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발간 소식을 들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다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었다. 삶의 깊은 비밀도 알 수 있는 나이라서 그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천둥벌거숭이 같던 거친 감성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렇게 소설의 세계에 빠져든 나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소설." 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책의 날개에 있는 작가들의 나이는 점점 내 나이와 가까워졌다. 왠지 모를 초조함이 책의 날개를 펼쳐 작가의 나이를 혹은 작가의 사진으로 나이를 추측할 때마다 밀려왔다. "이 생에 나는 진정 단 한 권의 책에도 내 나이와 이름을 올릴 수 없는 것일까?" 이게 바로 그 초조함의 근원이었을까? 요즘 읽는 많은 책의 작가들에게서 나는 같은 세대로서의 공감을 읽는다. 때로는 치기어린 젊은이 정도라고만 생각했던 작가의 글을 읽고 감동을 얻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그렇다. 삶의 내밀한 비밀에 대한 사색이나 인생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은 가끔은 나이 먹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 게다가 나이 먹음이라니 이 얼마나 비객관적이고 상대적인 단어인가 말이다. 이 소설의 소식에 작가의 나이를 새삼 확인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다고 해 두고 싶다. 삶의 어두운 단면에 주로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키는 주인공 나는 자신의 집을 옮기는 이사조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 하물며 내게는 슬프지만 남에게는 스캔들인 그 사랑에야 어찌 나의 뜻을 찾을 수 있을까. 자기 아내와의 결혼기념일 여행을 꼬박꼬박 챙기는 남자 K에게서 듣는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한다. 그러나 그를 처음 만난 날 떠올린 단 하나의 문장 "좋다." 때문에 온갖 상처와 모멸감을 참으면서 그를 사랑하는 주인공은 K가 끊임없이 그녀에게 하는 말 "미안해." 때문에 그에게서 오히려 조롱을 받는 느낌을 참을 수가 없다. 돈때문에 할 수 없이 선택한 그 집에서 어느 날 오후 그녀를 만난다. 잃어버린 아이가 남긴 단 하나의 문장 "헤르, 미르 어딨어? "를 보기 위해서 '마음이 너덜거릴 때'마다 그녀의 집을 찾는다. 마음에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듣고 하늘을 본다. 봄꽃이 안쓰럽다. 마음에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기 위해서 나는 나어린 작가들의 책을 읽고 나이든 작가들의 혜안을 따르고자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