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레인 (30만 부 기념 Take your marks 에디션)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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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라고 오랜만에 조카가 할머니를 보러 왔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번 통화할 때마다 바빠서 얼굴 본 지가 너무 오래여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방학이라기에 시간 여유가 좀 있는 줄 알았더니, 방학이 열흘이란다. 요즘 학교는 방학이 원래 이렇게 짧아? 학교는 수업일수만 채우면 된다는 나만의 생각으로 아마 겨울방학이 좀 길겠구나 추측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무슨 방학이 이렇게 짧은 걸까? 괜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 건넸다. 요즘에는 학생들 방학해도 숙제가 없다는데 맞는 거냐고. 원래 숙제가 없긴 한데, 이번에는 독후감 한편만 제출하면 된다고 하더라. 그렇게 어린 조카의 숙제를 같이하려는 목적으로 만난 책이긴 한데, 다 읽고 보니, 솔직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음이 급하기만 한 지금의 나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열세 살의 강나루는 수영 꿈나무다. 이미 전국 대회에서 메달도 많이 땄고, 한강초 수영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어느 순간 인생 진로가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루의 미래는 수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0.1초의 기록 단축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건 라이벌 초희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학교 에이스인 초희가 항상 1등을 하면서부터, 나루는 4, 5번 레인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으니까. 자기보다 팔이 긴 초희가 수영에서 유리한 조건인 건 맞는데, 그게 1등을 만드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그걸 알기에 나루는 더 심란하다. 속으로는 자기 팔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멈추지 않고, 급기야 초희의 행운의 부적인 반짝이는 수영복에 뭔가 있을 거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루는 왜 하필 수영이었을까. 수영을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잘하게 됐고, 그 결과물은 1등이라는 순위, 눈으로 보이는 메달로 증명되곤 했다. 자연스럽게 정해진 자리처럼 여겨지던 그 1등이, 어느 순간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실패를 맛보게 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부모의 마음으로 나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어렵고 후회했던 건,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심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거였다. 식상하고 흔한 그 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살면서 가슴에 깊이 박혀 있다. 연습하고 도전하고 다시 뒤에서 시작하고, 우리 사는 동안 그렇게 반복되는 게 인생의 진리 같았는데, 처음에는 그걸 몰랐다. 아마도 나루의 지금은 그런 마음, 실패와 좌절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일부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고 있는 듯하다. 자기 팔이 조금만 길었다면, 초희의 부적 같은 수영복이 없었다면, 지금 1등을 놓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는 때라는 걸, 안다. 자라는 중이니까.


그렇게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것처럼, 나루도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토록 치열하게 수영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같이 수영했던 언니가 수영에서 다이빙으로 바꾼 것을 보고, 잘 안되는 수영을 피하려고 다이빙을 한 게 아니라, 수영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이빙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뭉클했다. 1등을 못 해서 실패가 가득한 마음속에, 지금 이 상황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을까? 그랬기를 바란다. 열세 살이라는 나이는, 미래의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수영이라는 인생 진로가 정해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영을 목표로 체육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도, 자기 실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 좌절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방향의 인생길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이른 나이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더 응원해주고 싶다. 물살을 가르는 선수에게 들리지 않아도 관중석에 앉아서 목이 터지라고 응원하던 친구들처럼,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후회했던 어른의 마음으로.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내 주변의 어른들은 왜 앞을 보는 것만 알려주었을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더 일찍 과정이나 도전을 응원해주는 어른이 되지 못했을까. 사실 이런 후회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한 번씩 떠올리면서 반성하는 마음이 되는 건, 그 시절에 다양한 도전은커녕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시간이 후회되어서다. 별로 실패해본 적이 없이 자라왔다. 그 말은 실패할만한 도전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대학까지 들어갔다. 학교만 다니면 되는 줄 알고 살다가, 처음 실패를 맛본 건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면서부터다. 연습이 부족하면 다시 공부하고 시험 보면 되는 건데, 그게 뭐라고 한번 떨어지고 나니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데 말이다. 그 후로도 실패는 계속됐다. 운전면허 시험도 떨어지고, 취직시험도 막 떨어지고. 힘들긴 했지만,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으면서도 막상 현실에 적용하려니 많은 것을 세상의 잣대로 보게 되더라. 진짜 어른이 아니었던 거지.


다행히도, 나의 남동생은 자기 아이들에게 인서울 대학을 강요하지도 않고, 학원 뺑뺑이를 돌리지도 않는다.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대학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꼭 대학을 가는 게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 이후로 가야 하는 길을 아이들 몫이니, 자기들이 알아서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말이다. 이 책을 같이 읽은 조카가 곧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 아이도 나루가 찾은 것처럼, 인생의 여러 방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그 아이의 친구들이나 주변은 여전히 빡센 학습환경이고, 무조건 1등이 인생을 결정하는 분위기라 걱정되긴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가 1등 인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서 조금 안심이 된다. 조카가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찾고 중심 잃지 않고 갔으면 싶은 고모의 마음으로, 공부든 수영이든 그 무엇이든, 자기가 열고 싶은 문을 여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문을 열고 직접 부딪히면서 겪을 세상을, 아이들을 응원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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