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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808/pimg_7740191701976827.jpg)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내가 철학을 하는 방식이었지.
사람들은, 특히 나는, 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이 질문을 이해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거든. 이때는 이미 하느님의 존재 여부도
내 관심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꽤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는지는 내게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어.
나는 옳고 그름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분노에는 관심이 아주 많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심리학자가 아니고 뭐겠어!" (68p)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서,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데 심지어 실수임을 인지하면서도 끝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대니얼 카너먼은 잘 알려진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로 '실수인 걸 알면서 저지르는 실수'의 체계를 설명했다. 이 책은 대니얼 마너먼과 아모스 토버스키가 실시한 연구를 쉽게 설명함과 동시에 그들 관계의 역사와 학자로서, 사람으로서 이들이 했던 경험과 고민을 꼼꼼하게 담아낸 책이다.
성격부터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도 (큰 틀은 비슷했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5장에서야 처음 만난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기도 한 두 사람은 우리로서는 조금 상상하기 힘든데, 실제로 교수직에 있으면서도 몇 번의 전쟁에 소집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나치의 영향력이 짙은 어린시절을 지났고, 이스라엘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최악을 믿고 최고임을 믿었다 뿐이지 학문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심리와 통계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비행을 유난히 잘해서 칭찬을 받은 조종사나, 비행을 유난히 못해서 질책을 받은 조종사나 모두 평균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교관이 질책이나 칭찬을 하지 않았어도 조종사들은 비행을 더 잘했거나 못했기 쉽다.
교관들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도, 말로 고통을 줄 때보다 말로 기쁨을 줄 때 효과가 적다는 착각에 빠진다.
지루한 숫자가 통계의 전부가 아니다. 통계로 인간 삶의 진실한 내면을 엿볼 수도 있다.
대니는 훗날 이렇게 썼다.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는 원래 타인을 보상하면 통계적으로 벌을 받고,
타인을 벌하면 통계적으로 보상을 받게 마련이다." (139p)
심리학이 부흥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은 모두 미묘하게 다르고 또 그러면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연구하기 가장 어렵고 재밌는 동물이라서가 아닐까. 모두가 군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서도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놀랄만큼 일관적으로 예상을 벗어나거나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결과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직관을 과신하며, 눈으로 본 이미지를 강하게 확신하는 '확증편향', 자신이 이미 가진 물건을 더 높게 평가하는 '소유효과', 방향성과 비대칭성을 고려하지 않는 '유사성 판단'까지 우리는 때로 예리하지만 믿을 수 없게 멍청하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이론은 바로 표본집단의 오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확률 문제에서 표본이 무한히 커질 수록 비슷비슷한, 또는 정해진 확률이 나오는 것이 원래의 논리다. 하지만 표본이 충분히 작다면? 사람들은 소수법칙과 대수법칙을 당당하게 헷갈려한다. 두 사람은 오리건 연구소에서 전문가보다 더 정확한 '판단 알고리즘'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데, 여기서도 '무작위에 대한 오해'와 가까운 과거일수록 가능성을 더 크게 생각하는 오류를 수정하려 한다.
이후에도 '조건부' 어림짐작과 '기준점 설정과 조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피시험자들은 객관적인 정보와 눈앞에 결과가 나와있는 통계 학습에도 불과하고 이를 무시한다. 자신의 직관으로 어떠한 인물을 판단하며 더 낮은 가능성의 특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마지막 인상과 첫 인상이 이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대호용과 체계적인 비합리성으로 후회가 예상되는 일도 기꺼이 행한다. 이는 스포츠 선수와 스카우트 담당자, 군대, 병원 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판단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조차 그렇지 못한 것이다. 각 장마다 두사람과 전혀 관련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는데 암논 라포포트, 폴 호프먼, 아비샤이 레이니크, 레델마이어, 마일스 쇼어 등 이들의 이야기와 대니, 아모스 두사람 간의 관계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니는 아모스를 세미나에 초청했고,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모스가 자기 연구는 언급하지 않는 게 약간 놀라웠다.
아모스는 당시 자신의 연구가 워낙 추상적이고 이론적이어서 세미나에서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모스는 긴밀히 그리고 부단히 현실에 관여하면서도
연구에서는 현실에 관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반면에 대니는 사람들과 늘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연구만큼은
현실 세계에서 소비되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160p)
대니는 이 세상 최고의 장난감 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서격이라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한 번도 즐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물총을 가지고 놀까,
전동 스쿠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올가, 죽어라 고민만 하는 아이 같았다.
아모스는 대니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말했다.
집어치워, 우리는 전부 다 가지고 놀 거야." (203-204p)
이론과 연구보고로만 가득한 책이라면 쉽게 흥미를 잃었겠지만, 나름 시간순으로 배열 된 아모스와 대니의 생애가 또다른 재미를 준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매료되었으며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마나 긴밀하고 신나게 공동연구를 진행했는지, 그들 사이에 생긴 작은 응어리가 끝내 풀리지 못한 실타래가 되어 그들이 연구를 더이상 같이 진행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오롯이 알고 상대에게 '적합한' 표현으로 서로를 대했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까. 그들은 각자의 길에 나서 함께 하고 또 따로했던 행동경제학 이론을 열심히 발전시켰지만 왠지 책을 덮은 후에는 그런 아쉬움도 남는다.
결국 세상 모든 학문은 '세상에 써먹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쓸모 없는 학문이 아닌가. 두 사람의 연구 결과는 작게는 일상생활에서, 크게는 무상급식과 같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 항공기장들, 병원 등 세상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방 안에서 열심히 대상자들을 모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논문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세상을 바꿨다. 그것으로 그들이 함께한 시간의 의미는 충분했다.
레델마이어가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다는 게 아니다.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 레델마이어의 가슴에 와닿은 것은 실수는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실수는 인간의 본성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레델마이어는 <사이언스> 논문을 읽으면서, 그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실수를 저질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빤한 실수였다. 그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저지른 다른 실수와 똑같은 실수였다. (246p)
하지만 대니가 오이를 실험 진행자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은 이유는 바나나 때문이 아니었다.
대니는 하버드의 교수직 제안도, 맥아더재단의 천재상도 필요치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아모스가 대니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을 때라야 의미가 있었다.
대니에게 필요한 것은 예전에 둘이 한 연구실에 있을 때처럼 아모스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여전히 무비판적으로 봐주는 것이었다.
그 태도가 대니의 아이디어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과대평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뭐랄까, 아모스는 계속 오해하면 그만 아닐까?
결혼이란 게 원래 눈에 콩깍지가 씌어,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는 게 아니던가.
"나는 아모스가 그래주길 바란 거지, 새상에 바란 게 아니었어." 대니의 말이었다. (382p)
우린 친구야.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