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연례행사처럼 하는 직원 독서 경진대회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작년, 뜻하지도 않게 상을 받았을 때, ‘, 그래도 내 감은 죽지 않았구나혼자 생각했었고, 그 생각은 어느 정도 사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아무렴, 대학에서 관련 전공으로 학위까지 받았는데(국어국문학 아님), 아무리 못 해도 한국인 1년 평균 독서량(7.5,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보다는 많이 읽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반성한다. 당연한 거 아니다. 심지어 나는 충분히 많이 읽지도 않았다!

    

 

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직감으로 안다. 쓰고 싶었던 글의 아이디어는 다양하지만 한 주의 일상을 보내고 노트북 앞에 다시 앉으면 그 아이디어는 날아간 지 오래다. 기화성이다. 글의 얼개를 짜고 상황에 적합한 어휘를 고르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잘 골라 놓은 것 같이 써 놓아도 나중에 다시 보면, 과거에 가장 싫어했던 유형의 글이 내 앞길을 막고 서 있다. ‘천편일률’. , 이게 지금의 너야.

 

동종/유사 업계 사람들이 외부 지면에 쓰는 글을 보며 항상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왜 글을 이 정도로밖에 못 쓸까? 이게 잘 썼다고 내놓은 건가?

 

지금은 그들(과 그들이 쓴 글)에 대해 이전처럼 시니컬할 수 없다. 이제 나도 이 사람들에 낀다. 업계에 있다는 사실로도, 글을 못 쓴다는 사실로도. 다만 나를,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하나 궁리할 따름이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상황 변수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루에 최소 8시간 이상,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내는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글을 쓰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 말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또 습관처럼 자기비하와 자기연민의 굴레에 빠진다. 스스로를 끄집어내는 일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끄집어 낼 기력조차 없는, 더군다나 있던 기력마저 빠르게 퇴장하는 일요일 저녁에는 그저 양지바른 곳에 내 마음의 음습한 구석들을 꺼내 놓고 말릴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 주어졌으면 하고 그저 생각할 따름이다.

 

회사에서의 상에 매달리는 이유도, 글도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으면서 외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투고처의 마감 일정을 헤아리는 성마름도 사실은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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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읽은 책 이야기가 없는 것은, 그간 읽은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엄정하게 쓰려고 하면 그만큼 객관적일 수 있지만, 나중에 기록을 남긴 사람에게도 딱 그만큼 인정사정없다. 몇 년 전부터 쓰고 있는 독서기록 엑셀을 보면, 10월에는 책을 거의 못 읽었다. 지난 글에 쓴 이희호 평전 이후로 사실상 없는 셈이다. 11월에는 뭐라도 읽자 싶어서 교양 역사 만화 시리즈와 에세이 두어 권을 읽었다.

    

 

 

 

 

 

 

 

 

동아시아 3국의 근대사를 나란히 이어 서술하겠다는 기획은 좋았고, 전반적으로 인터넷 밈에 의존한 서술이야 이 작가가 원래 그렇게 유명해졌으니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1권의 질 낮은 드립들에 이르러서는 시리즈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2권 머리말에 독자들의 항의로 중쇄본부터는 해당 드립들을 수정했다고 하여 계속 읽고 있다.

 

(이렇게 마음속 불편함을 적당히넘길 수 있는 것은 내가 기득권에 가까운 독자이기 때문은 아닌지?)

    

 

에세이 하나는 정말... 정말 좋았는데, 이 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다음 글에 정성껏 자리를 할애해야겠다. (‘나중에 써야지하는 사람 특: 결국엔 안 쓴다)

    

 

그리고 12월은 현재 진행 중. 9월에 빌린 책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휴관 몇 번을 겪더니 반납기한도 12월 중순 즈음으로 같이 점프했다. 석 달 전 빌린 책이 아직까지 있다는 건 못 읽은 주제에 미련만 남아 반납도 못 했다는 얘기겠지. 마감 일정이 있는 글들 쓰고, 틈틈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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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12-06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한 줄을 읽었는데 열 줄치를 알아버린 느낌입니다!!

인간의과도기 2020-12-06 22:4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역시 하나를 가지고 열을 꿰뚫어보시는 syo님!
회사 이야기는 쓰게 되는 순간 너무나도 할말하않 상태가 되어버리니 다음부터는 주제를 바꿔야겠습니다 ㅎㅎㅎ

2020-12-07 0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