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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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태가 이렇게 변하자 내 삶을 규정하고 지휘하기 위해 뇌가 항상 챙기던

외부 세계의 수많은 일들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일깨워주던 뇌의 재잘거림도 잠잠해졌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다. 순간순간 고동치는 심장박동의 리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28p)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뇌과학자.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이내 그것이 뇌졸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순간 섬광처럼 그녀에게 드는 생각. "이거 정말 멋진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특정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그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실제 우리가 특정 상황에 던져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병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좌뇌와 언어 중추를 잃었을 때 시간을 연속적인 짧은 순간들로 나누는 시계도 사라졌다.

순간들이 정확하게 매듭지어지는 대신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서둘러 밀어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듯,

좌뇌의 '행하는' 의식을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으로 바꾸었다.

아주 사소하고 늘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내가 이제 거대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어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관점으로 현재의 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담당 세포들이 망가져서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일들을 숙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58p)

뇌졸중 환자 중에는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88p)

그녀는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씻으면서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이 한순간에 철인 3종경기보다도 힘든 일이 된다. 아주 절박하고 느린 그녀의 행동들을 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뇌졸중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도 섬세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한 순간에 완전히 무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아침.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저자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나저나 내가 꽤 스테레오타입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던 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뇌과학자라는 기본 배경만 가지고 책을 읽어서 (왜인지) 당연하게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것. 왜인지 부인과 아이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미혼의 여성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승승장구할 뿐더러 그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신은 그녀에게 더 즐길거리를 던져주고 말았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어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감각 경험에 어울리는 새 단어를 배워야 했다.

아울러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 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8p)

한순간 망가진 좌뇌를 회복하기까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의 중요한 기억들을 저자는 꾸준히 되살린다. 한편으로는 기억력이 정말 좋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정말 강했구나라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뇌졸중에 걸렸던 초반부의 묘사가 정말 생생하고 얼마나 자신이 일상적인 행동에 곤란을 겪었으며 우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정은 어땠는지의 묘사도 세세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다는건 알았지만 한쪽의 기능이 월등해질 때 느끼는 것들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

감정적 치유는 지루하리만치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었따.

외부의 그 무엇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119p)

좌뇌의 능력을 되찾으려면 새로 얻은 우뇌의 의식과 가치 체계,

그와 관련한 개성을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우주와 연결된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모든 것에서 분리된 존재로 두는 건 싫었다.

뇌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진정한 '자아'와 더 이상 접촉할 수 없게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건대 세상 모든 번뇌로부터의 해방감(열반과 같은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정상적인'사람으로 돌아가려면 우뇌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133p)

우리는 모두 다른 뇌세포를 가진, "50개조의 분자적 지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늘 아침 언덕을 올라 출근한 내 다리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 손가락과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들을 수많은 세포와 뉴런이 뇌로 전달하고 좌뇌와 우뇌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처리할테니 말이다. 본질적으로 뇌와 몸의 세포들끼리 본질적으로 배선된 방식도 다를것이므로 이를 처리과정의 개인차로 저자는 언급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뻔하디뻔한 비유가 사실 이토록 과학적인 설명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뇌졸중에 걸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회복과정은 어땠는지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느낀 감정,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할지, 회복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등. 그 중에서 뇌졸중과는 뭔가 내 일이 아니라고(...) 여전히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가장 유용했던 정보는 우리의 감정이 90초의 주기를 가진다는 것. 그래서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거나 너무 들뜰 때 90초의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내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음, 잘 써먹어봐야겠군(라고 다혈질이 말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내 몸을 구성하는 작고 아름다운 신경 회로들이

내가 마음이라 부르는 방을 함께 짜면서 만들어낸 자각이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연결을 바꾸는 신경세포들의 가소성 덕분에

여러분과 나는 이 땅에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

다행이도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어제의 모습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180p)

내 마음속의 정원을 열심히 가꿔나가야지. 저자의 끊임없는 주장을 조금 확대해석해서, 개인의 감정이 모든것을 좌우한다는 자기개발서틱한 논리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의 중심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늘 깨닫는다(그리고 늘 실패를 반복한다). 감정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녀가 느낀 체험을 고스란히 하는 것은 큰 리스크와 불가능함을 안고 있지만(...) 양쪽 뇌의 기능을 알고 생각하며 행동해 봄직하다. 내 마음속의 정원을 최선을 다해 가꿀 것.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DNA와 주변의 환경들이 잘 만날수 있도록 "활기차고 아름답게 나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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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계절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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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날을 축하하는 날인데 
이날이 되면 염소 썰매 경주를 했단다. 정말 신이 났었지.
1등을 하면 상도 받았어.

국내에서도 <비밀의 화원>으로 유명한 미국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책이다. 1977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타샤 튜더의 시리즈 중 한권. 그녀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아주 사소한 일상까지도 생애의 기쁨으로 발견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부드러운 수채화와 아기자기하고 담백한 그림체로 담아낸 계절의 풍경, 가족들의 모습, 멋진 축제와 축하음식들은 따뜻한 기쁨을 보는 이에게도 선사한다. 


그대를 환영하오, 아름답고 싱그러운 5월이여.
5월 1일은 5월제라고 하는데, 농사가 잘되기를 비는 날이지.
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이웃집 문 앞에 꽃바구니를 몰래 갖다 두었단다. 
5월제 기둥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춤도 추었지.
정원에 씨앗을 뿌리는 달도 5월이었어.
11시, 간식 시간에는 사과나무 아래 맛있는 아이스티와 쿠키를 차려놓고 파티를 열었단다. 


실제 사물이나 사람을 모델로 그려서인지 그림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그녀가 정원의 꽃과 나무, 음식, 코기들, 집과 가족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그 다정함을 가늠할 수 있는 그림들이 장마다 펼쳐진다. 모든 계절의 숨어있는 아름다움까지 찾아내어 멋진 시구와 함께 잔잔하게 담아낸 하루하루에 나도 흠뻑 빠져들어 살아보고 싶다. 치열하고 팍팍한 현실의 순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말그대로 동화같은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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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중심은 나에게 둔다 - 싫은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는 말들
오시마 노부요리 지음, 황국영 옮김 / 윌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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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분 나쁜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상위 20퍼센트의 스트레스가 60퍼센트의 사람들을 거쳐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회사에서 들은 기분 나쁜 말 때문에 짜증나서 잠이 안 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뇌 네트워크를 통해 떠맡은 상위 20퍼센트의 스트레스를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해 잠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하위 20퍼센트의 능률은 수면 부족으로 인해 더욱 떨어지겠죠.(44p)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은 정확히 동아시아(특히 일본과 한국)을 겨냥한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  개인적으로 생활하고 싶고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지만 막상 타인의 가치나 존재는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당연히 누군가는 스트레스받고 상처받는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답은 '마인드 컨트롤' 오직 하나임을. 세상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기에. 



사실 사람들을 만나며 '난 역시 안 돼'라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내면에 있는 자기부정감을 뇌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타인과 접촉하는 동안 뇌 속에 멋대로 흘러들어온 상대 뇌 속의 자신감 부족,
자기부정의 감정을 자신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죠.(70p)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는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괜한 걱정을 하는 일이 잦았고 의미 없고 쓸데없는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맞다, 그 일도 처리해야 되는데!'하고 문득 떠오르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일마저 잊어버리기 일쑤였죠.
'어? 나 아까 뭐하던 중이었지?'라며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두번 수고를 들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버렸죠. (107p)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25년간 심리상담을 해온 저자의 경험담과 사례들이 제시된다지만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되다 보니 아니 이렇게 단순한 해결책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라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게 계속 말을 걸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해결책의 핵심이기 때문에 정작 이상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타인과 주변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잘지내면 된다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고. 


바꿔 말하면, 지금은 가치관이 일치되지 않는 '안심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안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상대를 변화시키고 싶다, 변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128p)


이 모든 것은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최면요법 테크닉을 활용해 의식이 만들어낸 벽을 무너뜨려 상대를 무의식의 세계로 불러들이면,
지금껏 의식 상태에서는 보지 못했던 상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의식의 필터를 통해 볼 때는 상대가 마치 괴물처럼 보였지만,
필터를 걷어내면 '의외로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152p)


 스트레스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이식받고 또 전달하기 쉽다는 실질적인 사례와 약간의 과학적 증거들은 우리고 웃자고 하는 '뇌트워크'가 강력하게 실생활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결국 나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한 간단한 처세술을 저자는 설명한다.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와 벽의 높이를 적당히 유지하는 것. '나'를 끊임없이 보살피는 것. 타인을 바꾸거나 환경을 뒤엎을 수 없다면 이렇게 중심이라도 나에게 둘 수 밖에.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이나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책을 덮은 후 할 수 있는 최선에서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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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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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 체계다. 모든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적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연을 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33-34p)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에 관한 문제다.
에어브러시로 여성의 얼굴에서 나이를 지우는 일은
흑인의 긍정적 이미지를 위해 피부색을 옅게 할 때와 같은 정치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손질했을 때 검은 피부색에 내리게 되는 가치 판단을 여성 삶의 가치에도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적을수록 좋다는 말일 것이다.
에어브러시로 여성의 얼굴에서 나이를 지우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과 힘,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139-140p)


그러나 이런 형태의 반복이 이미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강요되면, 실제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뀐다.
광신적 신흥종교 집단에서 주문을 욀 때 사람들은 비몽사몽인 "입면 상태"에 들어간다
그런 상태에서 공격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인 충동의 희생자가 된다.
이렇게 무아지경에 빠지는 일은 여성에게 음식과 비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도록 가르칠 때도 일어난다.
그 같은 비이성적 느낌이 들면 겁이 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 그렇게 공격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느낌이 자기 내부에서 생긴 것으로 믿게 하고
실재하는 느낌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지만,
그것은 분명 외부에서 강요한 느낌이고 실재하는 느낌이다. (202p)


이러한 두 극단은 생물학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길러진 여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여성의 극단이 허용하는 것보다 성기 중심적이고 건강하게 이기적이며 남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자유롭게 길러진 남성도 아마 남성의 극단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몰두하고
상처 받기 쉽고 건강하게 주고 몸 전체가 관능적일 것이다.
성적 아름다움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가진 양이 똑같고, 황홀해지는 정도도 남녀의 차이가 없다.
남성과 여성이 아름다움의 신화를 넘어 서로를 보면, 남녀가 서로 더 정직해질 것이고 에로틱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만큼 그렇게 서로를 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286p)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하는 것을 보면 미친 것 같았다.
나는 여행하고 싶은데 아름다움은 계속 쳇바퀴를 돌게했다.
어머니는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즐거움을 거의 얻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어머니를 해치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미 얻었는데 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어머니처럼 아름다우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끝없는 비하를 보상해줄 정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327p)


여성이 압력에 굴복할 때마다 압력은 더욱 거세져 그것이 의무가 될 것이고,
결국 자존심 있는 여성은 고치지 않은 얼굴로는 감히 밖에 나가지 못하리라.
여기에 싸구려 병원까지 가세해 값싸게 여성의 몸을 난도질 하려고 경쟁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음핵의 위치를 바꾸고, 질을 꼭 맞게 꿰매어 붙이고,
목의 근육을 풀고, 구역질 반사 기능을 없애는 것도 시간문제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의사들이몸속에있는 기관을 볼 수 있게 투명한 피부를 개발해 이식한 적도 있다.
한 목격자는 그것을 "최고의 관음증"이라고 한다.
이런 기계가 바로 문 앞에 있다. 그녀가 미래일까? (424p)


무시무시하다. 우리는 분명 모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외치지만 정작 가장 확연히 보이는 외모에서 여성은 해방되지 못했다. 각 제목에서 이미 끝났지. 나오미 울프는 이책을 십년, 이십년 전에 썼지만 이러한 류의 책을 읽을 때 늘 느끼듯이 세상은 무섭게도 변하지 않았다. 강요는 폭력이다. 혹자는 네가 원치 않으면 하지 않으면 되겠냐고 묻겠지만 글쎄,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서야.


 여성의 위치는 다양한 이념에 얽매여 앞으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더 많은 노동을 하지만 더 적은 가치를 인정받아며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듯한 여성지의 역사는 여성을 옥죄여 온다. 스스로와 모두를 검열한다. '아름다움'으로 인한 카스트제도는 종교와 같은 기능을 하며 이 유예의 종교에서 여성들은 순종적 지배자를 자처하게 만들어진다.


 포르노와 사도마조시즘으로 점철된 섹스의 문화는 일상적으로 소비되며 고급스러운 성폭행장면들은 광고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이런 현상은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동시에 여성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침범한다. 새로운 방법으로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저자는 노조 및세대간협력을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그 필요성을 우리는 책을 통해 더 절절하게 공감한다.


 폭력을 가하는 이도, 폭력을 당하는 이도 절대 폭력인지 않지 못하는 이 억눌린 상황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하는가. '여성의 아름다움'이 일종의 통화처럼 소모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잘못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결코 옳게 통용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한 세대 전에 저메인 그리어가 여성에게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렇게 여성이 한 것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혁명을 낳았다.
여성 개인으로서, 전체 여성으로서, 이 행성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우리가 거울을 볼 때 무엇을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여성이여, 무엇을 보겠는가? (4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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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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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유키코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키코의 목소리를 모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62p)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느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취급 설명서 따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위라고." (134p)


생각보다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유독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지 꼬박 일주일도 넘게 걸려 읽었다. 아무래도 건축과 일본 문화에 대한 생소한 용어들과 건축을 주제로 삼고 있는만큼 공간을 설명하고 또 그것을 이해하는데 부딪히는 한계가 있어서 아쉬웠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이름을 (자리 배치대로) 적어가면서 보기도 하고 묘사되는 집들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실력의 한계가 있어 그림(도면)이나 에니메이션으로 등장해도 좋을 듯 싶다. 



아르바이트를 막 시작했을 때 1센티미터 폭 안에 2밀리미터 간격으로 선을 긋는 연습을 했다.
음표 없는 긴 오선보가 완성되어갔다.
보통 선, 흐리고 가는 선, 짙은 선. 세 종류의 오선보다.
우치다 씨한테 점검받아 트레이싱페이퍼에 닿는 연필심의 각도와 팔의 움직임을 조정한다.
그것만 가지고도 선의 굵기와 농담 차가 깨끗이 정돈된다.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우치다 씨의 손을 보고 있어도, 어디에 어떻게 힘을 넣는지 알 수 없다.
팽팽하게 긴장된 선, 가볍고, 딱딱하고, 부드럽고, 아무하고도 비슷하지 않은 소리가 난다. (146p)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215p)


 그러나 분명 소설에 가득한 여름기운은 독자의 마음을 맑게 만들고 건축에 대한 관심과 경외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가루이자와 여름 별장에서의 몇달일 뿐이지만 그 역사는 '나'뿐만 아니라 읽는 모든이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만큼 푸르고 또 푸르다. 아오쿠리 마을의 매미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  노장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열정, 다양한 방면에 대한 설계실 사람들의 세세한 묘사들은 비단 건축이라는 분야를 떠나서 새롭고 흥미를 자아낸다.



일흔이 지나서 선생님은 왜 이때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를 이 세상에 내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새삼스럽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선생님 속에도 그 이유를 설명할 말이 없는지 모른다.
자연의 형태나 색채가 합리적인 이유만으로 태어났다면 예컨대
꽃에게, 새에게, 나무에게 이다지도 많은 종류와 변호가 초래되었겠는가. 
박새의 가슴께에 흑백으로 그려진 무늬는 왜 그렇게 새겼는지, 각각의 개체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형태나 색은 그것을 지니는 자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먼 옛날부터 시간을 들여 찾아왔고, 그냥 계승되어가는 것이다.(328p)


-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 네.
- 말도 안 되는 것에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고.(353p)


 스톡홀름 시립도서관과 그 곳의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 등 실제의 건축물, 건축가들이 언급되는 만큼 어디까지가 가상의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에서 차용한 예시들인지 잘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저자가 얼마나 건축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평소에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니) 공부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자의 말이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실제로 '선생님'의 모델이 된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에 대한 언급부터 일본에만 존재하는 용어인 '시니세'와 그로 인해 '나'가 마리코와의 사이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설명하는 등 굉장히 유용했다.


  우리는 때때로, 꽤 자주, 아니 거의 모든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무관심하다. 시간을 보내는 만큼 조금의 애정과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야 겠다고 또 한번 부질없이 마음을 먹어본다. 관심과 시간이 재능과 타고난 감각을 뛰어넘는 때가 나타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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