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우실하 지음 / 소나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고, 길게보고 움직이는 국가가 있다. 

반면 다른 나라 국가전략의 종속변수 역할을 국제적으로 자청하며 권력층은 자기 나라와 역사에 대한 열등감만 있고 스스로 비하하기를 공공연히 일삼고 민족 자체를 끌어안기 보다 자기 집단의 이익과 정략에만 앞장서 헌신하고 대대로 매국과 매판으로 태연충실히 처신하는 그런 나라가 있다. 

이 두 나라의 근본적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32p. 우리에게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전체 국민을 단합시키고 하나로 묶는 의미를 지니지만,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56개 민족으로 뿔뿔이 흩어지자는 '분리주의' 혹은 '분열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아주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의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와 유사하게 사용하는 것은 '애국주의'라는 단어입니다. 56개 민족의 단합은 각각의 민족끼리 뭉치자는 '민족주의'로는 안되고, '애국주의'라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42p. 중국 최고 지도자를 밤낮없이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고 통치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경서야 하는 아킬레스건은, (1)홍수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 '치수治水의 문제'와. (2)광대한 중국 땅덩어리의 분열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통일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분열방지의 문제'였습니다.


92p. 이런 모든 것은 1980년대부터 요하 지역에서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어마어마한 신석기유적들이 대대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황하문명의 중심지인 앙소문화보다 1000년 이상 앞선 이른 신석기유적들 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모든 역사에서 이 요하遼河 지역은 중화민족과는 상관없는 만리장성 밖의 동이東夷와 북적北狄의 활동 영역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야만인 취급하던 이 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중화문명의 기원지'를 황하에서 요하 일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화문명=황하문명'이라는 것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106p.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와 장강(양자강) 하류의 하모도문화보다 2000년 이상 앞서는 신석기문화가 요하 일대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123p. (요하문명) 흥륭와유적에서는 중원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됩니다. 흥륭와문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요하 일대 신석기유적에서도 이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런 빗살무늬토기는 '시베리아 남단→만주 지역→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라는 점입니다.

126p.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259p. 이런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1)'중화민족과 사방의 야만인인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전통적인 화이관은 무너지고, (2)사방의 야만인들을 모두 중화민족의 개념 안에 넣어버린 '새로운 중화민족 개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실 '중화민족' 이라는 개념 자체기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속한 사람을 '중국인' 이라고 합니다. 이 '중국인'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6개 민족'을 하나로 묶어서 또 다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인'은 있을 수 있어도, 56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중화민족'은 없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인'은 있어도 이들 민족들을 모두 합쳐서 '미국민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268p.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중화문명의 시발지를 요하遼河 유역으로 옮기고 있는 중국은 요하문명을 새롭게 설정하고, 이 요하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는 논리를 세우고 있습니다.


275p. 요하 유역의 신석기문화 특히 홍산문화가 발견되면서 이제 야만인 취급받던 '동이'와 '북적'이, (1) 가장 이른 시기에 문명사회에 진입한 중화민족의 시조로, (2) 이들이 거주하던 요하 일대가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277p. 전설과 신화의 시대에 '3황5제'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각종 사서에서도 '3황5제'는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분명한 '3황5제'를역사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주로 <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은 이덕일 의 <사기, 2천년의 비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사서의 기록을 통해 '3황5제'의 민족귀속성을 추적한 책이다.


301p. 이제까지 중국학자들이 보아온 것처럼, 이 지역(요하 지역)은 동이東夷의 강역이었고 예.맥의 선조들이 주도하던 새로운 문명권인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용龍.봉鳳문화'와 '옥기 문화' 등이 남하하여 중원 지역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보이는 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한반도 쪽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요하 일대 만주 지역과 한반도 일대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요하 일대의 여러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보이는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곧, (1)빗살무늬토기, (2)세석기, (3)적석총, (4)석관묘, (5)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6)비파형동검, (7)고인돌 등이 대량으로 발견됩니다. 이것은 모두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북방문화 계통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