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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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맞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괜찮다고, 잊으면 그만이라고, 곧 잊힐 거라는 믿음을 갖기도 하지만, 사실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잊힌 것 같다가도 무심결에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과 감정일 테다. 그러니 우리 마음은 안정되지도 않고, 울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방법을 찾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습에 절망하며 법을 의지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은 우리가 바라는 공정과 정의를, 법칙에 따라 판결했음에도 법 감정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법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처단하고 싶은 바람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사회 정의가 실현되지 않음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집행관이 된다. 현실의 솜방망이 처벌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며 그들만의 심판을 계획한다.


저 세상에 보낼 인간쓰레기들의 명단은 차고 넘쳤다. (94페이지)

수천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142페이지)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 부패 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 사건을 폭로한 퇴역 군인……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다. (269페이지)


집행관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 시작을 알리는 어느 초여름이었다. 역사학자 최주호에게 고등학교 동창 허동식이 찾아온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본 적 없는 동창생의 방문이 의아했지만, 최주호는 별 의심 없이 허동식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며칠 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최주호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렸음을 인지한다. 일본으로 도망갔던 노령의 고문 경찰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살해되었다는 뉴스에, 그 죽음의 모습이 처참했던 것에 온 국민이 놀란다. 동시에 국민은 그 죽음에 정의를 외친다. 나라가, 법이 처단하지 못했던 존재를 그들이 처단하며 국민의 울분을 감싸 안은 것이니까. 현장에 남은 증거는 없었다. 다만 특이한 방식으로 죽은 이에게 걸맞은 살해 도구가 있었을 뿐이다. 죽은 이가 살아생전에 했던 그대로, 희생자들의 원한이라도 풀어주듯이, 일제강점기의 고문 도구를 사용해서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죽은 이의 등에 새겨진 의문의 숫자. 이쯤 되면 이 죽음은 온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안다. 나라가 해주지 못한 복수를 그들이 해주었으며, 죽은 이는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고, 국민은 적폐 척결이라며 환호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최주호는 놀랄 수밖에. 그들이 최주호의 칼럼과 저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을 죽였다. 최주호가 일제강점기 고문 방식과 친일파 척결을 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며 쓴 글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찾아온 허동식의 부탁한 자료는 그대로 누군가의 죽음에 쓰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거대한 사건에 연루된 최주호는 혼란스럽다. 한편 검찰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는 이 사건에 목숨을 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을 예감한다.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진 숫자는 살인자들의 메시지였으며, 단순한 숫자에 머물지 않음을 알게 된다. 법이, 나라가 처단하지 못하고 희생자들이 무혐의나 무죄로 벗어난 법률 조항이었다.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니 살인자들은 국민의 분노를 대신하여,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세상에 외치는 목소리로 한 몸이 된다.


그들은 형벌을 집행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았지. 힘이 세든 나이가 많든 부자든 간에 똑같이 집행했던 거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법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389페이지)


안다. 아무리 국민의 법 감정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국민이 환호하는 현상을 무시할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속이 들끓었으면 이 살인을 환호하며 박수를 쳤겠는가. 합당하게 법의 처벌을 받지도 않고 누구 보다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부패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이 많았으면 그러겠는가 말이다. 살인자들은 자신을 집행자라 부르며 그들의 임무(?)를 계속한다.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사명을 가진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하므로. 국민을 기만한 죄를 지은 자들을 응징한다. 그들이 지은 죄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에 딱 맞는 집행의식을 치른다. 공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정의를 찾으려고 애쓴다.


들여다보면 집행관들 역시 살인함으로써 법을 어기며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지만, 이들의 죄를 있는 그대로 묻고 싶지 않아지는 게 인간의 감정인 듯하다. 현실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법의 심판이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에 묻히면서 쌓여가는 분노와 울분은 어디로든 터져나가지 못한다. 그저 말로 분노하고, 뉴스를 보면서 한숨이 커지는 일이기에. 그래서일까. 열 명의 집행관이 우리 마음을 대신해주듯 사회악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아무나 골라잡지도 않는다. 탄탄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집행의 대상자를 추린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법이 그들을 어떻게 풀어주었는지 정리하면서 후보군에 올린다. 연쇄살인을 기획하면서 검찰의 추적에 웅크리기도 하지만, 집행관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다. 듣다 보면 소설 속 이야기에 멈추지 않을 일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느끼고 겪는 부조리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을 다시 보면서, 상상력과 가슴을 쪼이는 전율을 느끼며 읽게 되는 소설이지만, 묘한 통쾌함에 집행관들의 계속된 심판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권력의 면죄부를 뺏는 건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검찰에게 집행관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손톱만큼의 공감도 없었을까? 수사를 지휘하는 우경준을 제외하고 다른 수사관들은 이 사건을 추적하는 게 임무이면서도 이 사건을 사건으로만 볼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의 혼란을 조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야 하지만, 집행관들의 살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동기가 있기도 하다는, 아이러니한 공감을 찾는다. 국민을 대신한 복수이면서,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심판의 모습이 바로 집행관들의 살인 아니었을까. 물론 집행관들 개개인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큰 의미 없이 그들만의 이유로 집행관으로 참여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들의 살인이 그냥 살인으로만 머물지 않을 거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정이 아닐 것 같다.


소설은 집행관들의 청소 작업과 검찰 수사대의 임무를 지켜보는 재미도 주었지만, 이 집행관들의 실체를 찾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들이 왜,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보면서도, 혹시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더 있을까 하면서 찾는 긴장감도 있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소설로 즐기면서도 소설 속 주인공들과 사건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도 놓칠 수 없다. 씁쓸하면서도, 소설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짜릿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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