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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마주'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책을 펼치기 전에 제목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를 마주 보고 싶다는 뜻인가?!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마주를 마주 대할 수 있었다.
팬데믹 소설이라고 넓게는 말할 수 있겠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왔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를 살아낼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 친구, 이웃, 세대, 지역 간 평행선을 달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주'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마주'는 소수자의 시각, 그리고 외로움과 고통,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구나 슬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세상의 누가 나는 고통 없이 살아왔으며 온실 속 화초처럼 찬란하게 자랐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평범하지만 결국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시기나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슬픔과 고통은 안고 살아간다.
그 사실을 굳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편가르기 하고, 평범한 척 행복한 척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웃기는 소리다.
시기와 때가 다를 뿐 누구나 부모님의 사망, 배우자와의 이별은 온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재이다.
충분히 그 사람들과의 기억, 슬픔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주인공 이나리.
마주에서 그녀를 표현하는 것은 이런 식이다.
"나리 너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웃었어. 따지고 보면 웃긴 말도 아닌데 말이지." p18 나리가 따르는 동네 아주머니 만조 아줌마가 나리를 보고 한 말이다.
'여자여자'하면서도 '애기애기'하다는 건 많은 경우 프리패스처럼 통했다. 내가 강아지처럼 웃고 나면 공기의 흐름은 부드럽게 바뀌었고.. p24
강아지 카페 입간판이 쓰려져 있다. 두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 강아지 카페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입간판을 세우러 나가야만 했다. p80
"요새도 깻잎 세 묶음에 천 원이고 그래?"
"네."
"요새도 초여름 되면 요 앞 중앙공원에 마늘 트럭 오고?"
"네, 와요, 어르신."
"쪽파랑 느타리 살 땐 저 아래 성당 사거리에 있는 야채 가게가 제일 나아."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 야채가게에 가보겠다고 했다. 자신이 다시는 마늘 트럭에도 야채가게에도 장을 보러 다닐 수 없을 거라는 걸 노인은 알고 있는 듯했다.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곳을 지척에 둔 채로 이 건물에서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p289
주인공 이나리는 위와 같은 사람이다. 뭔가를 보면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고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할 수 있다의 재량이 아니라 해야만 한다의 강제성을 띠고 있는 본인도 자신의 성향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의 성격이면 본인도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을 것이다. 그 안타까움을 못 보는 것이니 얼마나 스스로 눈 감고 싶겠는가.
생김새는 여자여자, 웃으면 눈이 반달이 되고 강아지 상의 그녀, 이나리. 그러면서 오지랖까지. 이런 여인을 좋아하지 않을 사랑하지 않을 동네 어른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동년배 여인네들에게는 세상 질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나리라는 인물이 그래서 와닿는다. 나와 비슷해서. 오지랖이 넓고 깊다. 외로운 사람, 불편해하는 사람,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아픔을 잘 보는데 정작 자신의 슬픔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면 그게 공황이라는 정신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소설 '마주'를 보면 나리가 잠복결핵이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후반부에는 갑자기 나리가 호흡이 되지 않는다. 드디어 잠복결핵이 외부로 발현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아니다, 그게 아니다. 공황이 온 것이다. 병원에 갑자기 실려가, 종이봉투나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이 안에다 숨을 쉬라고 한다.
나의 20대 또한 이러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고 피검사를 한 후 나의 주치의. 그래봤자 나를 담당한 의사였을 것이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그것도 만삭. 나보다 겨우 3~4살 많아 보이는 만삭의 의사는 내게 비닐봉지를 꺼내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입에다 봉다리를 대고 숨을 쉬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기괴해 보이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20년 전의 과호흡으로 응급실을 찾은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생경했었다.
과호흡도, 공황장애도 전혀 생소한 단어였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의사도 이렇게까지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나 불편했을 것 같다.
어쨌든 '마주'의 주인공 나리는 남의 아픔을 잘 살피면서 본인의 슬픔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 같다.
생긴 것 빼고 나랑 비슷한 성격의 이나리. 그래서 20년간 수영을 했음에도 코로나를 앓은 후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대학병원에서 천식 진단을 받고, 더불어 불안장애 진단까지 받아서 약을 복용하는 중인 나.
'마주'의 나리는 잠복결핵, 그리고 공황장애로 약을 복용 중이다. 나랑 결이 비슷하다.
이나리가 신경 쓰는 친구이자 불편한 언니, 수미.
가까운 듯 먼 그녀 수미, 나리의 근처에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성격이 화끈한 편인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피곤해서, '그냥 산다' '이렇게 살다 죽겠지' '생각하면서.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나는 그런 여자들을 알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채 아이한테 이런 말을 하는 여자들. p 86
매콤한 멸치 김밥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쌀 수 있는 사람이고 중학교 때까지 학교 대표 탁구선수였던 사람이다. 나와는 아직 오타를 트지 않는 사이. 독하고 새콤한 것들, 새콤하고 차가운 것들을 좋아한다. 브랜디와 탄산수. 라임과 얼음. 그리고 겨울. p89
나리는 수미 언니는 마냥 불편하지도 마냥 편하지도 않은 관계인 것 같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사람 주위에 다들 있지 않나?
좋지만 다가가긴 꺼림직하고 멀리 있자니 궁금하고.. 어쩌면 대부분의 관계가 그러지 않을까?
수미 언니는 그녀의 딸, 서하를 학대하고 있다. 물론 수미 언니는 정작 그게 학대라고 전혀 생각조차 못 한 듯하다. 지나친 집착과 관심..
서하는 엄마를 피해 나리 아줌마를 찾거나 나리 공방을 오면 딱히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딱, 본인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서 나리는 서하가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 힘든 내색을 읽어낸다.
그리고 나리는 마음속으로 '마주'의 주제를 읊게 된다.
사람 사이의 이야기든, 코로나 시대를 말하든,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충분히 서로 부대끼고 싸워보고 그러면서 조율하는 것이고.. 그런 방식이 지금의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손절하고, 불편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더 이상은 피할 곳이 없다.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시대나 세상이 불편한 것을 피하는 게 대처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오늘은 최은미 장편소설 마주를 살펴보았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정리하고 보니 사람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아쉽다.
마주를 보면, 이 책 안에 소수자를 위한 이야기,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들의 편견과 색안경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우리도 알고 보면 각자가 모두 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
편가르기 하지 말고 다름은 인정하고 틀림으로 정의하지 말자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마주가 소수자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인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 것인지 혹은 둘 다의 위한 것인지, 주제가 더욱 명확하였다면 훨씬 와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주'가 생각을 많이 하게끔, 또한 생각이 많이 나게끔 하는 주제의 소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문체나 표현으로 확실히 최은미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