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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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밀레니엄> 시리즈를 다시 읽은 후로 그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 어제부터 읽은 이 책 <비스트>는 그런 여운을 더욱 강하게 한다. 이 소설 역시 스웨덴 작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배경이 되는 도시와 거리의 이름들까지도 낯이 익어서 문득 반가운 생각마저 들었다. 스테판이니 룬드니 벤케니 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또한 그간 익숙해진 북유럽의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들도 이 소설 <비스트>를 감상하는데 더욱 많은 보탬이 되었다.

 올 여름 많이 읽게 된 스릴러 소설들에 공통점이라면 '유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어린 여자 아이의 실종, 그리고 발견되는 사체 혹은 신체의 일부, 상처를 가진 수사관이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숨겨 둔 상처와 조우하면서 고통받는 과정 등이 그 소설들의 공통점인 경우가 많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라고 할까? 연쇄 아동성폭행범인 벤트 룬드, 혹은 오랜 세월 경찰에 몸 담은 형사 에베트 그렌스, 아니면 그의 동료 스벤. 또는 딸아이 마리를 성폭행범의 손에 잃고 삶의 의미를 잃은 작가 스테판 프레드리크, 아니면 그들을 교화할 책임이 있었던 렌나트 오스카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한 소설 안의 모든 사람이 다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까?

  소설의 시작은 4년 전이다. 그 날 성폭행전과자인 벤트 룬드는 한 건물의 창고에서 나와 두 아이를 만났다. 종알종알 지저귀는 그 아이들이 벤트 룬드에게는 그저 자신을 위한 인형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죄로 벤트 룬드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 교도소의 특별감호구역 관리자는 렌나트 오스카숀이다. 렌나트는 만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아내 마리아에게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다. 날마다 그녀에게 고백하려고 다짐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더운 날 하필이면 벤트 룬드가 탈옥을 했다는 것이다. 정신병원으로 이송 중이었다. 노련한 호송관에게 일을 맡겼지만, 룬트는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할 줄 알았고, 호송관인 안데숀은 성폭행범을 끔직하게 싫어했다. 스테판 프레드리크는 어린 시절에 너무도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아이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무관심했다.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얻어맞을 때 그저 신문을 보거나 차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다. 형은 그 아버지에게서 스스로 떠나 철로에 몸을 던짐으로써 반항을 했고, 스테판은 평생 그 상처를 잊지 못했다. 그의 삶의 낙은 딸 마리였다. 이혼한 후 혼자 마리를 돌보면서 단 한 순간도 마리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 더운 날 오후,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늦잠을 잔 그는 마리를 어린이집으로 데려간다. 어린이집 앞 벤치에는 한 아빠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돌아 온 작업실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아까 어린이집 앞에서 본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연쇄 아동성폭행범이 탈옥했다는 자막과 함께...... 스테판은 미친 듯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마리는 사라졌다.

  읽는 내내 조바심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도 스테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더러운 손에 의해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딸의 모습을 어느 누가 견딜 수 있을까? 그는 범인을 찾아 나서고 드디어 또다른 범행을 시작하려던 그를 찾아 낸다. 수많은 법정 공방이 있고, 사회 전체가 들썩이지만, 스테판에겐 더 이상 의미없는 것들이다. 그저 조용히 자신을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작가들의 특별한 이력 덕에 스웨덴의 교도소 내부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전도 보고, 카드도 치고 축구 시합도 한다. 심지어 외출도한다. 이런 교정 시설에서 10년, 20년 살고 나오면 다시 죄를 짓지 않게 될까?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허무하고 화가 나는 소설의 결말만큼이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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