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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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는 건 다른 사람은 모르는 도넛 한가운데.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도넛을 만든 적 있는 사람뿐이죠. (94페이지)


이번 여름 더위를 조금 더 일찍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서늘하고 좋다고 말할 때, 나는 올여름 지독하게 더울 것 같다면서 혼자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여름보다 겨울이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체질이 바뀌었나 싶기도 하면서 그 원인은 은연중에 감지했다. 갑자기 찐 살이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고 조금만 걸어도 땀을 흘리고 숨이 찼다. 사상 최대의 더위가 왔느니 어쩌니 해도, 실제로 내 몸이 변했기 때문에 더위를 더 잘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길을 가다가 나보다 더 체격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뜨거운 날에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까, 숨을 헐떡이며 걷는 이 여름이 많이 힘들겠구나 싶다. 저절로 내 몸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 몸과 내 몸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예쁘게 맞는 옷 사기도 힘들고,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서 저절로 주눅이 들고, 침울해진다. 좋은 말로 익숙하게 들어온, 사람의 외모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닌 척 거짓말 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남녀 불문, 예쁘고 키가 크고 뚱뚱하지 않은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여성의 외모는 우리 일상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반영된다. 아름다운 외모가 많은 부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입학이나 취업 면접에 대비해서 성형이나 치아 교정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예쁜 사람이 더 시선을 끌고 배려 받는다. 웃기게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훈남 사장이 있는 커피점에 가기도 한다. 그냥 그 사람의 친절이 그 가게의 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거지만, 꼭 외모를 곁들여 이야기한다. 잘생긴 사람이 친절하기까지 하다고.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사람을 보는 일에 외모를 각인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다 알아가기도 전에 외모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저장된다. 그러니 아름다워지는 게 누구도 선뜻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미나토 가나에가 이 소설로 묻고 싶은, "아름다워지면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에 하나의 대답으로만 채울 수 없는 이유를 듣는 시간이 된다.


인터뷰어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던 미용외과 원장 히사노. 평소 그녀의 의술은 미용을 위한 수술이 사람들의 치료가 된다고 믿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미용을 위해 수술을 선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의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외모는 뚱뚱했지만 성격이 명랑했던, 운동도 잘하고 매사에 주눅 드는 일 없이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그래서 들어보고 싶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은 히사노는 죽은 아이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 아이의 주변 환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그녀가 그 아이에 대해 다 알지 못했던 진실이 숨어 있는지 묻고 다닌다. 그렇게 히사노는 초등학교 동창, 죽은 아이의 선생님들, 친구들까지 만난다.


히사노가 죽은 아이의 진실을 찾고자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은 의외였고 충격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되묻고 싶을 정도로 낯선 이야기였다. 특히 죽은 아이의 이야기에 보태어져 히사노에 관한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의미를 더 찾고 싶어졌다. 앞서 말했지만, 히사노는 미용외과 원장이다. 외모에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 날씬하고 예뻐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준다. 심리 상담과 외과적 수술로 환자들의 마음을 낫게 해준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녀가 틀리지 않았다고 배운 방식의 삶이었다. 그런데 인터뷰이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점점 자기 신조가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의외였던 건 죽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만난 사람들이 다 과거에 히사노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기억 속 히사노를 꺼내면서 새로운 기억과 조우한다. 그들의 기억 속 히사노는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외모를 가진 예쁜 여자였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고, 그녀를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그녀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을 가졌고, 마치 고요하고 우아한 여왕처럼 군림한 그녀의 옆에서 비슷한 존재로 머물고 싶다는 바람과 그녀와 같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들의 입에서 꺼내 올려진 기억을 들을 때까지, 히사노는 정말 그들의 마음을 몰랐을까? 외모 때문에 좌절하고 비교당하는 슬픔을 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아무 말 안 했어'라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이 만들고 쌓고 있는 외모의 우울을 그녀가 몰랐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미스 재팬까지 경험한 그녀가 외모 때문에 힘들었을 경우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힘들어지는 마음을 굳이 아는 척하거나 나서서 위로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 모든 시간에 그녀는 그들의 마음을 애써 드러내게 하거나 굳이 파고들어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그 불편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알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정말 그녀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 왜냐고? 그녀는 다른 사람이 외모로 고민하는 그 자체를 경험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그럼 이런 사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선이 익숙해진 것에 누굴 원망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까? 애매하게도, 이런 상황과 마음을 다 안다고 해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뚜렷한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거다.


외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몸무게 1kg에 일희일비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외모가 전부라고 말하며 우선순위로 삼을 수도 없고, 외모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매일 거울 보면서 거슬리는 부분이 일상을 주눅 들게 할 수도 있고, 의술로 변화한 외모가 자신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외모가 이 정도여도 괜찮아,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라는 긍정의 사고, '아니야, 이 부분이 변화되면 나는 좀 더 건강한 삶을 만들 수 있어'라는 고민의 순간이 매번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건, 외모강박사회 자체가 사건을, 다양한 감정을 만들면서 인간에게 부정의 마음을 심기 좋은 배경이 된다는 거다. 그때마다 먼저 선택하고 싶은 의미가 달라지겠지. 그 의미에 힘을 실어주는 작가의 말에 시선이 머문다. 행복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을 타인에게 맡기지 말라고, 나에게 맞는 행복의 조각들을 끼워 넣기 위해 나에게 맞는 행복의 조각을 찾는 게 답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완전한 공감을 할 수 없다는 내 마음이 참 씁쓸하다. 아무리 타인의 행복이나 아름다움에 비교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향하는 이 시선을 꽉 붙잡을 수가 없으니...


자살한 소녀의 방에 엄청난 양(소녀의 몸무게 숫자만큼이라고 하더라만...)의 도넛이 흩뿌려져 있었다는 사건으로 시작된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미 사건 현장의 묘사가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면서, 읽으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동안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었던 많은 이야기에 뒤지지 않는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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