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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평점 :
대학에 입학하고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수업시간표를 내가 만드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을, 한 교실에서 이미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받았던 익숙함을 생각하면, 갑자기 변한 학교 환경이 무척 낯설었다. 더군다나,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어 수업을 들으라니 무인도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처음 1년 동안은 허둥지둥했다. 쉬는 시간 10분 사이에 학교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의 강의실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표를 짜고 말았으니, 강의 시간만 볼 게 아니라 강의실이 어디인지도 확인해야 했던 걸 몰랐다. 어찌 되었든 하나씩 배워가면서,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아가면서 수업시간표 짜는 걸 익숙하게 해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중요했고, 그런 경험은 몸으로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저절로 습득하는 거였다. 당연하게 간다고 생각했던 대학이 이런 생활이어야 한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당황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많아지겠지. 세상이 겁나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알지 못했던 것, 배워야 할 것이 무척 많을 텐데, 그때마다 옆에서 누가 바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데 이상하다. 하루하루 살면서 알아야 할 것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그때마다 내가 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 반드시 배우겠다는 다짐과 목표가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그럭저럭 배워지는 것들. 질문도 하기 전에 나와 있는 답대로 살아보니 어려울 것 없이 괜찮더라는...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배워지는 것들로 조금 더 편안해지고, 알아지는 것이 많아지면서 삶의 불편함이 줄어들 때마다, 매번 궁금하고 알아야만 하는 것의 답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잊는 게 아닐까. 나보다 앞선 사람들이 경험하고 들려주는 답으로 오늘이 살아지는 경우가 늘어나다 보니, 새로운 답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해결 방법이나 답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찾게 되는 거고. 대학에서 처음 수업시간표를 만들면서 우왕좌왕했던 게 생각나는 순간이다. 처음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계속 실수하고 여기저기 물은 다음에는 내가 찾아서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시간표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점차 나아졌다. 수업 시간, 이동 거리,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을 줄여 등교하는 날을 줄이기도 했다. 이미 정해진 것들에 익숙하게 살아왔던 내가 달라진 환경을 사는 방법을 그렇게 배우고 있었다. 그건 그때뿐만이 아니라, 그다음 번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자세의 한 부분이었다. 내가 찾아야만 하는 삶의 방식, 혹은 매번 나를 찾아올 위기나 상황에 대비하는 일,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답을 구하는 것.
처음 책을 접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전공 서적도 겨우 챙기던, 책에 전혀 관심 없던 인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책을 가까이하게 됐다. 어떤 목적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즐기고 싶어서 그렇게 한 권 두 권 읽어가던 게, 이제는 읽지 않아도 옆에 책을 두는 생활을 한다. 습관이다. 어느 순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신간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더라. 그런 나에게 저자는, 질문을 찾으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말한다. 재미로 읽던 책이 점점 답을 구하는 경우를 동반하면서, 여전히 편식하지만, 분야를 넓혀가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저자의 글을 만났다. 그동안은, 책에서 얻는 정보가 나에게 명확한 답을 주기를 원했다. 익숙하게 살아왔듯, 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으면 되는 거였으니 말이다. 살면서 거듭되는, 고민하고 선택하며 결정해야만 하는 일들, 어떤 문제의 시작을 끝맺게 하는 답이 되어줄 이야기를 책이 들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저자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으란다. 답도 찾기 어려운데 질문을 구하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방향을 제시할 것만 같은 저자의 시선은 무엇일까 하고.
그리고 책은 또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인간의 뇌가 몰입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글을 읽지만, 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읽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책. (74페이지)
막상 펼친 이 책은, 저자가 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라고 묻는지 그 질문 자체를 공감하게 한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생각이 많아지면서 질문은 이어지고, 질문이 계속될 때마다 답이 더 다양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매번 답이 명확하게 나오는 건 아니다. 이렇게 고민했다가, 저렇게 생각했다가, 이런 답이 맞을까 또 물음표를 그렸다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더 많은 물음표를 머릿속에 띄우기도 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어떤 질문이 계속되고 이어질 때마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구함으로써 사고는 변해간다. 이게 최선일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는, 이 답이 맞을 것 같지만 오답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지하게 된다. 매번 옳다고 생각했던 게, 이미 그렇게 알고 행해왔던 게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게 한다. 결국은, 오늘을 사는 진지함과 내일을 생각하는 삶의 방향이었다. 어느 날 사람이 싫어져 선택했다는 책. 저자는 그렇게 몇 년 동안 읽어온 책으로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다. 어떻게 보면 서평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가 읽은 책으로 찾은 질문을 들려준다. 소설에서부터 고전, 인문서까지 다양하다. 저자의 '뇌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발휘할 차별성을 기대했는데, 막상 펼쳐본 이 책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 장르의 다양함으로 호기심을 채운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목록이라고 생각하니, 참 여러 방면의 글이 그를 만들었구나 싶기도 하다.
'함께 혼자' 살기를 추천하며 사르트르의 『닫힌 방』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평소 『닫힌 방』이 궁금했던 터라 눈여겨본 부분이기도 한데, 내가 많이 어려워하는 '관계'의 문제를 더 생각하게 하고 있어서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관심이 아닌 상태에서 관계가 얼마나 흐트러지는지 항상 고민했는데,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쇼펜하우어는 ‘함께 혼자’ 살기를 추천한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가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29페이지)'라는 문장에 공감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반복되는 문제와 고민에 결국 나 홀로, 하지만 '함께 혼자'라는 방식의 또 다른 길을 여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다가 또 같은 고민이 이어지는 시간이 반복되겠지. 혼자여서 외로웠다가, 함께여서 부담이었다가 하는 게 인생이라는 듯이.
예니 에르펜베크의 소설 『매일마다 저녁』에서는 "만약에……"라는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고, 가지 않고 경험하지 못한 시간의 질문을 잇는다. 평소에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질문인데, 책으로 그 질문이 잊지도 않고 계속 찾아오는 걸 확인하는 듯했다. 알렉산드로스 황제와 다리우스의 대조적인 모습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은 누구인가 묻는다. 아니, 영웅의 의미부터 다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브리앙은 질문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알렉산드로스 황제의 그늘 아래 잊힌 다리우스.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병사와 친구들을 희생시킨 알렉산드로스 황제. 반대로 포로가 된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제국의 왕관도 포기하려 했던 다리우스 대왕.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잔인한 승자일까? 아니면 가족을 사랑한 패자일까? (149페이지)
얼마 전에 읽은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끌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폭군과 영웅은 한 끗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상황,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폭군은 영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브리앙의 질문에서 또 한 번 고민한다. 나의 삶에서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되어야 하는지 다리우스가 되어야 하는지. 금방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명확하게 하나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이런 질문에 답은 하나일 수 없다는, 답을 회피하는 지연작전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듣고 보면, 승자가 쓰는 역사에서 그 순간의 진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번 같은 부분을 읽으면 같은 고민을 또 할 것 같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그들 중 누구였을까, 오늘과 미래의 나는 누구여야만 할까, 하고.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미래에 새로운 기록이 발견된다면 과거는 재해석될 수 있다. 과거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모두의 영향을 받는다.(180페이지)'는 저자의 말처럼, 이 또한 우리 미래에 다른 해석으로 등장하여 질문의 방향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2017년 3월의 대한민국은 먼 미래에 어떻게 써질까. 온갖 상상과 궁금증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그때는 제발, 많은 것이 바로잡히고 정의가 살아있던 시간으로 기록되었기를 바라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대할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자는 '다르다'는 이유가 저지르는 학살과 폭행과 차별을 경고한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모습인 거다. 때로는 어깨의 짐이 무거워서 변해버리고 싶은지도, 흉측한 벌레의 모습으로 변한 그레고리를 가족으로 인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레고리에게 모든 짐을 지운 가족은 그를 버린다. 그리고 홀가분해 한다. '이게 인간인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했던 마음은 '도대체 가족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이기적인가?' 하는 슬픔이 보태진다. 내가 이 작품으로 처음 느꼈던 건 가족이란 관계의 배신이었다. 그다음에는 그레고리에게 모든 무게를 던진 가족들의 이기심에 분노했다. 그러다 점점 내 마음의 물음표가 변하는 걸 느꼈다. 내가 그들 가족 중의 하나였다면 나는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레고리가 느낀 부담은 다른 가족의 부담으로 시선이 변한다. 저 벌레가 가족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한결같은 애틋함이 이어질 수 있는지, 오래된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여기서도 적용해야 하는지... 한마디로 답할 수 없었다. 답이 와야 할 자리에 질문만 더해갔다. 누군가는 이 작품에서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가슴속 슬픔을 먼저 떠올린다. 어떤 생각을 먼저 하든, 가슴속 고민과 질문은 계속된다는 거다. 만약에, 나라면, 어떻게, 인간이기에 해서는 안 될, 혹은 인간이기에 저렇게 잔인할 수 있나, 왜 우리는 그런 생활을 사는 걸까, 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으라는 저자의 말을 계속 고민하면서 읽게 된다. 책으로 답을 찾으려 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이어질 질문을 떠올리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했다. 기존에 나와 있는 답, 남들이 제시하는 과정, 이미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살아가는 게 편하다. 문제 해결의 무난한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를 살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며, 내일을 살아야 한다. 당장 앞의 문제만 보는 건 우리의 오늘과 미래를 상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답을 구하는 일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답 역시 질문 다음에 나오는 거다.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늘어날 때마다 또 다른 고민이 끼어들고, 그때마다 답을 찾으려하면 할수록 물음표만 늘어났던 걸 기억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저자의 말처럼 그건 질문이었다. 모든 순간과 상황을 잘 대처하기 위해 답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앞서 찾아오는 진리. 질문이 있어야 답을 갈구하기 마련이니까. 아마도 저자는 그 순서를 자주 잊는 우리에게 반복하여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로 보면, 간단한 서평의 나열이 아니라, 이 책은 저자가 '책'을 매개로 경험한 시간과 그 책으로 파생하는 질문을 이어가는데 방점이 있다. '글을 통해 남겨진 이야기는 책이 되고, 그런 글과 책으로 인간이 무한의 공간과 무한의 시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살게 한다'는 것.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그의 사고의 장을 열어준 책으로 새로운 질문을 찾음으로써 더 넓고 큰 통찰의 장을 만나게 된다는 거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를 같이 둔다. 계속되는 질문으로 우리의 삶에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그때마다 변화할 것이다. 질문의 다양함과 크기도, 끌어오는 답도, 우리가 살아갈 시간도.
많은 책이 간단하게 언급된 것에 비하면, 소개된 책은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미루기만 했던 갈증으로 남은 이탈로 칼비노, 묵직한 내용의 궁금증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던 움베르토 에코, 상상력의 극치와 현실적인 판타지를 목격할 것 같은 더글러스 애덤스, 『율리시스』 때문에 더 애가 타는 제임스 조이스, 『변신』 때문에 다른 작품이 더 궁금한 프란츠 카프카, 랭보 시집까지. 읽어보고 싶은 목록만 더 늘었다. 대개 이렇게 책이 새끼를 치는 책들이 남긴 우울함이다. 읽고 싶은 목록만 늘어나고, 안 읽은 게 많아서 더 궁금해지는... 저자가 언급한 많은 책이 궁금하여 찾아보고 싶었던 중에, 아직 국내 미출간 도서가 많았다. 사람 마음 참 이상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그 책이 여기서 언급되니 더 궁금해지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이라고 하니 더 갈증이 나는 건 무슨 심리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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