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보다 한 발짝 느리다 - 내 딸을 어른으로 떠나보내기 위한 첫 번째 여행
박윤희.박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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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오랜 시간 따로 살며 그리워하던 엄마(어머니보단 엄마라는 이름이 더 좋은)와 함께 지낸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엄마가 나서서 해 주시니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그리워하던 엄마 찌개랑 보글보글 밥을 먹고, 흰 빨래가 빳빳하게 개켜져 화장대에 놓여 있다. 그 편안함과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다시 살아난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푸근하지 못한 성품이시라서 남들이 실수하는 것을 못 참으시는 엄마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속이 시원하시다. 어찌나 깔끔하신지 집안의 강아지를 못 견디신다. 나 혼자라면 괜찮지만, 다른 식구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 엄마라니 얼마나 복합적인 이름인가 말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모녀들이 다들 서로 사랑해마지 않고 그리워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유난히 모녀 사이를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이상하게 여기곤 했다. 어떤 사람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고는 다시는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엄마와의 시간을 끔찍하게 여기기도 한다. 내 어머니는 내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고 나 역시도 내 딸을 향한 내 마음은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데 어째서 그들은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 <딸은 엄마보다 한 발짝 느리다>를 읽게 된 계기는 곧 내 품을 떠나게 될 딸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나의 바람을 그들 모녀가 먼저 실천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련의 시간에 그는 서먹한 딸아이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서먹한 딸이라니 딸도 서먹할 수 있는가? 자식은 그냥 또 다른 나의 이름이 아닌가? 자식도 크면 남이라더니 그래서인가? 낯선 감정이었지만, 한편으론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식 중 가장 큰자식인 나를 언제나 의지하시지만, 작은 일에도 서운해하신다.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좀 서먹하신 걸까? 그는 자신의 딸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에 대한 서운함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났을 수도 있고, 혹은 부모에게 실망을 준 딸이 스스로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닫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힘든 시기의 자신과 또 다르게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딸에게 어떤 생각의 시간을 갖고자 그들은 산티아고의 길 800킬로미터를 함께 순례하기로 한다. 40일 간의 시간동안 하루 20킬로미터를 걷고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최소한의 숙식을 해결하면서 그들은 여전히 다투기도 하고, 걸음의 속도가 달라 따로 걷기도 한다. 둘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는 날도 많았지만, 스스로 숙소를 알아보고 엄마를 배려하는 딸의 성장과 딸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엄마의 변화가 그들의 일기에는 고스란히 녹아있다. 긴 고통을 함께하고, 큰 성취를 함께 얻은 그들의 시간이 정말로 부럽다. 읽는 내내 나와 딸을 그들 모녀에게 투영해 보았다. 일단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40일 간 걸을 자신이 없는 엄마와 학교에서 체육 시간이면 늘 고통스러운 키다리 딸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숙소에서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 사소한 다툼, 그리고 서로를 위한 배려는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걸으리라. 거기가 비록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아니라도......그리고 다만 나의 딸과 만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와도 함께, 모녀 삼대가 걷는 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 정현은 캄캄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찾아간다.

어둠 속에서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 내 램프의 수를 늘려 아이가 가는 길에 비춰준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이게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

본문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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