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남자의 성격인 것이다.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런 순간의 연속이 그의 인생이었다.다시 말해 어제를 반성하는 오늘도, 내일을 전망하는 오늘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오늘이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진짜 아이라면 그래도 충분하겠지만 쉰 가까이 먹은 주제에 '오늘'만 되풀이하면 생활이 얼마만큼 궁핍해질까.그 전형 같은 비탈길 굴러 떨어지기가 십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그리고 노부요는 그 십 년, 함께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28p)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달콤한 기억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쇼타는 인생선배로서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이제 그만 잊어버려."열 살 나름의 인생철학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말이었다. (74-75p)그랬다. 노부요는 일을 포기하고 이런 시간을 선택한 것이었다. 시시하고 바보 같은 사건이다. 쇼타와 린이 어른이 되면 오늘 일을 말해줘야지.그리고 넷이서 신나게 웃어야지.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노부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171p)시선 끝자락에 무언가 들어왔다. 주리는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지 않은 목소리가 흐린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불러봐. 소리 내어 불러봐. (257p)소제목들만 봐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화면이 머릿속에 펼쳐질 정도로 생생하다. 그저 짐작했던 그들의 마음과 속사정들이 잘 드러나는 것 만으로 소설의 의미가 쏠쏠하다. 묘사가 꼼꼼하거나 구구절절 그들의 마음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저 말 한마디로도 충분했다. 한 집에 살았던 이 '좀도둑' 가족의 사정을 나는 아직도 반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이들을 이해해야 할까. 그럼에도 영화로 이미지를 접했던 순간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로 읽었을 때나 영화로 봤을 때나 가장 눈에 밟혔던 건 역시나 노부요였다. 린과 같은 사정을 안고 있었음이, 오사무와 서로 공유하는 짙은 기억이 있었음이 소설에는 더 자세하게 드러나서 더 안타까웠다. 오사무가 '아빠'를 언급하는 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됐지만 노부요는 조금 달랐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엄마였고 하쓰에와 오사무와 아키의 가족이었음을 절절하게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당신의 마음은 편한가요. 생각보다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은 적다. 이 작은 에피소드의 조각들이 대부분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더 놀라울 정도다. 이야기는 부드러운 듯 예리하고, 누구보다도 차가운 주제를 솔직하게 다루지만 따뜻하다. 작은 디테일들이 소설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다시한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