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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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남자의 성격인 것이다.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런 순간의 연속이 그의 인생이었다.
다시 말해 어제를 반성하는 오늘도, 내일을 전망하는 오늘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이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진짜 아이라면 그래도 충분하겠지만 쉰 가까이 먹은 주제에 '오늘'만 되풀이하면 생활이 얼마만큼 궁핍해질까.
그 전형 같은 비탈길 굴러 떨어지기가 십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노부요는 그 십 년, 함께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28p)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달콤한 기억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쇼타는 인생선배로서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이제 그만 잊어버려."
열 살 나름의 인생철학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말이었다. (74-75p)


그랬다.
노부요는 일을 포기하고 이런 시간을 선택한 것이었다.
시시하고 바보 같은 사건이다. 쇼타와 린이 어른이 되면 오늘 일을 말해줘야지.
그리고 넷이서 신나게 웃어야지.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노부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171p)


시선 끝자락에 무언가 들어왔다.
주리는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지 않은 목소리가 흐린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
불러봐.
소리 내어 불러봐. (257p)


소제목들만 봐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화면이 머릿속에 펼쳐질 정도로 생생하다. 그저 짐작했던 그들의 마음과 속사정들이 잘 드러나는 것 만으로 소설의 의미가 쏠쏠하다. 묘사가 꼼꼼하거나 구구절절 그들의 마음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저 말 한마디로도 충분했다. 한 집에 살았던 이 '좀도둑' 가족의 사정을 나는 아직도 반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이들을 이해해야 할까. 그럼에도 영화로 이미지를 접했던 순간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로 읽었을 때나 영화로 봤을 때나 가장 눈에 밟혔던 건 역시나 노부요였다. 린과 같은 사정을 안고 있었음이, 오사무와 서로 공유하는 짙은 기억이 있었음이 소설에는 더 자세하게 드러나서 더 안타까웠다. 오사무가 '아빠'를 언급하는 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됐지만 노부요는 조금 달랐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엄마였고 하쓰에와 오사무와 아키의 가족이었음을 절절하게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당신의 마음은 편한가요.


생각보다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은 적다. 이 작은 에피소드의 조각들이 대부분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더 놀라울 정도다. 이야기는 부드러운 듯 예리하고, 누구보다도 차가운 주제를 솔직하게 다루지만 따뜻하다. 작은 디테일들이 소설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다시한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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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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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내가 철학을 하는 방식이었지.
사람들은, 특히 나는, 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이 질문을 이해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거든. 이때는 이미 하느님의 존재 여부도
내 관심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꽤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는지는 내게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어.
나는 옳고 그름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분노에는 관심이 아주 많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심리학자가 아니고 뭐겠어!" (68p)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서,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데 심지어 실수임을 인지하면서도 끝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대니얼 카너먼은 잘 알려진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로 '실수인 걸 알면서 저지르는 실수'의 체계를 설명했다. 이 책은 대니얼 마너먼과 아모스 토버스키가 실시한 연구를 쉽게 설명함과 동시에 그들 관계의 역사와 학자로서, 사람으로서 이들이 했던 경험과 고민을 꼼꼼하게 담아낸 책이다.  


  성격부터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도 (큰 틀은 비슷했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5장에서야 처음 만난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기도 한 두 사람은 우리로서는 조금 상상하기 힘든데, 실제로 교수직에 있으면서도 몇 번의 전쟁에 소집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나치의 영향력이 짙은 어린시절을 지났고, 이스라엘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최악을 믿고 최고임을 믿었다 뿐이지 학문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심리와 통계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비행을 유난히 잘해서 칭찬을 받은 조종사나, 비행을 유난히 못해서 질책을 받은 조종사나 모두 평균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교관이 질책이나 칭찬을 하지 않았어도 조종사들은 비행을 더 잘했거나 못했기 쉽다.
교관들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도, 말로 고통을 줄 때보다 말로 기쁨을 줄 때 효과가 적다는 착각에 빠진다.
지루한 숫자가 통계의 전부가 아니다. 통계로 인간 삶의 진실한 내면을 엿볼 수도 있다.
대니는 훗날 이렇게 썼다.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는 원래 타인을 보상하면 통계적으로 벌을 받고,
타인을 벌하면 통계적으로 보상을 받게 마련이다." (139p)


 심리학이 부흥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은 모두 미묘하게 다르고 또 그러면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연구하기 가장 어렵고 재밌는 동물이라서가 아닐까. 모두가 군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서도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놀랄만큼 일관적으로 예상을 벗어나거나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결과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직관을 과신하며, 눈으로 본 이미지를 강하게 확신하는 '확증편향', 자신이 이미 가진 물건을 더 높게 평가하는 '소유효과', 방향성과 비대칭성을 고려하지 않는 '유사성 판단'까지 우리는 때로 예리하지만 믿을 수 없게 멍청하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이론은 바로 표본집단의 오해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확률 문제에서 표본이 무한히 커질 수록 비슷비슷한, 또는 정해진 확률이 나오는 것이 원래의 논리다. 하지만 표본이 충분히 작다면? 사람들은 소수법칙과 대수법칙을 당당하게 헷갈려한다. 두 사람은 오리건 연구소에서 전문가보다 더 정확한 '판단 알고리즘'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데, 여기서도 '무작위에 대한 오해'와 가까운 과거일수록 가능성을 더 크게 생각하는 오류를 수정하려 한다.


 이후에도 '조건부' 어림짐작과 '기준점 설정과 조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피시험자들은 객관적인 정보와 눈앞에 결과가 나와있는 통계 학습에도 불과하고 이를 무시한다. 자신의 직관으로 어떠한 인물을 판단하며 더 낮은 가능성의 특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마지막 인상과 첫 인상이 이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대호용과 체계적인 비합리성으로 후회가 예상되는 일도 기꺼이 행한다. 이는 스포츠 선수와 스카우트 담당자, 군대, 병원 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판단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조차 그렇지 못한 것이다. 각 장마다 두사람과 전혀 관련 없을 것만 같은 이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는데 암논 라포포트, 폴 호프먼, 아비샤이 레이니크, 레델마이어, 마일스 쇼어 등 이들의 이야기와 대니, 아모스 두사람 간의 관계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니는 아모스를 세미나에 초청했고,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모스가 자기 연구는 언급하지 않는 게 약간 놀라웠다.
아모스는 당시 자신의 연구가 워낙 추상적이고 이론적이어서 세미나에서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모스는 긴밀히 그리고 부단히 현실에 관여하면서도
연구에서는 현실에 관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반면에 대니는 사람들과 늘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연구만큼은
현실 세계에서 소비되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160p)


대니는 이 세상 최고의 장난감 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서격이라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한 번도 즐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물총을 가지고 놀까,
전동 스쿠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올가, 죽어라 고민만 하는 아이 같았다.
아모스는 대니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말했다.
집어치워, 우리는 전부 다 가지고 놀 거야." (203-204p)


이론과 연구보고로만 가득한 책이라면 쉽게 흥미를 잃었겠지만, 나름 시간순으로 배열 된 아모스와 대니의 생애가 또다른 재미를 준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매료되었으며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마나 긴밀하고 신나게 공동연구를 진행했는지, 그들 사이에 생긴 작은 응어리가 끝내 풀리지 못한 실타래가 되어 그들이 연구를 더이상 같이 진행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오롯이 알고 상대에게 '적합한' 표현으로 서로를 대했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까. 그들은 각자의 길에 나서 함께 하고 또 따로했던 행동경제학 이론을 열심히 발전시켰지만 왠지 책을 덮은 후에는 그런 아쉬움도 남는다.


 결국 세상 모든 학문은 '세상에 써먹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쓸모 없는 학문이 아닌가. 두 사람의 연구 결과는 작게는 일상생활에서, 크게는 무상급식과 같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 항공기장들, 병원 등 세상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방 안에서 열심히 대상자들을 모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논문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세상을 바꿨다. 그것으로 그들이 함께한 시간의 의미는 충분했다.



레델마이어가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다는 게 아니다.
그건 당연하지 않은가! 레델마이어의 가슴에 와닿은 것은 실수는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실수는 인간의 본성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레델마이어는 <사이언스> 논문을 읽으면서, 그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실수를 저질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빤한 실수였다. 그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저지른 다른 실수와 똑같은 실수였다. (246p)


하지만 대니가 오이를 실험 진행자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은 이유는 바나나 때문이 아니었다.
대니는 하버드의 교수직 제안도, 맥아더재단의 천재상도 필요치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아모스가 대니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놓을 때라야 의미가 있었다.
대니에게 필요한 것은 예전에 둘이 한 연구실에 있을 때처럼 아모스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여전히 무비판적으로 봐주는 것이었다.
그 태도가 대니의 아이디어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과대평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뭐랄까, 아모스는 계속 오해하면 그만 아닐까?
결혼이란 게 원래 눈에 콩깍지가 씌어,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는 게 아니던가.
"나는 아모스가 그래주길 바란 거지, 새상에 바란 게 아니었어." 대니의 말이었다. (382p)


우린 친구야.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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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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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리사로서는 뭔가 연구해서 내놓고 싶게 마련이어서
역대 세프는 저마다 이런저런 방법과 재료를 동원해 온갖다양한 치킨 요리에 도전했다.
정성껏 소스도 만들었다. 닭고기 구입처도 이곳저곳 시험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마치 허무의 구덩이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반응은 일절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셰프도 결국에는 포기하고 매일매일 극히 평범한 치킨 요리를 만들어 내놓게 되었다.
치킨일 것, 그것이 요리사에게 요구되는 것의 전부였다. (18p)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말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두 사람은 잔을 마주쳤다.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이라고 그녀는 머릿속에서 노인의 대사를 반복했다.
어째서 이 사람은 이렇게 조금 평범하지 않은 말을 쓰는 것일까. (34p)


내가 제대로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작품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아마 그때도 몰랐을 것이고) 왠지 모르게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 지극히 편식해서 읽는 편이다. 얇고, 가볍고 디자인까지 감각적이니 손쉽게 읽기 딱 좋은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트 멘시크의 이야기는 하루키 이야기의 신비함을 극대화시키는 지점이 있다.


 사람들은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며 소원을 빈다. 그것이 어떤 소원인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 질수 있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갓 스무살을 지나고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 사장을 놀라게 한 소원은 결국 끝까지 비밀이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삶 중에서 생일이면 또 그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특유의 능글맞은 일본노인네 같은 사장이 젊은 여성 어쩌구 운운하는건 아주 짧은 단락임에도 살짝 거슬렸지만(...) 소원을 이루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가 될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눈을 보았다.
그것은 매우 올곧은, 솔직한 시선이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벌써 소원을 빌었을걸?" 그녀는 말했다. (58p)


 생일은 단 한번뿐이다. 세상 소중하게 그 날을 여기는 사람이든, 별 생각없이 지나가는 사람이든. 그러나 일년에 한번 자신에게만 오는 날이니 그것만큼은 조금 소중하게 여겨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실에 치여서 최근 내 생일을 기대도, 특별한 일도 없이 지나쳤다. 어차피 현실에 치일거라면 내 마음이라도 나의 날을 챙길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절대 돌아오지 않는 오늘이니까. 어쨋든 모두의 생일에, 해피버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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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청기행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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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역사서와 조선관련 이야기들에 거의 통달한 작가이다보니 <조선왕조실록>의 부록급인 책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책 두께 자체는 그 부록치고 두툼하지만 그만큼 탄탄한 내용으로 가득 들어찼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웠던 한줄로 짚고 넘어가는 관청의 역할을 넘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읽을 만하다. 


 몰랐던 의미들을 관청의 이름에서부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궁'과 '궐' 단 두글자로 의의가 설명되는 궁궐과 그 종류들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궐내각사, 궐외각사로 구분되는 것과 정직, 체아직 등으로 구분되어 '비정규직'이 대다수였다는 점도 놀랍고 고려시대 때보다 품계는 높이되 잡일로 제한된 환관제도의 기원, '당상관'의 의미까지. 실록이나 역사책에서 스쳐지나갔던 명칭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더라.



임금이 인재를 기르는 그 아름다운 일은 어느 옛 임금보다 뛰어났다.
집현전 선비들은 날마나 숙직했는데 임금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신선이 사는 땅에 오른 것에 비교하였다. (89-90p)


관청과 관직을 소개하는 중간중간에 재밌는 일화도 많이 등장하는데 역시 사람사는데 다 똑같다. 세종이 황희를 끝까지 굴리며(...) 다른 이들이 불당지에서 다 나가자 잡아오라고 애원한 것, 후궁을 9명이나 두고 비가 무서워 경연궁에서 자기도 했던 정종 일화는 귀여울 정도다. 사실은 홍국영의 만행을 알면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아무말 않던 정조의 말들, 병부 하나로 트집잡아 죄없는 자들을 숙청하다시피 한 태종, 후에 고등재판부가 된 의금부도사가 온다는 말만 듣고도 자결한 윤원형과 정난정의 이야기는 섬뜩할 정도다.


곳곳에 놀랄 만한 사실들과 일화들이 많았는데 그 중 전체적으로 가장 기억남는 건 관리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었다. 고위직은 대부분 웬만하면 겸직일뿐더러, 장악원 내 시각장애인 단체인 관현맹에는 열명 내외, 도화서에는 20명 내외 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극보면서 애걔,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저것뿐인가? 했던 무지한 나를 반성합니다... 육방 외에 아전이 더 있었다는 것, 종묘서, 사직서는 물론이고 가마나 조총, 부마와 외척들을 위한 관청까지 정말 사소하고 수많은 관청에서 일했던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러면 지방관으로 가는 사람은 그 돈을 어디서 구할까요?
물론 자기 돈이 아닙니다. 수령으로 가는 사람은 자기 본읍에 미리 연락해
궐내행하에 필요한 돈을 아전들에게 가져오게 합니다.
수령으로 발령이 난 사람은 한양에 머무는 저리(각 지방 고을이나 병영에서 파견한 관리)를 통해
본읍에 미리 저보(고을에 보내는 통지문)를 띄우는데, 그때 필요한 궐내행하 비용을 요청합니다. (307p)

 
 '발령을 받는 순간부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행태는 조선의 너무나도 깊숙히 들어선 폐단이었다. 현대의 모습과 참 별다를 것 없다는 점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면서도 씁쓸하다. 치열한 경쟁률로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수의 공무원들부터 꼰대질(?)부터 배우고 시작하는 허참례부터 폐단을 알면서도 모른척 눈감는 윗사람들의 모습까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리고 수많은 지방과 관청에서 일하던 그들의 모습이 흥미롭고 때로는 안타깝게 생생히 다가온다. 사람들이 살고 나라가 있는 곳에 그 곳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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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 대구에서 맞선 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회사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히 괴롭히고 싶으 마음까지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치사한 방식으로 그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렸다.
그런 악취미들울 보고 있으면 유정은 인간의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그 나쁨도 그러데이션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두 사람, 경애와 상수. 어딘가 비어있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 만났고, 또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이들을 따라간다. 또한 늘 둘과 함께 있는 은총, 셋의 이야기가 천천히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진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 또한 이야기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 자자고?
-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 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 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아직 나는 제대로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 두번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거나 서서히 연락이 끊겨 보지 않는 그런 이유와는 달리 영영 볼 수 없을만큼 멀리 간 사람이. 은총을 잃은 두 사람에게 은총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조용하고도 절절히 다가와서 모두 짐작할 수 없지만 나는 슬퍼졌다.


  현실에는 불안의 전조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불행이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도 불안의 전조는 등장한다. '공'이 들어가는 말장난으로 시작하는 상수의 이름이, 과장보니 팀장대리니 구구절절한 이름으로 나타는 회사 안의 수많은 관계들이. 모든 피조들은 각자 그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뿐.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생의 통제할 수 없는 손에 있어서 그 '사이의 감각'은 발현되지 않을까.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로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메뉴얼이에요.


 우리는 왜 이렇게 주제넘게 서로를 궁금해할까. 나에게 설명시키고 이해하길 바랄까. 박경애와 공상수에게 그렇게 무신경하고 잔인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찔렸다. 나는 쉽게 상처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올바른 메뉴얼이 있고 모두가 그걸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하지만 늘 생각하는 지점이다.



경애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다.
그러면 경애는 그 순간, "오두막이 무너진 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 다친 줄도 모르고 웃고"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자기가 원하는 필기구를 정확히 적어
골머리를 앓게 하는 상수가 없고 갑자기 한팀이 되어서 필요 이상으로 연대감을 요구하는 상수가 없고
전철을 타고 가면서 피조라는 아이디의 어린 경애를 상상하는 상수가,
경애가 손을 맞잡았을 때 조용히 마음을 떨던 상수가 없을 것이었다.
상수는 그간 수많은 수학선생들의 관심을 받아온 것처럼, 늘 성립하는 상수가 아니라
이제 경애의 삶에 없는 공동, 제로, 허수가 되는 셈이었다. 


  은총과 산주와 헤어진, 또는 헤어지는 과정인 경애와 그리고 언니를 떠나보내는, 또는 떠나보내는 중인 상수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까. 굳이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상수가 형의 세계와 결별하려고 노력했듯이 경애가 모든 무례함에도 자리를 지켜내며 담배를 피웠듯이 그렇게 조금은 달라지고 또 조금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비어가는 피조에게, 은총을.  



물론 그런 호의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애를 좀 아는 직원들이 더더욱 경애가 있다는 것을 고역으로 여기며 외면한 채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찬 기운이란 어떤 공격성이나 냉소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불가피한 온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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