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큐레이션 리커버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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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한 권으로 축약해 여성 서사로 만든다면 이 책이구나 싶은 이야기.

당시의 관점으로나 현재의 관점으로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될 법한, 장녀와 3녀의 행실이 혐오스럽거나 꺼려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생존을 절실하게 갈구하는 생명력의 현신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건,
그 당시의 불합리한 견고한 신분제와 남녀의 위계, 차별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와 한실댁의 서사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여성의 삶의 파노라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족의 역사를 팔자와 딸 들 탓을 하는데
이게 다 아비가 시킨 결혼 때문 아닌가 싶은 게.... 한숨 포인트랄까.

재밌고 속도감 있는 독서였다.

사실 김약국의 딸들은 이미 읽었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미처 못 읽은 책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제대로 읽게 되어 다행이다.

-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 9

- 실로 바다는 그곳 사람들의 미지의 보고이며, 흥망성쇠의 근원이기도 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타관의 영락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 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온 말일 게다. 어쨌든 다른 산골지방보다 봉건제도가 일찍 무너지고 활동의 자유, 배금사상이 보급된 것만은 사실이다. - 10

- 한실댁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기를 때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 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들 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 것이니 걱정 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러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 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 97

- 이 세상에 의심스럽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러면 저렇고, 저러면 이렇고, 그럼 진실은 없군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현실은 신보다 우리에게 가깝고 진실에 가까운 거야.
오빠야말로 공식적이군요. 말로나 생활로 표현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 186

- 외롭다는 말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냐고 되묻는 말은 상반된 대화다. 그러나 용빈은 김약국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 - 415

- 통영 항구에 장막은 천천히 내려진다.
갑판 난간에 달맞이꽃처럼 하얀 용혜의 얼굴이 있고, 물기 찬 공기 속에 용빈의 소리 없는 통곡이 있었다.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 - 481

2026. jul.

#박경리 #김약국의딸들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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