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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시대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신으로 종신대통령을 꿈꾼 박정희는 10.26으로 결국 그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이어지는 더욱 엄혹한 군사정권을 마주하게 됐고 끝난줄 알았던 박정희의 꿈은 또다른 모습으로 계속을 준비한다.
95p. 더러 공무원들을 대할 때마다 기분이 언짢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리 불친절하냐고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 돌아섰다. 그런 말을 한다고 고쳐질 그들이 아니었다. 자기들이 대단히 높은 자리에나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길들여진 그 못된 버릇은 달리 고칠 도리가 없는 그들의 고질병이었다. 공무원들이란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살리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의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여 제나름의 권력 횡포를 자행하는 존재들로 둔갑해 있었다. 그것은 군대에서 폭력 행사를 당연시하는 것과 함께 일제 식민지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못된 행태였다. 총독부 시절에 일본인 공무원들이 조선 식민지 백성들 위에 얼마나 무도하게 군림했던가. 그 못된버릇이 세월 따라 고쳐지기는커녕 독재권력이 길어지면서 더 심해져가고 있는 양상이었다. 독재권력은 정권 유지를 위한 한 세력으로 공무원 집단을 이용하고, 공무원들은 그 우산 아래서 멋대로 부정 부패하며 횡포를 일삼고 있었다. 그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공생 관계였다.
236p. "하아, 이런 쑥맥을 봤나. 정치인들이 제일 잘 쓰는 두 가지 말이 뭔지 너 알지? 자기들 입장 다급해지면 말 못하는 '국민' 멋대로 팔아먹고, 즈네들 의리 없고 비겁하게 굴어 지탄받으면 '정치는 현실이다' 하고 뻔뻔스럽게 변명해 버리잖잖냐. 정치만 현실인 줄 아냐. 사업은 더욱더 현실이다.
242p. "좋아, 자본을 댄 기업주의 권한을 충분히 인정해. 또 기업주들이 바치는 노력도 다 인정해. 그렇지만 기업주들은 자기네가 투자한 자본의 몇 배의 이익을 얻어야 만족하는 거지? 백 배? 천 배? 만 배? 그게 아니잖아. 무한정, 영원히 이익을 보려고 욕심부리고 있어. 그게 말이나 돼? 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도 못 되는 임금을 받으며 혹사당하고 있는데 기업주들만 무한대의 치부를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봉건적 착취주의지. 올바른 자본주의란 분배를 통해서 자본과 노동의 수평적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거야. 자본 없는 노동은 있을 수 없다고? 그 말 옳아. 그러나, 노동 없는 자본이 있을 수 있어? 자본과 노동이란 기업이라는 기차가 달리게 하는 두 줄의 레일이야. 그 비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망해. 기업이 망하지 않게 하려면 기업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분배를 해야 하고, 기업의 주인이 자기 혼자라는 잘못된 생각도 뜯어고쳐야 돼. 자기가 투자한 자본보다 수천 배, 수만 배를 빼먹고도 기업 자산은 또 수천만 배로 커졌는데 어찌 그게 다 자기 거야. 그 절반은 노동으로 그 자산을 키워낸 노동자들의 것이지. 그 몫을 찾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이젠 일방적 착취의 시대는 자났어. 또, 노조가 존재해야만 자본과 노동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그 토대 위에서 천민자본주의가 아닌 올바른 자본주의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빨리 의식을 고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으며 시대적 격절감으로 당장 어찌 해볼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한계감에 마음만 동동거리며 저리고 쓰리곤 했다. 그러나 '한강'은 지금 시대와도 이어지는 관계성을 읽어내며 어떻게든 뭐라도 할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겠다는 안도로 조금이나마 책읽는 마음이 편했다.
이로써 조정래 선생에게 진 마음 빚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부디 저자 조정래 선생의 건강과 평안을 빌고 더좋은 글을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