멍청한 생각들만을 하고 그래서 내 생각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려고 이 글을 쓴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내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고 이것을 쓴 것이다. 이 연재를 유심히 읽은 사람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남의 일기를 유심히 읽을 리는 없으므로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어떻게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가능하다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각이란 것은 내가 겪는 온갖 종류의 괴로움 중 압도적으로 대부분의 원인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 117

- 침묵은 금이지만, 사람이 또 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일관성을 추구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 124

-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을 모르고 뭐 낭만적이고 그런 사람이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극도로 실용주의적인 사람들만이 예술을 한다. - 158

2026. jul.

#지나가기혹은영원히남아있기 #강보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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