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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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태가 이렇게 변하자 내 삶을 규정하고 지휘하기 위해 뇌가 항상 챙기던

외부 세계의 수많은 일들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계속 일깨워주던 뇌의 재잘거림도 잠잠해졌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자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도 날아가 버렸다.

나는 혼자였다. 순간순간 고동치는 심장박동의 리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28p)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뇌과학자.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이내 그것이 뇌졸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순간 섬광처럼 그녀에게 드는 생각. "이거 정말 멋진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특정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그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실제 우리가 특정 상황에 던져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병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좌뇌와 언어 중추를 잃었을 때 시간을 연속적인 짧은 순간들로 나누는 시계도 사라졌다.

순간들이 정확하게 매듭지어지는 대신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서둘러 밀어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듯,

좌뇌의 '행하는' 의식을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으로 바꾸었다.

아주 사소하고 늘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내가 이제 거대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어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관점으로 현재의 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담당 세포들이 망가져서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일들을 숙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58p)

뇌졸중 환자 중에는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볼 줄 알아야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 회복을 가로막는다. (88p)

그녀는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씻으면서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이 한순간에 철인 3종경기보다도 힘든 일이 된다. 아주 절박하고 느린 그녀의 행동들을 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뇌졸중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인간의 몸은 너무나도 섬세해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한 순간에 완전히 무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아침.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저자는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나저나 내가 꽤 스테레오타입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던 게 활발하게 활동하던 뇌과학자라는 기본 배경만 가지고 책을 읽어서 (왜인지) 당연하게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것. 왜인지 부인과 아이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미혼의 여성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승승장구할 뿐더러 그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신은 그녀에게 더 즐길거리를 던져주고 말았다.

뇌졸중을 통해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라면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어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감각 경험에 어울리는 새 단어를 배워야 했다.

아울러 감정이 내 몸에 계속 남아 있게 할지, 아니면 내 몸에서 곧장 흘러나가게 해야 하는지

판단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8p)

한순간 망가진 좌뇌를 회복하기까지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의 중요한 기억들을 저자는 꾸준히 되살린다. 한편으로는 기억력이 정말 좋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정말 강했구나라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뇌졸중에 걸렸던 초반부의 묘사가 정말 생생하고 얼마나 자신이 일상적인 행동에 곤란을 겪었으며 우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감정은 어땠는지의 묘사도 세세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다는건 알았지만 한쪽의 기능이 월등해질 때 느끼는 것들은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

감정적 치유는 지루하리만치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만들 사람은 없었따.

외부의 그 무엇도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달려 있었다. (119p)

좌뇌의 능력을 되찾으려면 새로 얻은 우뇌의 의식과 가치 체계,

그와 관련한 개성을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우주와 연결된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모든 것에서 분리된 존재로 두는 건 싫었다.

뇌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진정한 '자아'와 더 이상 접촉할 수 없게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건대 세상 모든 번뇌로부터의 해방감(열반과 같은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정상적인'사람으로 돌아가려면 우뇌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133p)

우리는 모두 다른 뇌세포를 가진, "50개조의 분자적 지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늘 아침 언덕을 올라 출근한 내 다리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던 손가락과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들을 수많은 세포와 뉴런이 뇌로 전달하고 좌뇌와 우뇌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처리할테니 말이다. 본질적으로 뇌와 몸의 세포들끼리 본질적으로 배선된 방식도 다를것이므로 이를 처리과정의 개인차로 저자는 언급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뻔하디뻔한 비유가 사실 이토록 과학적인 설명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뇌졸중에 걸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회복과정은 어땠는지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느낀 감정,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할지, 회복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등. 그 중에서 뇌졸중과는 뭔가 내 일이 아니라고(...) 여전히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가장 유용했던 정보는 우리의 감정이 90초의 주기를 가진다는 것. 그래서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거나 너무 들뜰 때 90초의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내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음, 잘 써먹어봐야겠군(라고 다혈질이 말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내 몸을 구성하는 작고 아름다운 신경 회로들이

내가 마음이라 부르는 방을 함께 짜면서 만들어낸 자각이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연결을 바꾸는 신경세포들의 가소성 덕분에

여러분과 나는 이 땅에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

다행이도 오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어제의 모습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180p)

내 마음속의 정원을 열심히 가꿔나가야지. 저자의 끊임없는 주장을 조금 확대해석해서, 개인의 감정이 모든것을 좌우한다는 자기개발서틱한 논리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의 중심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늘 깨닫는다(그리고 늘 실패를 반복한다). 감정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녀가 느낀 체험을 고스란히 하는 것은 큰 리스크와 불가능함을 안고 있지만(...) 양쪽 뇌의 기능을 알고 생각하며 행동해 봄직하다. 내 마음속의 정원을 최선을 다해 가꿀 것.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DNA와 주변의 환경들이 잘 만날수 있도록 "활기차고 아름답게 나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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