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선택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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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7분서 시리즈. (에반 헌터라고 검색되는것은 이명 중 하나인가?)

인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놓치지 않으려는 형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희곡 대본의 지문같은 묘사로 서술하는데 범죄소설에 이보다 좋은 선택이 있을까.
현실적인 경찰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수사이고, 과함이 없다는 점도 좋다.
배경인 아이솔라시티는 상당히 멀쩡한 동네지만 경찰이 눈코뜰새없이 살인 강도가 빈번한 그야말로 범죄물을 위해 구성된 범죄의 온상인 도시라서 시민들의 안전을 절로 기원하게 된다는 점도 재밌다.

이번 편에서는 애니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내용이다. 애니는 한 가지로 설명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당연한 이야기고, 그런 애니를 추적해가며 형사들이 던지는 질문은 존재론적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으로 정의되는 사람인지.

또 하나 애정하는 시리즈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 보다도 앞서는 시대의 경찰물인 것도 매력적이다.
87분서는 필히 전권 번역 기원한다.

- 인간에게는 존엄성이 내재돼 있다고 카렐라는 믿었다. 인간은 경박하게 웃고, 술에 취하고, 트림을 하고, 싸움박질을 하고, 욕을 하지만 적어도 똑바로 서 있는 동물이다. - 8

- 듣고, 관찰하고, 기억하고, 심사숙고하라. 그런 다음 필요한 행동에 착수하는 것이다. - 30

- 매번 실리는 이 짜증스러운 ‘저자의 말‘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부패하고 열의 없으며 탐욕스러운 내 담당 편집자들이 <마약 밀매인>에서 내가 스티브 카렐라를 죽이는 걸 허락하지도 않은 데다 <사기꾼>에서는 그를 생존하게 하는 것으로 모자라 ˝스타˝로 만들고 그의 아내 역시 ˝스타˝로 만들라고 종용한 사실을 알 것이다. - 260 저자의 말 중.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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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ㅣ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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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을 읽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읽다보니 금새 기억이 복구되었다. 구조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리라.
우주의 폭력과 전쟁도 결국은 부동산의 문제라는 점과 신체 안에 영혼?을 갈아넣기 전의 신체의 권리 같은 것들도 정말 이제부턴 슬슬 생각해야할 문제라는 점, 휴머노이드에게 감정이란 얼마나 인간같을 수 있을지, 새로운 존재들을 대하는 인류의 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정도를 생각하게 한다.
메리 셸리가 호명되어 나오는게 너무 당연한 사체의 활용은 고전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지점이겠다.

재러드 디랙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샤를 부탱이라는 존재에서 파생된 휴머노이드.
존재와 인륜, 양심 등의 본질적인 것들이 계속 떠오르는 대화들이 이어진다.
전작의 존 페리가 젊은 몸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재러드 디랙은 존재하던 이의 의식을 이식받았다는 점이 다른데, 이 차이가 꽤 큰 철학적 논쟁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존재의 철학이면 이것도 기계철학이라고 해야할까.
재러드 디랙은 명백하게 소수자성을 대변하지만, 약자라고는 할 수 없는 유용한 능력을 가진자이고, 그를 대하는 기존의 인류의 편견은 여전히 인류라는 점이 자꾸 그런 지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같다.

진짜 재밌게 읽었고, 곧 후속작도 읽어야지.:)

- 우리는 다른 인간보다 강하고, 빠르고, 똑똑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태어난 것도 우리가 달라서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다른 점은, 모든 인간 중에 우리만이 목적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간단하다. 이 우주에서 인류를 존속시키는 것. - 117

- 뭘 알게 되던 한 가지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결국 넌 재러드 디랙이야. 다른 누구도 아니야. 어떻게 만들어졌든 왜 태어났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건 변치 않아. 나도 가끔은 네가 재러드 디랙이라는 걸 깜박했고, 그 점은 미안하다. 하지만 넌 그걸 잊지 말았으면 해. - 249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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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교육 ㅣ 민음의 시 260
송승언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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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법을 이용하는 비디오 아트 같다.(실은 그제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무척 시각적인 감각들.

- 더는 어느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시력을 잃은 것이구나, 말...... 잃어버린 나의 말은 눈이 너무커서 그 눈으로 모든 풍경을 담아낼 수 있었고, 그래서 세계는 일렁이다가 그렁그렁하다가 떨어져 마침내 깨부숴지다가 다시 평평한 막의 형태로 펼쳐지며 온전히 잃어버린 말의 눈이 되었고 말, 도대체 울지도 않는 말...... 내 이마를 뚫고 자라나는 나선을 따라 확장되고 있을 풍경 없음. - 일각수 중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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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비, 뱀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2
박연준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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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무엇으로? ‘하는 수 없이‘, 시인으로. 내가 ‘하는 수 없이‘라고 쓴 이유는, 시인으로 사는 일이 뭐 대단히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91

- 그들이 보고 싶다. 책이라곤 한 권도 안 읽는 애들이라 아무도 이 글을 볼 순 없겠지만. 그들은 내가 시인이 되었다 하면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왜 그런 게 됐어? 물을 것이다. - 100

- 15년 전, 고시원에서 두 달간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들었다. 그 때 우는 게 뭔지 알았다. 운다는 건 달린다는 거구나. 없는 말을 타고, 흐느끼며 달리는 거구나. 영혼이 갈라지는 것을 느끼며 신나게 달리는 일이구나. 음악은 시보다 강렬하다. 그건 뒤바뀔 수 없는 선율이며 선고이기 때문이다. 시가 사형선고라면 음악은 사형집행이다. 바꿀 수 없다. - 101

- 한밤중에 듣는 음악은 ‘불안‘을 싣고 달리는 트럭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치일 수 있다. - 102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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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없는 세대 ㅣ 문지 스펙트럼
볼프강 보르헤르트 지음, 김주연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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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야에, 전쟁 한 가운데.. 그 혼돈의 시대가 풍기는 불운과 자포자기의 냄새.
희망을 버릴 수도 낙관을 기대할 수도 없는 세대의 체념.

어쩌면 이 책은 <이별없는 세대>를 읽기 위해 읽어낸 책인지도 모르겠다. 공허한 선언이고, 희망이 있지만, 그 희망은 목적으로서의 희망이기만 한 것 같기도 한데, 전쟁세대에게 느껴지는 그럼 열패감은 현재의 세대들도 충분히(어쩌면 더) 느껴질 동질감아닐까 한다.

차마 길게 남기기 어려운 기억들이라 짧게 끊어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갖고, 신을 비난하고 신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자아의 상념들.


- 가고 있다. 그러나 열차는 항상 너를 역 위에 뱉어내고, 이별과 출발은 피할 길이 없다. (...) 너는 인간이다. 너의 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도 없이 긴 목 위 어디엔가 붙어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 33

- 고통으로 가득 찬 밤에는, 우리의 술에 젖은 탁자와 꽃이 피어나는 잠자리와 고성방가로 넘쳐 울리는 거리에는, 전율과 공포와 절망과 벗어날 길 없는 막다른 골목이 있어. 그러나 우리는 웃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아가고 있어.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 61

- 우리는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에게 깊이는 끝모를 나락이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젊음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도 없고 제약도 없고 보호막도 없다. 그런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으로 어린 시절 울타리에서 내쫓긴 세대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모진 바람이 몰아칠 때 우리의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신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이 없는 세대다. 우리는 만남도 없고 과거도 없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착의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벽에, 새로운 삶에 다다르는 도착의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사랑에, 새로운 웃음에, 새로운 신에게 다다르는 도착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별없는 세대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도착이 우리의 것임을 알고 있다. - 95

- 하지만 그건 명령이었어. 한 사내가 속삭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한 짓이야. 다른 사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었어. 한 사내가 자조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따금 재미있기도 했지. 다른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속삭이듯 말하던 사내가 소리 질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가끔 재미있었지. 다른 사내가 속삭였다. 정말이야, 정말로 재미있었어.
사내들은 몇 시간 동안 캄캄한 밤속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신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신은 변명거리일 뿐이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내가 말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첫번째 사내가 물었다.
그게 신 자신이 하는 유일한 변명이지. 두번째 사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존재해. 첫번째 사내가 속삭였다.
그래. 우리는 존재하지. 다른 사내가 속삭였다.
아주 많은 머리를 박살내라고 명령을 받은 두 사내가 잠들지 못하고 캄캄한 밤 속에 앉아 있었다. 머리들이 나지막한 천둥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한 사내가 말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거야.
그래, 그냥 이렇게 사는거야. 다른 사내가 말했다. - 130

2019.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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