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쪽이든 완벽하지는 않다. 미루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서두른다고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91페이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변화가 필요하고 다른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선뜻 지금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들. 너무 익숙하고, 때로는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 한다고 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듯한 불안까지 더해져 마음은 혼란스럽다. 뭔가 더 이뤄내야 하는데 환상 같은 현실 속에서 머물러 있기만 하는 때. 남들은 저기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자리가 맞는 걸까? 끝도 없이 고민과 질문이 이어지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로즈에게 지금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2017, 서른다섯 살의 로즈. 그녀 옆에는 9년을 함께한 남자 조가 있다. 그가 몇 년 동안 준비한 부리토스 사업은 녹슬어가는 트럭처럼 부식되고 정체되어 있다. 정말 그는 부리토스 사업을 하긴 할는지 알 수도 없다. 로즈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조의 옆에서 그의 꿈을 지지해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다르다. 그가 빨리 현실의 무능력에서 벗어나기를, 되지도 않는 꿈을 찾는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현실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로즈라고 다를까. 카페에서 일하는 그녀에게도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현실이 없다. 분명 현재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조의 꿈을 계속 지지해주면서 하루를 버터야 하는지, 그녀의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가 어렸을 적에 사라진 엄마, 그동안 아버지는 한 번도 엄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는데... 엄마가 가진 책 두 권의 작가인 콘스턴스 홀든과 아는 사이라고, 로즈는 콘스턴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어한다.


1980년의 엘리스.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델 일을 하는 그녀는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고 인연이 시작된다.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엘리스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 콘스턴스 홀든. 엘리스와 코니(콘스턴스 홀든)는 연인이 된다. 삼십 대의 유명한 작가와 스무 살의 어린 연인. 아직 자기 일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던 엘리스와 작가이면서 이제 더 유명해지려는 코니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 연인의 사랑이 무사히 진행될까 궁금해지면서 계속 읽던 무렵...


소설은 2017년의 로즈와 1980년의 엘리스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읽으면서 계속 이상한 느낌에 속이 답답해지곤 했다. 거의 40년의 긴 시간을 두고 흐르는 두 여자의 인생이 너무 비슷하게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던 로즈의 엄마 찾기가 어떻게 될지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현실의 상황이 그 사랑을 어디로 끌고 갈지 보여서 위태로웠다고 말한다면 내가 오지랖인 걸까. 내 옆의 연인이 나의 현재와 미래에 계속 함께할 사람이라는 확신도 없이, 계속 옆에 머물러도 괜찮을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괴로움이 컸을 테다. 연인이 있어도 내가 갖추어야 할 나 자신의 모습 말이다. 누구의 아내, 애인, 엄마가 아니라, ‘누구라는 존재 자체가 되어야 하는 일. 로즈와 엘리스가 그렇게 찾고자 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의지해야 했을까. 아빠는 엄마의 실종 이후를 알지 못한다. 로즈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엄마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코니라는 걸 알고 로즈는 코니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던 코니에게 가는 길은 약간의 거짓이 필요했다. 로즈는 로라가 되어 코니의 보조가 되고, 코니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로라에게 의지한다. 서로의 내면을 완벽하게 내보이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그 마음의 바닥을 꺼내 보이려는 두 사람 사이가 무사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로즈와 같은 모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간절하게 바라던 것을 앞에 두고 하나의 선택만이 있었다면, 그 선택을 향해 가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엄마의 흔적을 알려줄 유일한 사람에게, 로즈는 그렇게 다가갔다.


교차로 진행되는 두 편의 이야기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고백들. 코니는 어느 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 후회를 감당하면서 살아왔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선택을 했던 그녀는 그 이후의 삶을 책임졌다.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받아들였다. 언제나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는 개운하지 못한 찌꺼기들이 거슬렸지만, 그것마저도 자기 몫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와 감정을 꺼낼 일은 없을 거로 여겼겠지. 언젠가 로즈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엄마의 흔적을 찾겠다는 로즈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을 두고 코니에게 접근했지만, 내내 불안했다. 코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가 궁금했다. 어떤 세월을 걸어왔을까. 성공과 명예를 지키면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이룬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가 숨겨둔 이야기 뒤에 엄마는 어디쯤 있을까.


여러 사람의 관계와 사랑이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의 흔적은 희미하다. 사랑했기 때문에 만났고 관계를 이어왔으며, 서로의 인생에 마음을 담글 수 있는 사이가 되었건만. 사랑이라고 믿으며 유지했던 관계의 정면을 어느 날 마주하게 된 로즈와 엘리스는 알게 된다. 그 무엇보다 자기를 찾아내야 인생의 나머지가 채워지리라는 것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내 삶을 뒤로한 채로 상대방의 삶을 먼저 보게 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과정이 절벽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왜 어떤 일은 아주 큰 상심 이후에, 시간과 감정의 피폐를 견딘 후에 알게 되는 것일까. 꼭 그렇게 겪어야만 알아지는 것이 있다고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완성해가는 그 걸음이 무거웠다. 부딪히고 깨지고, 선택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반복된 경험으로 내 안에 쌓이게 되는 것들로.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나아가려고. 조금 편하게 산책하듯 걸어갈 수도 있는 길이지만, 굳이 살펴보고 단단하게 힘주어 걸어가야 하는 이유. 나를 만들고, 나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소설이 로즈를 위해 써진 줄 알았다. 2018년의 현재, 서른다섯을 넘어가는 그녀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을 때 보여주기 위한 답처럼 보였다. 오래된 연인과 결혼이 아닌 이별을 선택할 때 그녀에게 찾아올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가 지금 똑같이 겪을지도 모를 로즈와 같은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위로가 아니었다. 일흔이 넘는 세월을 감당해온 코니가 로즈에게 하는 말 중에 반복되었던 그 말, 선택에는 슬픔이 따른다고. 어떤 선택을 해도 슬플 거라고 말했던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걸 알아서일까. 코니는 당당하게 말하고 본인 위주의 삶을 지내왔지만, 분명 슬펐을 것이다. 엘리스를 사랑했을 때, 엘리스가 떠났을 때, 엘리스에게 모진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후회했을 때, 모두. 그녀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 선택을 후회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도 알았겠지. 다른 선택을 했어도 후회했을 거라고, 슬펐을 거라고. 코니가 그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감당했던 것처럼, 우리가 배울 인생의 자세처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내가 불쑥 말했다.

내 집에 온 거 말이에요?”

제 인생요. 전 곧 서른다섯 살이거든요.” 이름 모를 슬픔이 목구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될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데는 참 오래 걸려요, 로라. 삼십오 년보다 더 오래.” (275페이지)


로즈의 엄마, 엘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라도 독자는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엘리스를 찾는 여정에 로즈와 같이 걷고 있지만, 정작 엘리스를 찾아내서 마주하기 위한 걸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겪는 모든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삶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보여준다.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오직 내가 되어 살아가기 위한 인생이어야 한다고.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또 수많은 선택을 하겠지만, 그 선택 앞에서 슬프고 후회하겠지만,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마냥 따뜻하지 않아서 좋았던 이야기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마음을 읽어준 소설이다. 제시 버튼의 전작들을 옆에 두고 다 읽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 책으로 먼저 달래본다. 사랑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졌다면, 그 상처와 후회로 난도질당한 마음이 바스러졌다면, 이제 그 마음을 치유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엘리스의 절망과 코니의 후회와 로즈의 선택으로 보여줬다. 누가 됐든 무엇이 됐든, 온전한 내가 되었을 때 보이는 것들로 인생은 채워진다. 삶의 의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