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기억만을 바란다는 것은 이땅의 백성들에겐 허용되지 않는 욕심일 것이다.

좋았던 싫었던, 좋든 싫든 이렇게 많은 기억들을 내장할 수 있었던 성장기 역사 앞에 숙연해진다. 박완서 선생을 닮아 책 속 가득 오밀조밀한 수많은 사연들과 한 줄 허투루 하지않고 매 문장마다 정성 담긴 감성, 흐름, 옛정취에 대가의 글쓰기를 느낀다.

박완서 선생(1931-2011)의 명복을 빈다.

 

90p.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15p. 면서기나 동서기만 되어도 반말을 일삼던 하급관리들, 멀리서 그 번쩍거리는 칼빛만 보아도 오금이 저려 죄 없이도 뺑소니칠 궁리부터 하던 순사들, 쇠사슬을 발목에 찬 죄수들을 짐승처럼 잔혹하게 다루던 간수들, 살기와 오기가 충천하던 일본 병정들, 가정방문 와서 일본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어머니를 야만인 보듯 경멸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본인 선생 등등, 유년기와 소녀기의 의식을 짓누르던 일제의 지긋지긋한 악봉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135p.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215p. 자식의 안전을 위해 법에서 금하는 불온한 사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식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만치 뭔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고 싶은, 가장 우리 엄마다운 이중성이었을까? 

  하여튼 엄마의 태도는 뜻밖이었다. 나는 이런 엄마를 보고 당시의 유행어를 빌려 우리 엄마야말로 수박 빨갱이였다고 버릇없이 놀려 먹곤 했지만 엄마는 꽤 오래도록 남몰래 외롭게 전향의 후유증을 앓았다.


260p. 단박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갈 만큼 승승장구할 때 승자가 과연 그렇게까지 모질게 굴 필요가 있었을까. 승리의 시간은 있어도 관용의 시간은 있어선 안 되는 게 이데올로기의 싸움의 특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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