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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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구성된 기이한 이야기들.

기담의 소재가 돼도 일말의 연민도 안 느껴지는 대상인 친일파가 소재인 이야기들이 특히 재밌다.

뒷담이 서늘하게 되고 흘려버리는 게 아니고 곱씹게 되는 이야기들.

요즘 성해나 작가를 보면 드는 생각.
어떤 작가가 마음에 들어와 좋아하게 되면
기세라는 게 독자에게도 생기는 것 같다. 

읽을수록 좋아진다.

그리고 7월에 이 책을 읽고 8월에 터진 어느 배우의 가족사 이슈에 다시 한번 이 책이 생각났다.
끝나지 않은 역사의 자국들.
제발 좀 청산할 일은 청산하고 살게 되면 좋겠으나,
그게 쉬웠다면 뭐....

-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그리고 언제까지고 내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 22,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

-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을 쓸 무렵, 우연히 '미카라데타사비'라는 일본어 속담을 접했다. 검에 밴 녹이 검을 전부 삭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풀면 자업자득일 것이다. 저지른 악행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이 말을 나는 온전히 믿지 않는다. 세상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 듯싶다.
이 소설 속 김아홍, 황보, 그리고 화자 역시 대를 이어가며 크고 작은 악행을 벌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 형벌도, 비난도, 멸시도.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
역사는 대패질하듯 말끔히 깎아내거나, 모두가 함구한다고 해서 소거되지 않는다. 죄를 덮은 자리에는 꺼슬꺼슬한 흔적이 남는 법이다. 자업자득을 온전히 믿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죄의식이나 수치라는 방식으로나마 돌아오길 바라는 바이다. - 작가 해설 중, 24

- 인간 아닌 인간.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수나 AI일 수도 있고 귀신 혹은 신일 수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작가 해설 중, 51

- 지금도 나는 조부가 그 말을 한 이유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차를 타고 적선동을 지날 때, 천막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칠 때,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암묵할 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삶은 안락할 때.
부끄럽다는 조부의 고백을 이해하려 애쓰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여전히 잘할 수 없다. -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87

- '찬란한 이면,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생의 덧없음.'
작품 해설을 되풀이해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을 사람들은 예술이라 부르고 작품이라 일컬었다.
사람들은 왜 무의미에 의미를 덕지덕지 덧붙이는 걸까. 단순한 사물에 복잡한 상징을 더하는 걸까. - 매일, 99

- 그렇게 모이면 재미있냐?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죠.
이상한 사람도 많을 거 아냐.
많죠.
근데 왜 하냐?
큐가 뜸을 들이다 묻는다.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어리둥절해진다. 소속. 내게 소속이 있던가. 한참 고민하는데 큐가 말을 잇는다.
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큐가 돌아가고 혼자 남는다. 겨우 둘이었다 홀로 된건데 사람 소리가 사라지니 헛헛해진다. - 윤회(당한) 자들, 186

- 왜 다시 넣어?
이익의 물음에 도윤이 답했다.
허기 지지 않은 것 같아서.
도윤이 사육장 속 뱀을 빤히 바라보았다.
쟤는 날 물려고도 않잖아. 뭐든 먹이로 보고 덤벼드는 놈을 고르는 게 좋아. 그래야 좀 쓸 만하지.
그럴 때 도윤은 정말 사람 같았다. 순수할 만큼 악하고, 우열에 민감하며, 약한 지점만 기막히게 포착하는 사람. - 고, 294

- 안팎의 구분 없이 빙글빙글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는 빠져나가려 해도 결국 원점으로 회귀하는 구조나 자기모순에 붙들린 인간과 닮아 있다. 형상은 다르지만, 제 꼬리를 집어삼키며 영원히 순환하는 우로보로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끊어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는 질긴 고리. 인간의 욕망, 권력 세습, 사회적 재연이 이에 해당하지 않는가.
(...)
지금은 입력을 받아 출력을 내놓는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답만 내리던 기계가 언젠가는 우리에게 되묻고, 나아가 삶의 방향까지 쥐고 흔드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욕망이 빚은 가장 큰 저주란 그런 것 아닐까. - 작가 해설, 308


2026. jul.

#인비인 #성해나 #기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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