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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호흡이 빠르고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발랄하고 가벼운 문장이지만 내용은 무겁다. 어쩌면 책표지그림, 제목과 같은 반어법과 아이러니 그리고 나란히 놓여있고 섞이지 않는 것의 병치가 이 책의 숨겨진 코드같은 느낌이다. 빛의 제국이라는 책제목처럼 이 소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알고 있으나 애써 꺼내어 말하지 않는, 경험했고 가슴 깊이 상처 같은 것을 남기거나 긴 그림자를 드리운, 미루어 짐작 할만 한 많은 (이분법적인) 갈등들이 연합전선을 이루며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서로 영향을 나눠가지며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은 어둠이라는 역을 필요조건으로 하기에 빛의 제국이라는 제목은 내용에 비추어 나름 뛰어난 선택인것 같다.
기영이라는 남자가 하루동안 겪는 엄청난 갈등 안에 그가 살아온 전 인생의 스토리가 녹아있고 그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원튼 원치 않튼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의 아내 마리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남자들과의 도발적인 난교와 둘이든 셋이든을 선택해야하고 관계를 지속해야할 지를 선택하고 기영과 계속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딸 현미는 또 착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기 멋대로일 지를 자꾸만 선택해야 한다. 다른 등장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삶이란 갈등이 생기고, 또 해결을 위해 뭔가를 선택하고, 그걸 밀어부치다 또다른 갈등이 생기고의 연속인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한 집에 살고 한 식탁에 앉고 인사하고 함께 자고 대화하지만 모두 외롭고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 있다. 중학생 현미의 남자 친구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사회가 각자 소외되어 모두가 함께 인것 같지만 모두 따로 따로고 남의 고민이나 남의 마음, 삶에는 관심조차 없고 오직 자기자신의 일상과 몸뚱이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남과 북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내용과 학생운동 내용을 걷어낸다면 진저리처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소설은 감동, 카타르시스 보다 잊고 싶은 우리의 어두운 이면에 집중하고 있고, 선생이며 기영의 후배인 (아픔을 이겨냈고, 남을 껴안을 줄 아는) 소지와 중학생이며 영민하고 덜 상처받은 어린 딸 현미 라는 인물에게서 작은 희망을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