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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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과거를 뒤로하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밤.

실패보다는 희망을 말하는 밤.

누군가에게는 과오를 덮어줄 축복처럼,

위로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밤. (5페이지)


짧은 단편 속의 이들에게 공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을 일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처받고 아픈 시간을 보내는 상실의 감각을 드러낸다. 언제나 그 시간의 끝은 있고, 오지 말라고 밀어내고 붙잡아도 기어코 우리 앞에 다가오고야 마는 순간은 또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다. 그러다가도 문득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순간을 불러온다. 알게 모르게 잊고, 잃고 살아왔던 것들. 현실에 치여서, 겁나고 무서워서 포기하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한다. 무심하고 무뎌지려 애쓰던 감각들이 되살아날 때마다 조금씩 두근거리는 가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보다 하고 걸어왔는데, 어느 날 문득 멈췄을 때 비치는 지나온 시간이 인생의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건 아닐까 기대가 생기기도 하는 나날.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더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대학교 행정조교로 일하는 여자는 오늘의 삶이 불안하다. 언제나 꾸었던 꿈은 항상 궤도수정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애인과의 관계도 위태롭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그녀의 시간이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선뜻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는 일상.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될까 궁금하면서, 걱정과 근심이 앞서는 오늘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옳은 걸까? 「언제나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박 선생의 한 마디에 기운을 얻는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행한 시간이 아닌 오늘 여기에 집중하며, 그래도 다른 의미가 있는 인생을 걸어가는 희망을 품는다. 그래, 괜찮겠지,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 우리가 오늘의 불안을 안고 살며 언제나 외우는 주문을 여기서도 본다. 어쩜 이렇게 비슷한 인생들인지, 안쓰러우면서 안도한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위로받는 기분이다.


칼칼한 바람이 부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상준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생각할 조금의 여유마저 우리에게서 박탈하는 것은 대체 무얼까 생각했다. 우리로 하여금 끝내 자신의 고통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그것은. (중략) 이 세계는 사람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들며 타인에게 잔인해지도록 종용하지만, 이런 세계에 살더라도 그가 아내에게 주고 싶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니까. (101~102,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공항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동안 공항에 가본 적은 없다. 「완벽한 휴가」의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항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을 자주 갈 거로 여겨지지만, 그들에게 공항은 언제나 계획에만 있는 장소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던 탓일까. 그런 이들이 어느 날 공항으로 향한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함이 아닌, 말 그대로 공항에 다녀오기 위한 목적이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폭염이 기승이었고 전기세를 아끼고자 에어컨도 쉽게 틀지 못한 나날. 그들은 공항에서 휴일을 지낸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각자의 일을 하고, 공항 안에서 음식을 먹는다. 시원한 곳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일이 괜찮은 것 같으면서 여자는 어릴 적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기억하지 못하고 지냈던 어떤 날 속의 아빠는 그리움이자 애틋함이다. 공항에서의 휴가는 완벽한 날이었다. 비슷한 느낌으로 「어느 멋진 날」은 더운 날의 해변에서 마주친 한 남자의 시선이었다. 여자는 기혼이었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책장을 넘기던 그때 무심코 마주친 시선. 남자는 여자의 치마 밖으로 나온 발을 보고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여자는 묻지 않았다. 대신, 남자와 가벼운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이다. 남자는 여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했고, 그때부터 여자는 자기 발에 신경이 쓰인다. 은근히 설레면서 자기 발을 바라본다. 언제였던가, 자기에게 아름다움을 말해주거나 그런 시선을 보낸 사람이 있었던 게. 낯선 곳에서의 낭만 같은 느낌으로 여자는 그날을 기억한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혼자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수줍은 추억으로 말이다.


「참담한 빛」의 어린 부부는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침몰하는 배의 뉴스를 듣는다. 처음 아이를 갖고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용기는 배의 침몰 소식에 불안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희망이 기적이라는, 희망이 불처럼 번진다는 말에 또 한 번 용기를 낸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 세상 살아가는 걸음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다짐 같은 게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자라며,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가는지 그 시작을 보는 듯하다. 마지막 단편이었던 「아무 일도 없던 밤」처럼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을 바라보는 요양사의 시선과 대조적이다. 곧 운명할 것 같은 노인의 상태, 멀리 있는 딸들이 엄마의 마지막을 보고자 달려오고 있지만, 폭설이라는 기상이변으로 시간이 지체된다. 무심하게 환자들을 대하며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온 요양사는 고요하게 누워 딸을 기다리는 듯한 노인을 보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그렇게 갑자기 죽을 줄 몰랐다고. 남편이 돈을 벌겠다며 떠나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또 죄책감을 느꼈다고. 애틋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부부의 모양새를 하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조금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떠난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쌓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르지. 여자는 다시 만나게 될 남편과의 감정에 뭔가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조우할 남편과의 모습에 괜찮은 가족의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혹여 사지로 가는 남편을 붙잡지 않았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 걸까 싶기도 하고. 우리 앞에 닥친 불행에 스스로 갖는 어떤 감정이 떠오른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걸까? 언제 어느 때고 우리 삶에 끼어들 기회를 엿보는 불행이란 놈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불안과 자책과 싸워가는 게 우리 아닐까.


그녀는 허기가 져 병실에 비치된 냉장고를 뒤지다가 누군가 사놓은 딸기를 찾았다. 향긋했던 딸기는 뭉개지고 짓물러 있었다.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딸기의 뭉개진 부분들을 과도로 도려내고, 얼마 남지 않은 과육을 입속에 허겁지겁 집어넣었다. 딸기가 달았다. 히터를 세게 튼 병원은 창밖의 세계와 완벽히 단절된 듯이 비현실적이었다.

"오늘 밤은 죽지 말아요."

그녀가 노인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226~227페이지, 아무 일도 없는 밤)


엄마와 딸의 여행을 그린 「비포 선라이즈」는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여행의 의도를 보는 듯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딸은 엄마와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다. 엄마가 고생하지 않고 좋은 것을 보고 다닐 수 있게 여행 일정을 잡은 딸은 출발하기 전부터 엄마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여행 다니면서도 서로 여행 스타일이 다른 것에 당황하며 급기야 짜증이 나기도 한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던 딸은 어느 날 숙소의 창가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엄마를 본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해 뜨는 것을 기다리자 싶었던 엄마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행 일정에는 없던, 엄마와 숙소의 창가에 마주 앉아 부모님의 세월을 듣는 일. 아버지를 생각하며 애틋한 표정으로 부부의 젊은 날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표정에는 여행보다 더 좋았던 시간이 그대로 묻어 있다. 해 뜨는 것을 보겠다며 기다리던 엄마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고, 서서히 드러나는 해의 눈부심에 찡그리는 표정마저 행복하게 보인다. 엄마의 낭만을 이뤄주겠다고 시작한 여행은 뜻밖의 장소와 시간에서 행복한 여행이 된다. 여행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거겠지. 우리가 꿈꾸는 여행도 같다. 같이 먹고 걷고 보고, 그러다가 좋은 것을 함께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진짜 여행인 거지.


딸을 만나러 프랑스에 간 아버지의 낯선 시작이 펼쳐질 「여행의 시작」, 옛 연인과 이십 년 만에 추억의 장소에서 만나는 「오직 눈 감을 때」, 첫 키스가 무섭다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연인이 귀여워 안아주던 「우리, 키스할까?」, 불면의 밤에 눈을 뜨고 외로울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건 얼마 전에 구조한 유기견뿐인 「그 새벽의 온기」, 갑작스러운 누나의 동물원 방문이 어색했지만 언젠가 그리워질 날이 될 것 같은 「봄날의 동물원」, 여행지에서 만나 여행지에서 헤어지며 다음을 말하는 게 쓸쓸하다는 걸 알게 되는 이별의 순간 「어떤 끝」, 사랑을 위태롭게 하는 현실 속의 자기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모두의 이야기이면서 또 각자의 이야기가 될 단편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건너가는 우리가 쉽게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 그렇게 우리는 어떤 끝을 만나고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평범한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을 마주하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으면서도, 어떤 날을 살아가는 내 모습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왜 누구나 바라는, 피해갈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짙다. 다들 비슷하지 않나? 불행을 피해가고 싶고, 불안을 감당하기 무섭고, 행복을 기다리고. 어쩌면 그렇게 바라는 행복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당연하게 마주치는 일상 같기도 해서 무던해지고 싶은데 또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순간들. 우리가 사는 수많은 오늘이 그러하더라.


“……괜찮아지나요?”

박 선생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민주의 책상 위에 차가 담긴 종이컵을 다시 올려놓았다.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하고 말했다. (155페이지, 언제나 해피엔딩)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안하고 불행한 순간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우리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지나간 어느 날을 꺼내 보며 애써 미소 짓기도 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오직 그것만이 방법인 것처럼, 그게 최선인 것처럼. 하긴,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까. 내가 아는 방법도 그것뿐인데. 누군가의 마음, 누군가의 하루를 들여다보며 찾아내는 이런 위안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이 짧은 소설들로 또 배운다. 오늘은 사라져버릴지 몰라도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는 순간이 찾아올 테니. 또 어떤 불행과 불안의 순간에 기적 같은 희망을 바라며 오늘의 흔적을 더듬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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