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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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들어보는 이름은 아니다.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그 이름을 언급했기에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잠깐 관심을 두었을 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공무원 시험 한국사 과목에 각각 한두 번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험에서 여러 번이 아닌, 한두 번 언급되는 인물이나 사건이라는 것은 곧 수험생들에게 생소한, 잘 모르는, 그래서 앞으로는 굳이 알 필요 없는, 딱 그 정도의 의미로만 기억된다. 시험과목으로서의 역사는 그러한 면에서 보면 편리한 측면도 있다. 사가들이 ‘객관적’으로 정리한 ‘팩트’만 외우면 되니까. 내 삶을 굳이 당대에 추구했던 가치에 이입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성인권에 하등 관심이 없어도 ‘식민지 조선 최대의 여성운동단체는 근우회’라는 것을 알 수는 있다.

  앎과 삶의 간극은 일부 수험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님이 언급하셨으니까, 이전에 알려져 있지 않던 여성독립운동가에게 손수 축사로써 조명해 주신(심지어 그는 축사가 있기 십 년 전에 훈장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이 ‘역시 대통령 은덕亦君恩’이샸다, 하고 편히 주워섬길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 달을 가리키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열심히 보는 사람들에게도 역사는 현재와 만날 일이 없는 과거의 장식품일 뿐이다.

 

 

  을밀대상의 체공녀, 여류 투사 강주룡 회견기? 제목 한번 걸작이다. (239)

 

 

  나라고 해서 그들, 그러니까 아는 것 따로, 사는 것 따로 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소설 제목을 처음 접하고 한 번, 그리고 줄거리를 접하고 또 한 번, 나는 어느새 반듯한 차림의 평가자가 되어 소설의 책을 잡았다. 읽지도 않은 소설을.

  지금이 어느 때인데 ‘○○녀’ 같은 비하적 호칭을 제목에 버젓이 붙이는가. 그런데 줄거리는 여성 독립 운동가이자 노동 운동가의 삶을 전기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라니, 이건 또 시류에 적당히 편승하고자 하는 ‘속 보이는’ 내러티브 아닌가.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시작한 독서는 이내 패배의 독서로 결론지어졌다. 나의 전근대적 무의식이 패배한 독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고공 농성자니까, 나와 같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매양 달고 살지는 않겠지, 두려움이 잠시 스쳤더라도 초인과 같이 이겨냈겠지, 하고 쉽게 상정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 속의 강주룡은 충분히 사랑했다. 그의 남편을, 남편의 일을, 평원고무공장의 동료들을, 정나기, 혹은 정달헌을. 사랑이 있었기에 연대할 수 있었고, 그보다 앞서 그 주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두려워하고 망설였으며 불안해했다.

  소설을 읽으며 그의 삶에 전적으로 공명하기 위해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내가 지닌 삶의 흔적 몇 조각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의 모습으로 고요히 앉아 있다.

  강주룡은 ‘체공녀’이기도 하지만, ‘체공녀’만은 아니다. (힌트: ‘체공녀 강주룡’의 ‘체공녀’는 ‘미스 함무라비’의 ‘미스’와 작품 속 맥락이 비슷하다.) 강주룡은 조선 최초의 고공농성자, 여성 노동운동가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이지만, 역시 그뿐만은 아니다. 강주룡은 강주룡일 따름이다. 이 소설이 그것을 내게 알게 해 주었다.

 

 


*〈체공녀 강주룡〉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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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동 거신다 아싸 과도기님 시동 거신다 ㅎㅎㅎ^-^

인간의과도기 2018-08-31 06:27   좋아요 0 | URL
ㅎㅎ 간만에 쓴 글이라 그런지 품이 좀 떨어져 보여 면구합니다. 간간이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