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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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놀랄 때가 있다. 마냥 상상만 하던 것이, 영화나 소설에서 봤던 모험 같은 판타지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을 봤을 때 말이다. 얼굴 보고 통화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던 게 영상통화가 익숙한 시대가 됐고, 미지의 곳으로 여겼던 우주를 이제는 인간이 다녀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일반인의 우주여행 시대를 열겠다고 계속 투자하고 시도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의심은, 어느 날 실현 가능성 있는 현실로 나타나곤 했다. 그러니 인간이 가진 상상력이나 생각들, 어떤 시도들은 언젠가 우리 일상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 소설 역시 의도는 다를지 몰라도 인간이 이루어낸 과학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인공지능과 양자역학이 만들어갈 세상, 이거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진짜 이런 시도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나?

 

놀랍네요.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불완전한 데이터를 갖고 완전한 이미지를 복원해낼 수 있다는 얘기네요?” (32페이지)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에 목이 없는 시체가 매달렸다. 누가 저지른 일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지만, 시체가 동상에 매달린 방법도 놀라웠다. 드론이 시체를 옮기고 올가미처럼 동상에, 그것도 한 번에 매달았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시체를 한 번에 매달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드론이 해냈단 말인가. 사이언스이스트 기자인 하영란은 대학교수 조성환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뉴스보다 먼저 알려준다.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누구의 짓인지 묻고 싶었던 것.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성환은 영란과 함께 수사팀 윤태형을 만난다.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성환의 도움이 컸다. 드론에 인공지능이 장착된다면 가능하다는데, 이렇게 한 번에 시체를 매다는 것까지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의문이고 범행의 목적이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머리 없는 시체의 몸에는 사람 얼굴 모습을 그린, 아닌 철로 된 핀(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타카핀)으로 박은 사진이 있다. 성환은 컴퓨터로 그림을 확인하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하지만 그 이상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 이들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사건을 저질렀는지 찾아야 하는 공동 목표가 생겼다. 주변의 잘 아는 이들에게 연락해서 조금씩 그 내밀한 이야기를 찾아간다.

 

인공지능의 역할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계속 궁금해지게 하는 소설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 사건에 개입되었고, 인류 역사에 어떤 결과물을 남길 것인지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이야기는 과학에 관계된 이들이 하나씩 들려주는 기가 막힌 과학의 발달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국의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인식의 등장이기도 하다. 과학과 역사의식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못된 역사의식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지켜보게 한다. 무엇보다 과학이 만들어낸 성과는 잘만 이용하면 긍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인지도 높은 과학 교수 부부가 합작한, 인공지능과 양자역학을 접목한 연구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과거 복원 프로그램. 현재의 자료를 가지고 과거 어느 시점의 사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로 현재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인데, 아무런 부작용 없이 가능한 일일까? 무슨 일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민감하고 완벽하지 않은 일을 진행하는데 위험이 없을 수가 없다. 무언가(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무언가)는 의도하지 않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이들이 진행한 과거 복원 프로그램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국정원이 관여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과거 복원 프로그램은 무슨 일이기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이 일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일까.

 

엄청난 성능의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조각난 일부의 정보만으로도 나머지 필수적인 퍼즐을 재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봐야겠죠.” (96페이지)

 

조금씩 뚜껑이 열린 이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치닫는다.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관계되어 있었고, 그들이 품은 사건의 배경은 놀랍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대, 과거 고종과 명성황후가 존재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몇 대에 걸친 조상과 후손들까지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인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리고 밝혀진 인공지능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는 끔찍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인간은 정말 이렇게까지 발전을 이루어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일까. 적당한 걸음으로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가는 과학의 발달을 그려보면 안 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여러 장소는 사건의 전말과는 대조적으로 그려져서 더 안타까웠다.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과 그 뒤의 경복궁, 대명대학교(가상)의 인공지능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이름으로 불렸고, 종로경찰서의 수사관들과 한강을 묘사하는 문장들. 과거의 현재와 미래가 겹쳐진 공간에서 잘 어우러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무시하고 싶어도 저절로 관심이 가는 양자역학이나 인공지능,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가 되어가는 현재의 시스템, 그런데도 여전히 아날로그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인간 세계의 아이러니를 확인한 기분이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았지만,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으로 소설을 읽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판타지와 현재의 모습을 적절하게 접목한 게 재밌기도 했고,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라는 역사와 과학의 충돌 같은 장면들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소설에서 다 보지 못한 과학의 무한한 미래는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생긴다.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은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을 대신하는, 아니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과학을 잘 몰라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용어나 해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로 만나는 과학의 놀라움은 여러 가지로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과학자가 우리 사회에 지는 책임감 같은 것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고민이나 마지막 선택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어쩌면 인간이기에 가능한 상상력과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그 바탕이 되었던 역사의식은 위험했지만, 좋은 방향으로 목적을 둔 시도는 응원하고 싶기도 하다.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 역사와 사회 등 많은 시선으로 파고들기 좋은 소설이다. 조금은 더 쉽게 풀어서 들려주는 과학 서적으로도 만나고 싶은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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