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초.호조키
요시다 겐코.가모노 조메이 지음, 정장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1989년 초여름에 도연초를 처음 접했다.  그 첫머리에 "이렇다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쓰노라니, 이상하게도 기분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미칠 것만 같구나." 라는 글만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세파에 가슴까지 굳어가는지 젊은 날의 그런 감동을 재현하기는 힘든 건 같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한반도는 고려말 무신정권이 들어서던 시기)에 지금의 교토에 살았던 겐코는 궁정 생활에 익숙하고 정취를 아끼던 문화인이며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한 스님이기도 하였으며  (막부정치를 낳았고.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가마쿠라막부의 칼을 차고다니던 칼잽이 문화를 멀리하며 저물어가는 황실의 옛모습을 흠모하였고 (멋이나 정취를 모르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관조적인 태도로 은은한 멋을 즐기며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내용을 도연초 속에 담았다. 호조키는 관조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세상사의 풍상을 온전히 몸뚱이로 받아낸 노인이 세월을 돌아보며 짧은 시간에 정리한 듯 보이는 글이였다.  

이런 호젓한 멋과 정취를 찾는 현대인들이 블로그에 몰두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겐코는 도연초에 243단의 글을 적어갔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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