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벨기에의 어느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맥주를 마셨다. 도수가 좀 된 것이었는지 기분좋은 뜨끈함이 온 몸에 훅 퍼졌다. 사실 수도원에서 만들었는지 어쨌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도 기분은 그랬다.
왠지 편의시설이 보통 이하일 것만 같은 유럽의 어느 오래되고 낡은 수도원에서 만들어졌을 듯한 알콜이 내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그 기분에 취해서, 다시 읽는 황정은의 소설들이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는 기분.

이런 저런 문예지에 단편으로 따로 따로 실려 있는 글을 띠엄띠엄 읽은 것이 이 소설집의 처음이다. 묶여져 나왔다기에 다시 한번 좀 성글게 읽었다. 그리고 세번째(아마도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읽었다.

소설가는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나라면 아무래도 그럴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그 허투루 쓰지 않은 문장은 조곤조곤 조용한데, 어째서 나를 이렇게 후벼파는가.
심상하게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그녀는 별다른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비정하고 차가운 거리로 내몰아 쓰러뜨린다.

아무도 아닌 이의 수치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무해하다 스스로 믿는 존재.
그럼에도 우리는 발을 담그지 아니하고, 한마디 보태지 아니하고, 한 발짝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지 않음으로써 그 모든 수치를 외면해 왔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생각만 했지 그 다음은 모르겠다. 오늘 생각을 했으니 내일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희망일 것이라고 애써 위안한다.

단편들 곳곳에 퍼져있는 우울이 어쩔수 없는 감성을 자극한다. 여기서 그려지는 우울은 존재론적 우울이다. 존재하기 위해 감수해야하는, 외면해야 하는 감정들이 우울에 가 닿는 것일 뿐이다. 우울하기 위해 우울하지 않고, 그저 잘 살아보려다 보니 우울해지는 것. 아.... 우울해진다.

‘상행‘에서 오제와 그의 어머니, 나는 고추밭을 털러? 간다. 딱히 고추가 궁해서도 몰려 다니는 것이 꽤나 즐거워서도 아닌. 그저 툭 던진 제안에 툭하고 답했을 따름이다. 고추를 털러간 시골도 사연있는 사람들이 산다. 친지의 자손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사업자금으로 쓰겠다고 하는 바람에 집없이 쫓겨날 위기에 몰려있는 두 늙은 여인.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집) 늦게 팔려라˝뿐이다.
사는것이 곤궁해서, 피곤해서, 목표를 상실해서 사람들은 좌절할 것 같지만, 어찌저찌 나름의 생을 살아간다.
그게 슬픈 상행이다. 그들 앞에서 ‘늦게 팔려라‘라고 객쩍은 소리 한마디 보태고 그들의 자식같은 수확물을 차바퀴가 가라앉도록 싣고 오는 상행이기 때문이다.

‘양의 미래‘ 속 사라진 진주는 나의 탓일까. 더 큰 원한의 대상을 찾지 못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다. 못견디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그저 돌아가지 않는 방법 뿐인 스산한 삶.

‘상류엔 맹금류‘ 다시 읽어도, 아니 다시 읽을 수록 입맛이 쓰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화자는. 제희 가족에게 손쓸도리 없이 퍼져있는 암세포 같은 불행의 포자들을 그날 수목원에서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느낌을 안고 그들이 가족이 되는 일은 어쩌면 자학일 수 있다. 빨리 털고 돌아서는 것이 나에겐 유일한 대책일 것이다. 사랑 하나로 불행을 이겨내는 것은 말 그대로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현실이 그렇다고 말했다.

‘명실‘ 유실되어가는 기억. 그 안에서 끝까지 붙들고 싶은 이름으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일.
글로 적어 종이 위에 오래된 만년필로 아로 새기듯 기억을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 그러나 끝끝내 완성되지 못할 글이라는 것을 그냥 알아챌 수 있다. 헛되다. 그런 헛된 노력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해본 적은 없으나.

‘누가‘ 참으로 노골적인 변명. 웃는 얼굴로 사람을 모욕하고 병신 만들려는 세상에 지쳐있는 한 사람이 내뱉는 대꾸없는, 대꾸없을 절규같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도저히 괜찮은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이 아둥바둥대는 이야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더 뼈아픈 상처가 된다. 언젠가 눈치가 너무나도 빠른 사람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같은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자신이 처한 위치가 너무도 명백하게 약자여서 타고나길 눈치가 빤한 사람일수밖에 없는 사람들. 약자들 중의 약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한다. 약자들 중의 강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한다.

‘웃는 남자‘ 작은 행복을 크게 불어서 나눠주는 사람 디디. 입닥치라고 외친 아버지. 그 외침에 입을 꾹 다물고 그냥 죽음으로 향해 간 목공소 아저씨. 누가 주이고 객인지 모두가 주인지 모두가 객인지 모르겠다.

‘복경‘ 존엄한 죽음에 대한 생각. 돈이 없으면 진통을 할 수 없다. 인간다움은 여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존나 귀할수 있는 것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이라는 결론이 쓸쓸하다.

와닿은 구절과 문단들이 차고 넘쳐서 구지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읽어보길 권할 뿐.

2017. Jan.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7-01-2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저는 헬라즈님 별 네개짜리, 다섯개짜리 포스팅 올라올 때마다 지름신이 강령해서 힘들어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좋아요~

hellas 2017-01-22 14:13   좋아요 1 | URL
별 넷 다섯 드무니까....;ㅂ; 괜찮지 않을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