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시간들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야하지 않을까?

 오늘 쯤은 마틸드와 티보가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5월 20일, 오늘은 마틸드의 힘겨운 싸움이 결판날 것이라고 나 또한 기대했다.

 

 마틸드의 시계는 느리게 흘러간다. 남편과의 사별 후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충실한 생활을 하던 마틸드의 평온한 삶에 균열이 온 것은 아주 작은 계기였다. 처음에 마틸드는 균열의 발생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은 균열은 서서히 마틸드의 생활을 잠식했고, 결국 마틸드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회사에서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진다. 자크를 위시한 그들은 마틸드의 존재를 부정하고, 괴롭힌다. 다 큰 어른임에도, 남편의 죽음이라는 큰 경험을 했음에도 마틸드는 그 상황을 견디는데 목숨을 걸다시피한다. 엄마의 낌새를 감지한 아이들의 썰렁한 유머와 사랑의 표현이 마틸드의 끈을 지탱해준다.

 티보는 사랑을 줄 줄 모르는 릴라에게 드디어 이별을 통보한다. 벽을 보듯 무표정한 릴라의 얼굴, 티보의 괴로움에 공감할 줄 모르는 릴라에게 끝없는 상처를 받은 티보는 온몸의 힘을 끌어내어 이별을 통보하고도 하루종일 릴라를 기다린다. 릴라를 만나기 전 '강한 남자'였던 티보,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서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갈망에 들뜬 표정으로 그 순간을 버틴다.

 

 누구나의 마음에 있는 허전한 자리를 마틸드와 티보는 선명하게 드러낸다. 바쁜 일상에서는 잠시 잊고 살 수 있는 그 자리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가한 시간이 날 때 혹은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필요할 때 문득 그 자리가 느껴진다. 텅 빈 상자같은 그 곳, 문득 문을 열고 그 자리에 들어설 때 느끼는 싸늘한 공기와 허무의 냄새를 견디기 어려워 우리는 끝임없이 관계를 욕망하며 그 존재를 거부하는 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그 존재를 느끼면서도 누구나 부정하고 싶은 그 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이 소설이 그래서 더욱 슬픈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읽는 내내 다들 마틸드와 티보가 언제쯤 만날까 기대하게 한다. 오늘 5월 20일은 마틸드의 어둠에 희미한 빛이라도 새어들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인형같은 릴라에게 상처받은 티보에게 따뜻한 마틸드의 모성이 다가올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날이 오늘이기를 기대한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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