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호더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케이시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숲속의 오두막에 산다. 폭풍우가 예보되었지만, 그녀가 사는 오두막은 지붕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허술한 상태다. 집주인 루디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루디는 너무 느긋하다. 별일 없을 거라고, 폭풍우가 지나가면 고쳐주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근처 다른 오두막에 사는 리는 그녀에게 이 폭풍우가 심상치 않다고 걱정하면서 자기 집에 와 있으라고 하지만, 그녀는 모든 호의를 거절하고 오늘 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던 중 창고의 불빛을 발견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불빛이라니. 누군가 침입한 게 분명하다.


과거.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엘라. 엘라의 엄마는 마트에서 일하고, 퇴근길에는 늘 어디에 사용할지 계획도 없는 중고품을 사서 온다. 정부 지원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이 모녀의 집에는 편하게 쉴 공간이 없다. 엘라의 엄마는 집 안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는 호더(Hoarder)이다. 심지어 상한 음식마저, 구더기가 그 음식을 다 파먹고 있는 상태인데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엘라는 버티듯 살아간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면 바로 이 공간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다.


케이시와 엘라, 현재와 과거가 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케이시는 외딴 오두막에서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폭풍우의 위협에 긴장된 상태인데, 설상가상 누군가 침입했으니 더 숨이 막힌다. 누굴까. 지붕도 안 고쳐주면서 끈적이는 눈빛만 보내는 집주인 루디일까. 갑자기 이웃처럼 나타나 정체가 의심스러운 근처 오두막에 사는 리일까. 모른 척 잠이 들어도 상관없겠지만, 이미 빈 창고의 불빛을 봤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막상 창고에서 대면한 이는 어린 소녀였다. 손에는 칼을 들고, 입은 옷에는 피범벅이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일부러 오지 않으면 누구도 방문하지 않을 곳인데 말이다.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잠들게 한 후 아이의 가방을 살펴본 케이시는 깜짝 놀란다. 아이는 우연히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케이시의 오두막을 표시한 지도까지 있었던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케이시는 혼란스럽다. 누굴까. . 아이라고 얕볼 수 없을 정도로 야무지게 공격적인 이 아이와 오늘 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과거의 엘라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10대 소녀의 암울한 성장기였다.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집안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고장 난 세탁기는 방치된 채로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밀려있는 빨래에 입을 옷이 없는 엘라는 쌓인 빨래 더미에서 그나마 나은 옷을 찾아 입고 학교에 간다. 온갖 서류와 종이 뭉치, 너무 무거워서 옮기지도 못할 어항, 냉장고에 터질 듯이 쌓인 음식들.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이미 상해버린 음식들을 그렇게 쌓아두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의 점심을 훔쳐 먹어 교장실에 들락거리는 것도 빈번해지고, 이미 문제아로 찍혀버렸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것도 일상이고, 집에 들어가는 것도 지옥이다. 엘라가 마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칼을 든 소녀가 오두막에 침입했을 때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린 소녀가 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게 범상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뭔가 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예상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 소녀와 케이시 사이에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 튀어나올 거로 여겼다. 물론 이 부분은 소설의 끝에 다다르면 드러나지만, 생각보다 거칠거나 마냥 위험하기만 한 이야기가 남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의 과거 엘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이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엘라는 몇 살까지 살고 있었을지,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엘라가 무력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걱정됐다.


계속 화가 났다. ,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운다고 큰소리치지 마라.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치지 마라. 부모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엘라와 같은 환경에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다. 실제로 육체적인 폭력에 노출된 아이도 많고, 정서적 학대로 아이를 지배하려는 어른도 많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최선의, 혹은 순간적인 방법으로 이 위기를 넘어가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위기는 발생하고, 아이들은 다른 양상의 지옥에 빠져든다. 결국, 피해자인 아이들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까지 한다. 엘라를 지켜주려고 친구 앤턴이 저지른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엘라가 그 집에서 탈출하려고 선택한 일은 새로운 인생을 주었지만, 케이시의 오두막에 숨어든 아이가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게 현실이다. 법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소설에 빠져들고 모범택시 시리즈를 기다린다.


작가가 뇌 손상 전문의라고 하던데, 그 어렵고 바쁜 일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작하는 듯하다. 어쨌든, 한 권 읽고 좀 잊을 만하면 다시 새 책이 나오니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 책을 읽고 나니 너무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니까 지루하기도 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는 게 한번은 만나고 가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동안 주인공들이 마냥 센 언니였다면, 이번 주인공은 세 보이지만 따뜻한 언니정도라고 해야 할까.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관심 두어야 할 부분을 고민하게 하는 건 좋았다. 350여 페이지 수에 비하면 책값은 좀 비싼가 싶고, 가독성은 여전하나 재미로만 보자면 좀 아쉬운 것도 있어서 만족도는 좀 떨어진다.



#프리다맥파든 #차일드호더 #소설 #추리소설 ##책추천 #밝은세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