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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짐승아시아하기 ㅣ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한마디로 ˝통렬하다˝
-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끝끝내 여자라는 것.
- 나와 그 장소 사이의 어떤 지점에 차이 없이 분별없이 뒤섞여 있는 나의 ‘여자짐승아시아‘라는 비가시적인, 그러나 일의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막의 모래처럼 일어서고, 무너지는 ‘몸의 세계‘가 있었다. - 13
- 나는 날마다 다른 정체성의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텍스트 속에서 오늘은 소녀였으나 내일은 할머니로, 다시 할머니소녀로 태어나고 싶다. 오늘은 연어였으나 내일은 사냥하는 곰으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색으로, 무늬로, 이미지로, 어떤 작은 기미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 여기 있는 여자가 아니라 여기, 저기 있는 여자, 나 때문에 여기가 여기없는 저기가 되는 여자가 되고 싶다. - 16
- 나는 내 열병을 문병가기로 한다. 땡볕에 구린내 지린내 칠갑한 낙타를 보러가기로 한다. 날마다 잠자고 일어나 문밖을 나설 때마다 내 이생의 시간을 짊어지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한 마리를 떠올렸다. 어찌나 많이 떠올렸던지 이제 내 낙타는 늙고 나도 늙었다. 날마다 무거워지는 내 전 생애의 시간을 짊어지고 사막을 홀로 걸어가느라 이제 고통과 짐에 절어버린 내 낙타. 나는 아무래도 낙타를 보고 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164
- <소녀의 붉은 뺨>
비가 오면 층층이 3천 개의 거울이 넘쳤다.
벼가 익는 거울.
쌀이 쏟아지는 거울.
그 거울 꼭대기에 집 한 채 섬처럼 떠 있었다.
그 집에서 도시 총각에 홀린 손녀가 병이 났다.
할머니는 계란 두 개를 상에 올려놓고 염불을 외웠다.
아픈 손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너는 물고기가 아니란다.
너는 아빠 엄마의 딸이란다.
소녀가 3천개의 거울 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보내줘요, 날 좋아줘요.
거울님, 거울님, 날 놓아줘요.
밑에서 쳐다보면 소녀가 하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자라 드디어 시집가는 날.
할머니는 누구에게 시집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머리에 옷을 덮은 그녀가 울었다. 소리높여 울었다.
끌려가는 짐승처럼.
소녀는 남편의 남동생들과 다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 다음 날 남편은 돈 벌러 도시로 떠나고,
그녀는 겨울 지나 남편의 둘째 동생과 또다시 결혼해야 한단다.
어두운 방에서, 남편 형제들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받으며
그녀가 그보다 더 번들거리는 버터차를 만들고 있었다.
- 독재정권 아래서 살아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퇴폐, 슬픔, 분노, 타락을 어떤 예술 작품 형태로도 표출하지 말라는 권력자의 주문이 여성 억압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먼저 여성을 억압하고, 다음 소위 여성적이라고 규정된 것들을 억압한다. - 244
2019. 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