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관청기행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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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역사서와 조선관련 이야기들에 거의 통달한 작가이다보니 <조선왕조실록>의 부록급인 책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책 두께 자체는 그 부록치고 두툼하지만 그만큼 탄탄한 내용으로 가득 들어찼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웠던 한줄로 짚고 넘어가는 관청의 역할을 넘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읽을 만하다. 


 몰랐던 의미들을 관청의 이름에서부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궁'과 '궐' 단 두글자로 의의가 설명되는 궁궐과 그 종류들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궐내각사, 궐외각사로 구분되는 것과 정직, 체아직 등으로 구분되어 '비정규직'이 대다수였다는 점도 놀랍고 고려시대 때보다 품계는 높이되 잡일로 제한된 환관제도의 기원, '당상관'의 의미까지. 실록이나 역사책에서 스쳐지나갔던 명칭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더라.



임금이 인재를 기르는 그 아름다운 일은 어느 옛 임금보다 뛰어났다.
집현전 선비들은 날마나 숙직했는데 임금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신선이 사는 땅에 오른 것에 비교하였다. (89-90p)


관청과 관직을 소개하는 중간중간에 재밌는 일화도 많이 등장하는데 역시 사람사는데 다 똑같다. 세종이 황희를 끝까지 굴리며(...) 다른 이들이 불당지에서 다 나가자 잡아오라고 애원한 것, 후궁을 9명이나 두고 비가 무서워 경연궁에서 자기도 했던 정종 일화는 귀여울 정도다. 사실은 홍국영의 만행을 알면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아무말 않던 정조의 말들, 병부 하나로 트집잡아 죄없는 자들을 숙청하다시피 한 태종, 후에 고등재판부가 된 의금부도사가 온다는 말만 듣고도 자결한 윤원형과 정난정의 이야기는 섬뜩할 정도다.


곳곳에 놀랄 만한 사실들과 일화들이 많았는데 그 중 전체적으로 가장 기억남는 건 관리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었다. 고위직은 대부분 웬만하면 겸직일뿐더러, 장악원 내 시각장애인 단체인 관현맹에는 열명 내외, 도화서에는 20명 내외 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극보면서 애걔,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저것뿐인가? 했던 무지한 나를 반성합니다... 육방 외에 아전이 더 있었다는 것, 종묘서, 사직서는 물론이고 가마나 조총, 부마와 외척들을 위한 관청까지 정말 사소하고 수많은 관청에서 일했던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러면 지방관으로 가는 사람은 그 돈을 어디서 구할까요?
물론 자기 돈이 아닙니다. 수령으로 가는 사람은 자기 본읍에 미리 연락해
궐내행하에 필요한 돈을 아전들에게 가져오게 합니다.
수령으로 발령이 난 사람은 한양에 머무는 저리(각 지방 고을이나 병영에서 파견한 관리)를 통해
본읍에 미리 저보(고을에 보내는 통지문)를 띄우는데, 그때 필요한 궐내행하 비용을 요청합니다. (307p)

 
 '발령을 받는 순간부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행태는 조선의 너무나도 깊숙히 들어선 폐단이었다. 현대의 모습과 참 별다를 것 없다는 점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면서도 씁쓸하다. 치열한 경쟁률로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수의 공무원들부터 꼰대질(?)부터 배우고 시작하는 허참례부터 폐단을 알면서도 모른척 눈감는 윗사람들의 모습까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그리고 수많은 지방과 관청에서 일하던 그들의 모습이 흥미롭고 때로는 안타깝게 생생히 다가온다. 사람들이 살고 나라가 있는 곳에 그 곳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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