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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으로 산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아프면 쉬어야 해요.
하지만 쉽지가 않네요.
불안을 딛고 인내를 배우는 태도.
드라마, 영화, 문학 다양한 서사들을 이야기하면서 삶에 녹여내는 산문이다.
일상적인 아픔을 달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도 느껴지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너무 아프다는 말로 징징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회하고,
혹은 너무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 말 한마디만 했으면 초래하지 않았을 고통을 받은 게 아닌지 후회하고...
그런 일이 이젠 삶의 디폴트가 되고 나니 작가가 말하는 통증 생활에 대해 너무나도 공감하며 읽게 된 지점이 있다.
사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개운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하고, 그 가뿐했던 감각도 기억의 저편에 있다.
일상의 사소한 동작에도 전보다 조심하게 된 이후로는 생활의 질이랄까 그런 게 현저하게 떨어진 편이다.
그러나 생사를 다투는 질환이랄 수도 없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유쾌한 경험은 아니고.....
매사에 짜증이 첨가되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려니 참 우울한 지점이다.
그런 지저분한 감정을 비슷하게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나 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니
오랜만에 단짝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 글들이 그런 부정적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다.
일상의 고통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각에 대한 글이다.
여러모로 반갑게 재밌게 읽게 된다.
더불어 산문도 좋은 작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호감도가 더더 상승했다.
안 읽은 작품이 있나? 거의 다 읽은 것 같은 데라고 하면서 한 번 더 서치해 보게 되는 독서.
- 드라마는 영화보다 분량이 길다 보니, 인물들이 훨씬 많았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드라마라는 장르가 좋았다. 시간을 훅훅 잡아먹는 이야기 속에 빠져 있다 보면 고민이나 걱정거리들이 뒤로 밀려났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결국에는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당장은 괜찮았다. 에너지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 8
- 그러니까 이런 것 같다. 질병을 은유하는 이야기는 그 비유의 껍질을 벗겨보면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 포장지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을 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기 위해. 공포의 대상을 신비화하여 더 큰 공포에 젖어 들기 위해. 그렇게 영원히 이쪽과 저쪽을 나누기 위해. - 32
- 나는 갑작스러운 종영을 견딜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야 했고, 최대한 쉬운 방법을 택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겠지.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이별하겠지. 내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그들의 삶도 계속 이어지겠지. 그 습관 때문인지,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나는 내 이야기도 그렇게 읽히기를 원하게 됐다. 끝 이후의 다른 시작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상상이 신파적이어도 좋고, 구태의연해도 좋고, 인생이 뒤바뀌는 내용이어도 좋다. 어차피 상상이니까. 그리고, 아픈 사람이 계속 아프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42
- 때때로, 문학을 이해하는 방식은 너무 개인적이다. 참 사사롭다.
그래서 소중한 걸까. - 93
- <대불호텔의 유령>을 쓸 때 책상에 붙여두었던 메모를 찾았다. '공포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되는 이유는, 인간이 결국 악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저주의 목록이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 계속 싸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게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끝없는 공포.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 - 114
- <대불호텔의 유령>을 악의로 채우지 못했다. 내가 희망을 갖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고, 낫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초능력을 되찾고 싶다. 비록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희망하고 싶다. 그래. 나는 나의 생각을 이런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사랑, 희망, 꿈.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썼다. 그런 식으로 계속 썼다. 악의가 사랑으로 뒤집히는 이야기. 내 몸을 미워하고, 절대 행복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잔뜩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희망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 행복해지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절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은 분명 의미가 있고, 나는 사랑을 깨닫고 말 것이라는 다짐의 이야기. 그래, 다 내 이야기였다. - 123
- 나쁘지 않다. 괜찮다. 이보다 나은 표현을 찾고 싶은데 참 어렵습니다. 이럴 때 보면 언어를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가 다른 이들의 작품과 해석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 133
202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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