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여자
알레샤 디케마 지음, 김현수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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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하는 로라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엄마와 동생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기 편이 되어줄 수도 없다.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바라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긴 올까? 카페에서 일하는 게 유일한 생계 수단인 그녀에게, 어느 날 인생 전환을 맞을 기회가 온다.


설마 그게 기회일까 싶지만, 손님으로 온 테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카페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얘기할 뿐, 그 외의 말을 걸어온 적이 없다. 그런데 테오는 달랐다. 그녀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누군가와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매일 같은 시간, 테오는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와서 늘 같은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 카페 문을 나서면서 윙크도 던진다. 어라. 지금 테오가 로라에게 작업 거는 거?


이제 그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테오를 찾아보고, 그의 집안, 배경,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고 놀란다. 넘사벽 신분의 차이,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인 그의 아내가 나타난다. 뭐야, 아내 있는 남자가 작업을 걸어온 거야? 윙크는 왜 날려? 이런 의문도 잠시, 고를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괜찮아. 그에게 아내가 있지만, 나는 그를 유혹하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야.’ 로라는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로라는 이름을 바꾸고 SNS에서 그의 아내의 일상을 훔쳐보며 접근하며 친구가 된다. 점점 그들의 세상에 스며든 로라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거짓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이제 로라의 가짜 인생은 진짜가 되어야만 했고, 유일한 목표를 이루는 것밖에 없다. 테오. 그만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길이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로라의 자신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외모가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이런 자신감을 뿜어대는 여성을 볼 때 궁금하긴 했다. 누구라도 눈길을 한번 주지 않고 못 견딜 만큼 평소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살았나? 아니면 로라처럼 기를 쓰고 노력하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이게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각오로 덤비게 되는 건가. 뭐든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이런 방법이 도덕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해도 기어코 해야만 한다고 작정했다면, 해야지 뭐. 어쨌든, 로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테오에게 접근하고, 테오는 그의 아내에게 모른 척하면서 로라와의 관계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테오의 아내, 아스트리드는 이들의 관계를 알까, 모를까?


하도 책을 안 읽었더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좀 읽어야겠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끝이 어찌나 무거운지, 진짜 한 페이지 읽는 일조차 어렵더라. 좀 가벼운 이야기를 만나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비밀을 갖고 있다기에, 로라의 허무맹랑한(?) 자신감과 계획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읽어보긴 했지만. 가독성은 좋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아내를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처럼 구는 테오를 볼 때면 가끔 어이가 없으면서, 테오와 로라의 긴장되는 장면에서는 <탐정들의 영업비밀> 보는 기분으로, 상류사회로 편입하려고 발버둥 치는 로라의 욕망을 걱정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의심스러워서 언제쯤 그 비밀이 드러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진실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다. 남의 비밀을 그렇게도 궁금하고 파헤쳐서 떠벌리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결말이 좀 의외이긴 했다. 어떤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며 가문을 완성하고, 각자의 이익에 맞게 살아가는 게 인간의 민낯이겠지만, 이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끝이 보이기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죄책감 없이 뻔뻔했던 테오도, 남편을 너무 믿었던 아스트리드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나의 행복으로 만들고 싶었던 로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때 벌 받을 거라는 걸 알았으려나. 무엇보다 위험의 시작은 남의 것을 탐냈던 로라였으니, 내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말고, 착하게 살자. 괜히 욕심부리다가 위험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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