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274페이지)


글쎄, 버티는 삶이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다. 근데 정의하기 어려운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하면 참 모순이기도 하겠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틈틈이 찾아오는 절망의 순간을, 버티지 않으면 어떻게 건너갈 수 있겠는가. 절망의 근원을 찾아내 원망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뿐일까? 하지만 그렇게 원망한다고 해서 또 무엇이 달라질까. 갈팡질팡, 힘들다가 괜찮다가 하는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날카로워지는 건 싫고. 그러니까. 신경질이나 짜증, 찡그린 얼굴이 내 모습이 되어가는 게 싫은데, 그게 쉽게 변할 수도 없는 방식 같아서 화가 나는 일 반복된다. 지금 이 상황을 대하는 자세가 변하면 될 것 같은데, 그건 또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가 쓴 모든 글을 읽은 건 아니다. 책으로 출간한 몇 권, 그 안에서도 몇 문장을 읽으며 방송에서 보는 그의 이미지와 말투가 그대로 옮겨간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 책을 보고 드는 생각.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또 어려운데, 글의 분위기가 변한 느낌이다. 그 변화가 싫거나 이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삶의 어떤 순간을 건너온 그가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진 게 보여서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가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 게 더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항상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절대 그의 생각을 바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그의 모든 것이고, 그걸 부정하려면 차라리 부러져버리겠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던 시간. 이미 다 알겠지만, 그는 생사를 오가는 큰 시련을 겪었다. 힘들다는 항암 치료까지 마치고 건강해졌다. 어느 날 방송에서 다시 본 그는 변해있었다. 그와 결벽증은 너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먼지 한 톨 용서할 수 없는 그의 자세가 너무 익숙했는데, 그는 이제 조금 흐트러진 상태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말투도 그대로고 문장도 그대로인데, 어딘지 모르게 그가 변했다는 건 그냥 느껴진다.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마치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시간을 걷는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꺼낸다. 차분하게 말한다. 간절하고 친근하게.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는 태양계 경계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절대적인 고독 앞에 혼자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비할 수 없이 가치 있다는 걸 깨닫고 지구로 귀환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간단한 걸 우주 끝까지 가서야 알 수 있냐며 조소한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무언가를 깨닫는 데는 늘 큰 비용이 든다. 무려 암에 걸리고서야 그걸 알았냐고. 그러게 말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109페이지)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웃음이 나고 용기가 되는 말인 줄 처음 알았다. 입버릇처럼 죽겠다고 말하고, 미칠 것 같다고 머리카락 쥐어뜯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의 말처럼 망했다는 말도 저절로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망하려면 아직 멀었단다. 그래, 아직 망하지도 않았고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었다. 첫 장은 그의 투병 경험을 말하고 이후 달라진 그의 시선을 들려준다. 나는 그가 언제나 당당하게 말하고 아무런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항상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방송에서 그런 이미지로 보일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심지어 그가 잘못했다고 해도 말로 싸우면 그를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이미지는 그가 살아온 방식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아온 시간을 뒤로하고 혼자였던 시간을 후회한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삶의 방식을 이제는 다르게 보려고 애쓴다. 오랫동안 혼자 힘으로 살아왔기에 타인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잊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안쓰러움을 느껴도 될지 모르겠다. 그 시간과 그 방식을 통과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오늘을 사는 또 다른 이에게 말한다. 절망에 빠지거나 도움을 기대할 곳 없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에게 고민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쓰는 그의 마음이 문장에서 그대로 읽힌다. 그만의 방식으로, 달라진 그의 시선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거다. 사람들의 고민과 절망을 들을 때마다 그가 찾은 해법을 들려준다. 불행을 인정하는 것. 삶에 언제나 공생하는 불행이란 녀석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 절망과 고통을 무너뜨리는 것일 테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 불행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에서 우리가 버티고 이기는 방법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불행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희망도 있다고, 우리 삶이 언젠가 빛을 낼 그 순간을 기다리고 기원하며 살아가는 날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 54페이지)


그래서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 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 는 슬픈 것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60페이지)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은 그동안 그가 그동안 만나왔던 영화나 책, 시사적인 뉴스들을 가져와 삶의 바닥을 치는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의미를 전하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인간의 삶을 강조한다.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들을 언급하면서, 불행을 탓하는 일이 얼마나 인생을 안타깝게 만들고야 마는지 보여준다. 닉슨 대통령의 몰락,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자기를 몰락시킨 연인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것처럼 불행과 피해의식은 우리 삶을 또 다른 불행으로 밀어 넣는다. 비단 이렇게 영화 주인공이나 과거의 인물들에 빗대지 않아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겪는 불행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 불행의 원인을 찾아내 원망도 하고 싶은 게 인간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했을 때 우리에게 남는 건 또 다른 후회뿐이라는 것을. 그의 말처럼, 우리가 불행한 일들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 반복되는 절망과 괴로움,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게 불행을 원망하는 거로 생각하기 쉽다. 내 불행의 화살이 향할 곳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 불행의 화살을 쏘기만 하면서 살 텐가. 불행의 생각에서 멀어지는 것만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나를 바라보는 객관성을 키우는 게 불행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그 바닥에서 올라와 역작을 남긴 니체의 이야기를 하면서, 불행을 직시하고 객관화하면 이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조언한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자기 객관화로 불행을 다스린다면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과거의 불행을 발판 삼아 현재의 건강한 삶이 유지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다 알 수도 없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가는 인생을 만들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들린다. 불행이나 피해의식 같은 것이 우리 삶을 짓누르는 무게 따위 느끼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각자의 불행은 너무 다양하고, 그 불행을 해결할 방법은 본인만 안다. 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버티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항암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살고 싶다는 농담, 217페이지)


오늘도 버티는 삶인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그의 위로가 담백하다. 섣부른 오지랖이나 조언이 아니라, 그 불행을 건너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로 들린다. 살기로 한 이들이 충분히 닮아도 좋을 삶의 자세가 그의 문장 안에 담겨 있다. 그의 문장에 담긴 따뜻함이 더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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