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곽상주 해제
김학목 옮김 / 학고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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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252 ?-312)은 유비-제갈량의 중국삼국시대 이후 조조가 세운 위나라가 뒤에 사마씨에게 선양하며 세워진 진晉나라 시절의 인물이다. 

기원전 전국시대 맹자와 비슷한 시기 장자莊周의 저작에 대해 후대의 곽상이 설명注을 붙였는데 그것이 바로 "장자 곽상주注"이고 그 일부 내편의 한글 주해서가 바로 이 책이다.

참고로 책 중간에 나오는 "노자 왕필주"의 저자 왕필은 조조와 비슷한 시기 위나라 천재소년이다.


"노자, 장자 보다 더 나가는 곽상"이라는 글제목은 순전히 (전공자가 아닌 아마츄어인) 내 느낌을 말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이에 대해서 간단히 꼴라쥬 형식으로 느낌만 전달하자면,

공자는 세상 속에서 인과 호학의 현실 정치가로 후대 모범의 삶을 살고자 애썼다면,

노자는 세상에 반쯤 속한 채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 이면인 양쪽 모두를 관조하는 질박함으로 공자의 인위적인 모범을 경계하라고 치자에게 충고한다.

장자는 세상 건너편에서 공자와 노자의 양면을 포괄하며 둘 모두를 함께 초월해버린 무아의 경지로 유유자적 자유롭게 살라 말한다.

곽상은 세상에 또는 그 건너편 어디에 있든 그건 문제도 아니며 초월하려는 마음씀 자체조차 잊은 궁극의 마음비움으로 아무 의식없이 변화와 하나 되어 분수에 합당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소요유편의 "이충二蟲"을 붕과 매미(곽상) 또는 매미와 비둘기(안동림, 후쿠나가 미쯔지, 조현숙)로 보느냐에서 곽상주注는 의견이 갈리고 그만큼 다른 주해보다 곽상은 더 멀리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오상아吾喪我로 시작해 호접몽으로 끝나는 '제물론' 편은 상당히 난해하다. 

후쿠나가 미쯔지는 정치한 인식론적 고찰이 노자와 다른 장자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곽상의 주注로도 한글로도 쉽지가 않다. 


191. 인간세 

장자 : "어짊과 의로움이라는 도덕적인 말로 힘써 포악한 사람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은 남의 뛰어나지 못함을 기회로 자신을 뛰어나게 하려는 것이지.

곽상주 : 이 때문에 무아의 경지에 이른 사람른 애써 세상을 경영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 사물을 따르는 것이다.


280. 덕충부 

발뒤꿈치를 베인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와 배움을 청했는데 전과자라고 힐난만 하는 공자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며 숙산무지가 공자에게 말하는데

장자 : 하늘은 덮어주지 않는 것이 없고, 땅은 실어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숙산무지)는 공자 선생님을 천지로 여겼는데 선생님께서 이러실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럴줄 몰랐습니다) 

곽상주 : (숙산무지의 말을 설명하며) 하늘은 덮어주는 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덮어줄 수 있고, 땅은 실어주는 것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실어줄 수 있다. 

천지라고 해서 덮어주고 실어주는 것을 행한다면, 때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물 위에 띄워놓는다면, 때에 따라 침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무엇이든 행하는 것으로는 그의 삶을 마치게 하기에 부족하다. 중니가 근신하지 못하여 천지에 미치지 못함을 나무란 것이다.

...... 온전한 덕을 지닌 사람은 살면서 사는 것을 잊어버린다.


335. 대종사

장자 : 샘이 말라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바글바글 모여 있으면서 물기로 서로 불어주고 불방울로 서로 적셔주는 것은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하다.    

곽상주 : 부족하면서 서로 아껴주는 것이 어찌 충분해서 서로 잊고 지내는 것만 하겠는가!


338. 대종사 

신경써 꼭꼭 잘 숨겨둔 것을 힘센 자가 나타나 통째로 등에 지고 튈 수 있음을 말하며

장자 : 크거나 작은 것을 적절히 감추어도 여전히 빠져나가는 것이 있다.

곽상주 : 변화와 한 몸이 될 줄을 알지 못해 감춰두고 변화하지 못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 지극히 깊고 지극히 확고하게 하여 각기 적절하게 할지라도 그것들이 날마다 변화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409. 응제왕

구멍이 뚫려 죽은 혼돈의 이야기는 충격과 카타르시스가 있다.

장자를 읽는 맛이다! 아래는 이 내용의 곽상주 내용이다.

곽상주 : 爲者敗之 무엇인가를 할 경우에는 잘못된다.


p.s.

아마츄어의 까탈 정도지만 책을 보며 느낀 점은 한문 원문의 느낌은 넉넉히 얻을 수 있으나, 고전 해석의 정확한 문맥 연결이 아쉽고 특히 이 책 속 「장자」원문이 행으로 너무 짧게 분리되어 전체적 문맥 이해가 어려운 아쉬움이 남는다.

(※ 원래 「장자 곽상주」 원문 자체가 그러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장자 원문은 원문대로 일관된 논리와 문의를 갖고 있고, 곽상의 주는 주대로 일관된 생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가정, 즉 둘 간의 차이를 두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편집에서「장자」 원문은 문맥 없이 너무 짧은 행으로 분절되고, 그 아래 배치된 곽상의 주는 때론 몹시 길다. 나의 경우 결국 원문 장자는 어디 가고 글밥에서 우월한 곽상만 남는다. 이런 이유로 간혹 헷갈리는 원문 맥락은 긴 분장 체제의 안동림의 「장자」를 참고하며 다시 해당된 곽상의 주를 보기도 했다. 

(※ 이 책 "장자 곽상주"의 체제는 '짧은 행의 장자 원문-원문 한글해석-곽상의 한문주 원문-곽상주 한글해석-(간혹 역자의 해설문)'의 순서인데 장자 원문 한 행씩에 위의 순서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소요유, 제물론, 대종사, ......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고만다.

후쿠나가 미쯔지와 안동림의 장자 분단은 내용에 따라 연이 끊어지고 번호가 붙고 (거의 동일한 번호 분장이다) 후쿠나가, 안동림 장자는 한자 원문 단락이 앞에 있고 한글 번역이 뒤따른다. 

조현숙의 장자 편제는 편 안에 다시 저자의 소제목이 있고 소제목 분단이 무척 길고 긴 한글해석 후에 해당 한자 원문이 뒤따른다. 조현숙의 장자는 한글 번역문이 대세다.) 

장자 원문과 곽상주의 대응이 짤막짤막한 행 체제로 길게 이어지는 책 구성은 다른 책에 없이 독특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겐 이 책이 전국시대 장주의 책 보다는 진나라 곽상의 책으로 읽혔다. 적고나니 너무 당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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