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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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뜨끔해지는 소설이 있다. 스멀스멀 머릿속을 파고들면서 괜히 고개 숙이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혼다 데쓰야의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전과자에게 방을 임대한다는 특이한 소재로 읽기도 전에 독자의 궁금증을 만든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세상의 시선을 한번쯤 받은 이들에게 방을 내어준다는 말인가. 입주자 중의 일부가 그런 조건이라는 게 아니다. 입주자 모두가 전과가 있고, 세상으로 스며들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찾아든 곳이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어떻게 같이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서로의 과거를 모두 드러내는 것도 가능할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입견 있는 시선을 버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이들이 살아가는 마음이 궁금했다.

 

다카오는 각성제 사용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약물을 즐기려다가 그런 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약물 복용을 하게 된 거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살던 곳은 갑자기 화재가 나서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그런 그에게 보호사는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소개해주었고, 큰 무리 없이 입주하게 됐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의 전과 이력을 알고도 선뜻 방을 내주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거처가 마련되어 있으니 안심이지만, 일정한 거처가 있다고 해서 쉽게 일자리가 구해지지는 않았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알고 보니 그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전직과 같은 업종으로 계속 일을 찾았는데, 이미 그의 소문은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것.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당분간은 셰어하우스 주인 준코가 운영하는 플라주에서 일을 돕기로 한다.

 

일단 임대 조건은 나쁘지 않다. 월세가 5만 엔. 하루 세 끼 식사가 제공된다. 청소는 교대로 하면 된다. 방문이 없어서 사생활 보호가 안 될 것 같은 불길함은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것도 괜찮다. 입주 조건이 전과자인 것만 빼고는. 준코가 왜 이런 조건으로 세입자를 구하는지는 모른다. 언제까지 이런 조건으로 임대할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셰어하우스에 모인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이들의 내일은 어떻게 될지 궁금할 뿐이다. 특이한 점은 서로의 과거나 오늘에 대해 굳이 간섭하거나 캐묻지 않으면서 사생활을 지켜주는데, 또 어느 순간에는 플라주에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마치 이 모임이 오래전부터 지속하여 온 것처럼, 서로가 허물없이 지내면서 가족처럼 여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누구나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낯설고 어색해하던 게, 어느새 서로의 간격을 좁혀가는 게 눈에 보인다.

 

어디까지 가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태풍이 언제 멈출지도 알 수 없었다. (135페이지)

 

시오리는 말했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히 리셋되지 않아. 과거는 언제까지고 따라다녀. 속죄는 할 수 있어도 실수를 저지른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262페이지)

 

당신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렇게 묻는 나부터도 전과자라는 이력에 두려움을 가질 것 같다. 흔히 '빨간줄'이라고 말하는 인생의 오점은 그 자체보다는 오점의 내용이나 이유가 더 중요할 것 같지만, 그런 사연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던 어떤 사실 하나만을 생각하고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지른 죄로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다. 시간이라는 귀한 것을 잡히고 죄의 대가를 치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한번 저지른 일로 평생을 마음 다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은 계속 생각해야 할 문제다.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각인해야 하는지, 과거는 과거이므로 지금의 모습만 판단해야 하는지. 이런 마음은 셰어하우스 플라주와 의미가 통하기도 한다. '플라주'는 프랑스어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죄와 용서(278페이지)라고 해석한다. 해변이 정확한 선으로 그어서 표시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선이라고 여겼던 일은 때로 악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진실은 거짓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죄와 용서가 서로 마주 보고 있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삶의 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다카오를 포함한 셰어하우스 입주자 여섯 명과 집주인 준코. 플라주에 드나드는 손님들과 보호사로 존재하는 몇몇 어른들까지. 이들의 어두운 과거를 아는 데도 나쁜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었으며, 하나의 존재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읽다 보면 그들의 어두운 과거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그들을 겁내거나 욕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어쩌다 그런 상황에 빠졌던 걸까, 이제 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시선은 또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바빠진다. 거기에 어떤 살인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프리랜서 기자가 셰어하우스에 잠입하면서 이야기는 현실적인 고민에 더해 흥미진진해진다.

 

프리랜서 기자가 한 살인자를 쫓고 있었다. 친구를 죽였다는 이유로 살인죄로 복역하다가 2심에서 무죄 판정을 받고 나온 한 사람이 있다. 기자는 그의 소식을 찾아다녔고, 그가 플라주에 세입자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위장하여 그곳에 세입자로 들어간다. 살인자의 모든 것을 밝혀내어 그가 무죄가 아님을 입증하고, 그 사건에 대해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도록 그럴싸한 기사를 작성하리라 다짐한다. 그 부분이 조금 아리송했는데, 기자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셰어하우스의 모습을 봐도 처음부터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살인자의 존재를 확인해갈 수 있지만, 선뜻 그가 정말 살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범죄라는 게 얼굴에 써놓고 다니는 건 아니기에, 그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들려올 순간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 나라는 법치국가다. 설령 죄를 저질렀어도 제대로 벌을 받으면 용서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그 사람이 제대로 생생했는지 어떤지, 재범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그건 또 다른 문제일 터다.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는 재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 정도는 사회가 보장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346~347페이지)

 

소설은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준코가 왜 전과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셰어하우스를 열었는지, 프리랜서 기자가 왜 무죄 판정을 받은 살인자를 그토록 찾아 헤매면서 셰어하우스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드러난다. 오, 이런. 준코의 사연이야 혹시나 하면서 상상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기자의 잠입 이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가는 소설의 결말이 뭉클하다.

 

날마다 똑같아 보이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도 어느 하나 같은 파도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달라진 것을 슬퍼해서도 안 된다. (396페이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느냐 아니냐 하는 태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로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그 잘못의 다음이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긍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범죄자라는 과거가 주홍글씨가 되지 않도록, 다시 사회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그렇게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누구에게나, 누구라도 생각해볼 문제에 작가는 추리소설로 흥미를 더해가면서 우리가 직접 부딪혀야 할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의 중심에 끌어다 놓았다. 죄를 저지른 이들을 갱생한다고 만들어놓은 곳이 교도소나 법의 규율 안에 있는 곳이지만,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그 갱생의 성공을 감동적으로 이루어낸 곳이다. 현실에서 마주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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