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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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남자의 성격인 것이다.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런 순간의 연속이 그의 인생이었다.
다시 말해 어제를 반성하는 오늘도, 내일을 전망하는 오늘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이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진짜 아이라면 그래도 충분하겠지만 쉰 가까이 먹은 주제에 '오늘'만 되풀이하면 생활이 얼마만큼 궁핍해질까.
그 전형 같은 비탈길 굴러 떨어지기가 십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노부요는 그 십 년, 함께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28p)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달콤한 기억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쇼타는 인생선배로서 그렇게 생각했다.
"자, 이제 그만 잊어버려."
열 살 나름의 인생철학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말이었다. (74-75p)


그랬다.
노부요는 일을 포기하고 이런 시간을 선택한 것이었다.
시시하고 바보 같은 사건이다. 쇼타와 린이 어른이 되면 오늘 일을 말해줘야지.
그리고 넷이서 신나게 웃어야지.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노부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171p)


시선 끝자락에 무언가 들어왔다.
주리는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지 않은 목소리가 흐린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
불러봐.
소리 내어 불러봐. (257p)


소제목들만 봐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화면이 머릿속에 펼쳐질 정도로 생생하다. 그저 짐작했던 그들의 마음과 속사정들이 잘 드러나는 것 만으로 소설의 의미가 쏠쏠하다. 묘사가 꼼꼼하거나 구구절절 그들의 마음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저 말 한마디로도 충분했다. 한 집에 살았던 이 '좀도둑' 가족의 사정을 나는 아직도 반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이들을 이해해야 할까. 그럼에도 영화로 이미지를 접했던 순간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로 읽었을 때나 영화로 봤을 때나 가장 눈에 밟혔던 건 역시나 노부요였다. 린과 같은 사정을 안고 있었음이, 오사무와 서로 공유하는 짙은 기억이 있었음이 소설에는 더 자세하게 드러나서 더 안타까웠다. 오사무가 '아빠'를 언급하는 건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됐지만 노부요는 조금 달랐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엄마였고 하쓰에와 오사무와 아키의 가족이었음을 절절하게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당신의 마음은 편한가요.


생각보다 영화에서 생략된 장면은 적다. 이 작은 에피소드의 조각들이 대부분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더 놀라울 정도다. 이야기는 부드러운 듯 예리하고, 누구보다도 차가운 주제를 솔직하게 다루지만 따뜻하다. 작은 디테일들이 소설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다시한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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